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게 수입 격감… “법인소속 기사 40%가 신용불량자”

택시업계가 고사위기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12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운수사업법 개정 촉구 택시 노동자 결의대회. <이상훈 기자>
“하루하루가 죽기보다 더 고통스럽네요. 사는 게 지옥입니다.”
“요즘 택시하기 어떻습니까?”라는 물음에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이 말을 되풀이 했다. 힘든 밑바닥 삶을 어렵게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택시업계 종사자들. 그들은 현실의 삶을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채워가고 있다. 그만큼 택시업계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한때 택시는 ‘시민의 발’로 일컬어지며 각광을 받았지만 대체운송수단이 늘어나면서 이젠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사실 택시업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간간이 실상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택시업계는 오히려 여론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택시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새삼 엄살을 부리냐’는 식이다.
최악 근무조건, 생계비도 못벌어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임모씨(56). 그는 요즘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다 실직한 후 택시기사로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6년 동안 택시기사를 하면서 그가 얻은 것은 희귀병인 ‘파킨슨병’이다.
임씨는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성실 하나만은 인정받았다.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 건강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가 택시를 하면서 온갖 병을 다 얻었다. 스스로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다. 파킨슨병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사납금을 채워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임씨는 또 관절염과 위장병까지 앓고 있다. 돈벌이에 나섰다가 돈 대신 병을 얻은 꼴이다. 때문에 임씨는 인생의 황금기를 고통 속에서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한 달 병원비도 만만치 않아 얼마 전에는 부인이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생활고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
임씨가 겪은 6년간의 택시기사 생활은 택시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해도 주간 8만8000원, 야간 9만2000원의 사납금을 채우기도 힘겨웠다고 한다. 한 달 운전대를 잡고 그가 받은 월급은 기본급 60만 원을 포함해 100여 만 원. 5~6년 전 200여 만 원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법정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라도 있어서 쉰 다음 날이면 사납금의 족쇄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결근한 날의 사납금까지 채워 넣거나 아니면 급여에서 차감해야 했다.
때문에 임씨는 하루 200㎞ 이상을 거리에서 보내며 손님을 실어 날랐다. 그나마 손님이라도 많으면 다행, 요즘은 손님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임씨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LPG 가스도 부족해 나머지를 내가 채워 넣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영업용 택시가 하루에 필요한 가스량은 40ℓ 정도인데 회사에서는 25ℓ만 지원한다. 부족분 15ℓ는 본인이 부담하는 현실이다. 냉난방을 하는 여름·겨울철에는 가스 소비량도 그만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생존권 사수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전국택시노련서울지부 회원들. <정지윤 기자>
택시기사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줄어든 수입만큼 수입확보를 위해 과로운전을 하다보니 덩달아 사고율도 높아졌다. 장기근속자가 줄고 미숙련 운전자가 늘어나는 것도 원인이다. 2004년 발생한 법인택시의 교통사고율을 보면 전년대비 13%가 늘어난 3만7010건이다. 사고율은 전년보다 4.6% 증가한 40.9%로 나타났다. 운행 중인 법인 택시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올해 초 택시 민생투어를 했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일부 악덕 사업주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처리 비용을 택시기사에게 전가하는 일까지 있다”며 “개인택시 자격에 필요한 무사고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고를 감추어야 하는 택시 운전사들의 약점이 개인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살인적인 근무조건에도 택시기사의 생활은 나아지는 게 없다. 하루 10시간 이상 26일의 근무일수를 꼬박 채워도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해마다 사납금과 유가가 오르면서 수입은 줄어들다 못해 쪼그라들 정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운수업 통계조사 결과’에서도 택시기사의 실상은 참담하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법인택시기사의 연간급여액이 가장 낮았다. 업종별로는 항공운송업이 5500만 원으로 가장 높은 반면, 법인택시는 864만 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간으로 따지면 72만 원이다. 현행 법정 최저생계비인 3인 가구 기준 94만 원에 훨씬 못 미친다. 때문에 택시기사의 90%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맞벌이를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맞벌이 수입으로도 저축과 자녀교육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이하 민택노련) 정부영 홍보부장은 “전체 법인소속 영업용 택시기사의 40%가 신용불량자다”며 “지금 같은 근무조건에서는 택시노동자의 생활도 인권도 없다”고 강조했다. 택시노동자들의 생계형 자살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개인택시나 모범택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월평균 수입은 개인택시 200만 원, 모범택시 250만 원 정도로 파악된다. 개인택시의 경우 영업환경이 나빠지자 최근 시내버스 등으로 전업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개인택시 경력 8년 차인 윤모씨(49)도 시내버스로 옮겼다. 연료비, 수리비, 보험료 등을 감당하기엔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동료 개인택시 기사 상당수도 전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개인택시가 버스회사 등의 월급쟁이로 전직하는 반면, 모범택시는 일반 중형택시로 전환하는 추세다. 하루 평균 15만 원 대의 수입이 10만 원대로 떨어지면서 차량유지비도 건지지 못할 지경이기 때문. 서울시는 내년까지 모범택시를 2000대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택시기사의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모범택시까지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택시업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단단하게 지탱했던 기초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업으로 농사날품 팔기도 택시업계의 쇠락은 택시의 과잉공급과 대체운송수단의 증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가용의 증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발달, 대중교통차량 야간 연장운행, 콜밴·대리운전업계 성행 등이 택시업계를 대중 속에서 멀어지게 한 요인이다. 특히 콜밴·대리운전의 급격한 증가는 택시업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업체들의 저가경쟁으로 서울시내 어디든 1만5000원이면 갈 수 있게 되면서 택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내수침체도 택시업계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택시보다는 대중교통 이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택시이용 승객은 2000년 이후 4년 사이 15.4%인 212만명이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에서만 10.8%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택시승객은 줄어드는 반면 택시차량은 늘어나는 추세다. 구조조정과 명퇴 등의 명목으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택시업계로 대거 밀려들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택시 면허대수는 지난해 말 24만5924대로 2000년 22만9254대보다 7.2%가 늘었다. 택시수급의 불균형은 택시업계를 옥죄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되고 있다.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이용객 감소로 인한 사업구역 다툼은 일상사가 되었다. 경기도 일부 지역은 기본급 30만 원에 월차도 없고 가스비도 지원하지 않는다. 사고처리도 운전기사가 책임져야 한다. 때문에 지방 택시기사들은 부업이 일상화됐다. 심지어 농사날품을 팔며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불법 지입제가 암암리에 성행하는 것도 문제다. 지입은 기사가 2000만 원 정도의 지입료를 내고 회사차량을 할당받아 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 수입을 챙겨가는 형태다. 불법 지입이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처벌이 잇따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택시업계는 위기타개책으로 지난 2년간 잠자고 있는 ‘택시제도개선방안’을 이행하라고 건교부에 요구하고 있다. 법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택시기사들의 ‘도심 막장신세’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건교부가 개선은 뒷전으로 미룬 채 사업휴지기간 연장, 차령연장, 2종 보통면허 택시자격 취득 허용 등 택시사업주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법인택시 운전기사인 최모씨(36)는 “최저 생계라는 것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냐. 정부 정책의 실패로 서민경제가 무너지면서 기초생활도 할 수 없다면 누구 책임이냐”며 “최소한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 아니면 다 망한다”고 호소했다.
택시업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밑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했던 기초경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벌써 내년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택시업계는 더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을 방치할 경우 민생경제의 앞날은 언제나 절망일 수밖에 없다.
정락인〈객원기자〉 pressfr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