“학습능력은 탁월, 현실적응 장애가 문제”
![[커버스토리]‘은둔형 수재’ 김현우군의 일상](https://img.khan.co.kr/newsmaker/723/cover2-3.jpg)
경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현우군(6년·가명)은 가정과 학교에서 ‘수재’ 소리를 듣는 모범생이다. 그가 모범생 소리를 듣는 이유는 평소 학교와 가정에서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학생의 귀감이 된다는 의미의 ‘모범생’은 아니다. 다만 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집중력이 강하며, 광범위한 독서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등생’ 또는 ‘모범생’이란 평을 듣는다.
그러나 현우의 부모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부모가 판단하기에 현우는 소위 ‘사회성’이 전혀 없는 은둔자다. 무엇보다 친한 친구가 거의 없는 상태로 유치원 2년과 초등학교 6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 같은 반 아이들의 이름을 거의 알지 못할 정도로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연히 그는 ‘왕따’다. 지독한 근시에 머리가 다소 큰 외모가 또한 놀림감이 되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 생일, 소풍, 수학여행과 같은 행사를 가장 싫어한다. 방과 후 축구 등 아이들과 하는 놀이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심지어 체육시간에도 운동장 귀퉁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혼자 놀기 일쑤다. 1학년 때부터 소문이 나 담임선생님도 현우의 이런 태도를 대놓고 꾸짖지 못한다.
현우의 독서능력은 대단하다. 6학년에 접어들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4월 말 현재 현우는 4,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을 다 읽고 6권 ‘팍스 로마나’에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속도로 간다면 학년 말에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까지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작가 막스 갈로의 소설 ‘나폴레옹’ 전 5권을 읽겠다고 했던 것을 간신히 뜯어 말렸다. 현우의 부모는 이 소설이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아직 무리라고 판단했다.
현우는 역사와 과학 과목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한국사와 중국사는 체계도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정통하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은 성인용 판본을 독파했다. 과학사와 관련한 책도 수십 권을 섭렵했고 과학 실험 시간에는 놀랄 만한 집중력을 보인다. 담임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현우의 사고력과 학습능력에 탄복할 뿐 적절한 지도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우가 현실 세계와의 조응능력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학습 측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상에서 1학년생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적응 상태를 보인다. 소지품 분실이 잦고, 분실 후에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근 현우가 몇 가지 폭력성 인터넷 게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문제다. 지난 수년간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했지만 그마저 이제는 시들하다.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와 조우해야 하는 것이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니는 학원은 4학년 이후부터 모두 끊었다. 학원에서 배울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학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과 후에는 식사 시간을 빼고 자기 방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안전에도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200m 떨어져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8시 40분까지 등교하기 위해서는 8시 20분에 출발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현우는 8시에 출발해도 지각을 한다. 등교길에서도 책을 읽느라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현우의 부모는 이런 현우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닥치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최근 현우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는 현우가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우선 관심을 갖도록 지도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영재학원’을 보내라고 하지만 현우의 부모는 망설이고 있다. 그가 ‘영재’로 성장하는 것보다 평범한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