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민노당 새 지도부 비정규직 법안에 ‘올인’… “비정규직 홀대 여전” 내부 비판도

왼쪽부터 이상수 노동부 장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1개월을 벌었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3월 임시국회로 넘어가자, 새롭게 진용을 갖춘 노동계는 1개월이라는 시간을 얻게 됐다. 민주노총 조준호 신임위원장은 2월 23일 이상수 노동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 달 동안 허송세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기자와 만나 “한 달을 번 만큼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21일 민주노총 조준호 신임위원장이 선출됨에 따라 노동계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포진했다. 2월 10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의 선출, 같은 날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입각으로 비정규직 법안의 키가 새로운 인물에게 넘겨진 셈이 됐다.
비정규직 법안의 처리 여부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달려 있지만 노동계를 대표하는 단체와 정당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에 실무장관인 이 장관의 대응도 관심거리다. 새로운 진용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들의 대화 여부에 비정규직 법안 처리의 관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2월 23일 이상수 장관과 조준호 위원장의 첫 만남에서는 뼈 있는 농담이 오갔다.
이 장관이 “새로운 위원장의 모습이 유연해 희망이 보인다”고 말하자, 조 위원장은 “제 모습이 변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응수했다. 이 장관이 또 “인권위 법안이 통과될 때 당시 여건에 맞는 법안을 우선 내니까 차츰 나아지더라”면서 비정규직 법안이 지금의 최선임을 강조하자, 조 위원장은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지요”라고 맞받아쳤다.
마지막으로 이 장관이 “은행나무도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주 보면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자, 조 위원장은 “우리(민주노총과 노동부)는 마주 안 보고도 열릴 수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신참’들의 날카로운 대화
재야 인권변호사 출신인 이 장관은 재야 시절과 국회의원 시절 노동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날 민주노총 집행부와의 만남에서도 눈에 익은 인사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김태일 신임 사무총장은 “한 토론회에 같이 참석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하면서 “이 장관이 발제를 한 후 조는 것을 보고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졸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10여 년 전 이 장관이 야당일 때 연대 투쟁을 함께 했다는 허영구 신임 부위원장은 “노동계와 정부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친노동계 인사가 장관에 임명돼도 직책과 관련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정부의 정책라인은 노무현 대통령 - 이해찬 국무총리 -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다. 이들 세 사람은 13대 국회의 ‘노동위 3총사’라고 불릴 정도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입법활동을 펼친 인물들이다.
허 부위원장은 “아는 사람들이 더 협상하기 힘들다”면서 “모르는 상대라면 떼를 쓰면 물러나기도 하고 협상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 상황을 너무 잘 알아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 부위원장은 “친노동계 인사지만 교수 출신인 김대환 전 장관보다 재야 출신 변호사가 어떤 면으로든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단체와 정당으로 양축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관계도 초점이 된다. 민주노총은 이수호 전 위원장과 같은 성향인 국민파 계열이 현장파를 누르고 다시 지도부가 됐다. 현장파보다는 온건한 국민파가 승리한 것. 민주노동당은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계열의 문성현 대표가 평등계열의 조승수 후보를 누르고 지도부에 입성해 자민통 계열이던 김혜경 전 대표 체제와 연결된다.
국민파 계열과 자민통 계열은 비슷한 뿌리로 분류되고 있다. ‘이수호 전 위원장 - 김혜경 전 대표’ 라인을 계속 이어가는 흐름이다.
홍승하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한 만큼 양쪽 다 새로운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김 사무총장은 ‘계승과 혁신’을 강조하며 “계승할 것은 계승하겠지만 내부적으로 정파 갈등을 없애고 조직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비정규직 법안 처리 반대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거의 같은 입장을 취해왔다. 민주노총 김 사무총장은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법안 문제에 있어 열심히 해줬다”면서 “법안에 대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문 대표는 “민주노총의 지도부 구성이 순조롭게 이뤄져 잘 됐다고 본다”면서 “민주노총이 통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비정규직 문제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사유제한이 쟁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자는 주장인 반면, 정부와 여당은 사유 제한없이 사용기간은 절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서로 입장은 다 아는 것이고 정부에서 변화된 내용을 내놓아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이 장관에게 말했다. 여기에 대해 이 장관은 ‘지금의 법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정파간 내부 갈등 봉합 ‘숙제’
김태일 사무총장은 “사유제한에 대해서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경우 우리도 응할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양보할지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문 대표는 “임금보다 고용조건이 더 중요하며, 처우 개선 이전에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생각”이라면서 “국민들에게 비정규직을 더 늘려도 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1개월 동안 노동계의 새로운 지도부는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정파간 내부 갈등을 극복해야 할 과제까지 떠안고 있다. 게다가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에서 추천한 이남신 후보가 부위원장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비정규직 홀대라는 비판을 낳았다. 조 위원장은 정규직 중심이라는 비판에 대해 기자들에게 “산별 노조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산별노조는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대규모 직장단위 노조 형태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진보정치 전문가는 “산별 노조 전환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면서 “민주노총에 비정규직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 민주노총 선거에 대해서도 “이전 지도부를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은 노동계 내부 문제에 대한 자기 반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다”면서 “노동계로서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