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년 신용불량’의 덫 등록금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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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일단 쓰고 보자’… 졸업 후 취업 못해 장기연체자로 전락
  

한 대학생이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한 대학생이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철훈 기자>

지난해 말 한 중소기업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박창두씨(가명·28)는 요즘 한 원양어선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절차와 조건 등을 따져보고 있다. 박씨가 대표적인 3D 업종인 원양어선에 몸을 싣기로 한 것은 힘겨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취업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씨는 지난해 8월만 해도 장밋빛 꿈을 꾸었던 평범한 대학 졸업생이었다. 다른 학생과 차이가 있다면 가정형편으로 한 캐피털회사로부터 지난 4년간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점이다. 박씨는 1년에 1000만 원 가까운 학자금 대출로 모두 4000여 만 원의(이자 제외)의 빚을 졌다.

대학생 36% 평균 558만원 빚져

문제는 대학졸업 후 취업을 기대했지만 취업난으로 10개월간 본의 아니게 백수생활을 했다. 결국 학자금 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해 장기 연체자가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박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한 중소업체에 어렵게 취업을 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어렵사리 취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박씨는 “대학 재학 당시 학자금 대출은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는 꿈 같은 제도였다”면서 “성적증명서 등 기본적인 여건만 충족하면 대부분 대출에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차라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으면 등록금을 대출받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대출로 꿀맛 같았던 대학생활이 지금의 독이 되었다”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박씨는 학자금 대출로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했지만→백수→신용불량자→백수라는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다.
박씨처럼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졸업한 상당수가 취업을 못 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결국엔 백수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은 고사하고 자살까지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학자금 마련과 이자 납입을 위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초등학생을 납치해 2000만 원의 몸값을 요구한 고교생과 대학생 형제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가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 대학생들에게 가능한 학자금 대출도 카드 빚(신용불량) 등 때문에 이들에게는 불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온라인 리쿠르팅 업체 ‘잡코리아’가 대학생 15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의 35.6%가 빚을 지고 있었다. 이들이 갚아야 할 대출금액은 평균 558만 원, 졸업을 앞둔 4학년의 평균 부채는 640만 원으로 조사됐다. 액수가 크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갚아야 할 대출금이 1000만 원 이상인 학생도 무려 17.6%나 됐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대출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의 88%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지난 2005년 8월 정부에 학자금 대출을 신청한 15만 6000여 대학생 중 1456명이 신용불량으로 접수가 거절됐을 정도다. 이중 304명은 대학 1학년으로, 갓 성년이 되자마자 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나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올해 3학년에 복학하는 최성구씨(26)는 “주변 친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카드 빚 등을 지고 이를 갚기 위해 학자금을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카드 빚이 학자금 대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카드 빚을 갚기 위해 학자금을 신청한다는 얘기다. 최씨는 “심지어 일부 학생은 부모 몰래 학자금을 대출받아 사용하고 뒤늦게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면서 “부모로부터 등록금을 받고 학자금 대출은 따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신용불량 탓에 취업 취소되기도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신용불량자들. <박민규 기자>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신용불량자들. <박민규 기자>

현재 대학생들이 학자금을 대출받는 방식은 크게 정부보증 대출(정부 학자금대출, 제1금융권)과 일반 ○○캐피털, ○○금융이라는 제2·3금융사의 대출로 크게 나뉜다.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정부보증 대출은 학생 명의로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빌려주고 최장 20년에 걸쳐 학생 스스로 갚게 하자는 취지로 2005년 8월 첫 도입됐다. 20년 상환일 경우 10년간은 이자만 내고 나머지 10년간은 이자·원금을 함께 상환하는 방식이다.

대출금은 연간 1000만 원까지 가능하다. 대출 자격으로는 우선 재학생일 경우 C학점 이상은 돼야 한다. 친권자 동의가 필요하고, 학생 본인이 금융기관 연체가 있거나 신용불량자인 경우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 학자금 대출이 정부보증으로 바뀐 이후 부모의 신용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물론 대학원생도 가능하다.

대출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서류를 제출하고 신용평가 결과가 통보되면 해당 대학과 거래하는 등록금 수납은행과 대출 약정을 체결한 뒤 희망하는 날짜에 등록금은 학교 계좌로, 생활비는 학생 개인계좌에 입금된다.

또 정부 학자금대출은 이율에 따라 일반, 저리, 무이자 상품으로 나뉜다. 일반상품의 대출금리는 매학기 학자금 대출 신청 전에 정해지며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를 기준으로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정해진다. 저리 상품은 비이공계의 저소득자를 위한 상품으로서 2%의 고정금리로 대출되며, 무이자 상품은 이공계의 저소득자를 위한 상품으로서 무이자로 대출된다. 현재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전공에 따라 적게는 4000만 원에서 9000만 원(치·의대)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최고 9000만 원까지 빚을 지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의 대출담당 간부는 “현재 신용불량자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대부분 학자금 대출이 이뤄진다”면서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옛날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일부 학생은 대출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 상태로 떨어지기도 한다”면서 “금융당국의 무분별한 대출과 학생들의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대출문화가 이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난의 대물림에 따른 교육기회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05년부터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빌미가 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라는 옛 속담과 ‘소팔아 자식 교육시켰다’라는 이야기가 오버랩되고 있는 시대이다.

‘반값 등록금’ 가능할까?

최근 한나라당 전재희 정책위의장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이른바 ‘반값 등록금’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혀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반값 등록금’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주호 의원이 최근 제출한 관련법안을 말하는 것으로 △2조 원 규모의 국가장학기금을 조성해 이공계·저소득층부터 혜택을 주고 △사립대학 기부금 세액공제로 기부확대와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의장은 또 “현행 6%대인 주택금융공사 학자금 대출이자율을 소득수준에 따라 낮추는 정책을 펴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혀 실현 가능성에 큰 기대를 모았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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