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원랜드 ‘후광입기’ 생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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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공모에 폐광지역간 경쟁심 촉발… 2단계 개발사업도 이해관계 충돌

강원랜드 카지노는 도박공화국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선과 태백 등 폐광지역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도박공화국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선과 태백 등 폐광지역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정선군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5만 군민이 뽑아놓은 정선군수에 대한 인신공격은 군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입니다.”

2월 22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번영회 사무실에서 만난 심재복 회장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강원랜드 사장에 응모했던 김원창 정선군수에 대해 태백시 등 인근지역에서 ‘도덕성과 책임감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김 군수는 2월 21일 응모 철회를 선언했다.

태백시측의 입장은 다르다. 태백시의회에서 만난 정용화 태백시현안대책위원장(시의장)은 “강원랜드가 2단계 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경영인이 와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폐광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이가 폐광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강원랜드의 사장이 되는 게 강원랜드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2단계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원창 정선군수의 강원랜드 사장 응모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표정이었다.

정선·태백 사업초기부터 갈등

현재 정선군과 태백시는 올해 3월 발표될 강원랜드 2단계 개발사업 타당성 용역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2단계 개발사업은 카지노 중심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원랜드가 도약하기 위한 것으로 1조2000억 원을 투자해 테마파크 등을 포함한 종합관광단지 조성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5월 관련 내용을 이사회에 제출했으나 종합적인 밑그림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사업 추진은 안 된다는 이사회의 판단에 따라 의결이 보류됐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컨소시움이 종합적인 밑그림과 함께 개별사업 타당성 및 부지 선정 용역을 하고 있으며 3월 중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태백시는 2단계 개발사업이 태백지역에 유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태백시청 관계자는 “올바른 판단을 한다면 반드시 태백에 유치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선군청 관계자는 “강원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산투자보다는 집중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군번영회에서도 정선군민을 대상으로 한 용역 결과 사전설명회를 거치지 않으면 용역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태백지역에 2단계 개발사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선과 태백 간의 지역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1995년 폐광지역의 경제회생을 약속하는 3·3합의안이 도출된 뒤, 카지노 유치경쟁이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3·3합의로 만들어진 ‘폐광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내국인 카지노 허용이라는 독점적인 위치를 허용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메인 카지노 입지는 도의 용역 결과에 따라 정선군 사북지역으로 결정됐다.

그러자 다른 폐광지역에서 카지노 부대시설의 분산배치를 요구했다. 강원도는 정선, 태백, 삼척, 영월 4개 폐광지역 시군과 강원랜드가 탄광지역발전과 관련된 공동문제에 공동대처하자며 탄광지역균형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2001년 4월 카지노와 관련해 합의된 사항은 ▲인근시군의 민자·외자유치 촉진 차원에서 스키리조트 규모 축소 등 카지노리조트 사업계획을 조정하고 ▲영월에는 강원랜드 직원연수관, 삼척에는 청소년수련원 등 폐광지역에 카지노 관련 시설을 분산배치하는 한편 ▲기혼자 숙소는 자율의사에 따라 입주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자율의사로 입주하게 되면 교육환경 등 생활환경이 나은 태백시 쪽으로 기혼자 가구가 몰리게 된다. 즉 다른 지역을 위해 카지노 시설을 분산하거나 축소하는 내용인 셈이다.

연구용역 결과 수용 거부할 수도

강원랜드를 둘러싸고 지역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지만 갈등을 조정할 협의체는 없다. 지역경제의 중심인 강원랜드에 위협이 되는 입장료 인상 문제애 대해서도 따로따로 대응하고 있다.

강원랜드를 둘러싸고 지역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지만 갈등을 조정할 협의체는 없다. 지역경제의 중심인 강원랜드에 위협이 되는 입장료 인상 문제애 대해서도 따로따로 대응하고 있다.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강원랜드가 추진하던 700여 가구 규모의 미혼자 숙소가 문제였다. 태백지역 주민은 미혼자 숙소 절반을 요구하고 나섰고, 정선지역 주민은 이에 반발했다. 결국 강원도의 중재로 스키장 규모를 원래(18면)대로 하는 대신 700여 가구 규모의 미혼자 숙소를 정선과 태백지역 양측에 분산하는 것으로 정리됐고, 2005년 예정이던 스키장 개장은 한 해 미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태백지역 주민은 2단계 개발사업 유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타당성 용역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으로 정리됐으나 올해 사장 문제로 다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양측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선군은 폐특법의 기초가 된 3·3합의를 이뤄낸 것은 정선지역 주민이라고 받아들인다. 투쟁할 때에는 가만히 있던 이들이 강원랜드가 수익을 내는 지금에서야 몫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정선지역 주민은 강원랜드가 정선지역의 폐광 대신 들어선 것으로 본다. 강원랜드에 폐광 실직자의 고용승계를 요구할 정도다. 폐특법에 명시된 ‘폐광지역의 균형개발’에 대해서는 강원랜드가 굳건히 뿌리를 내린 다음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태백지역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태백시는 3·3합의의 중요내용인 폐특법을 태백시측에서 먼저 주장했다고 강조한다. 이는 정선지역 공추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또한 강원랜드가 정선지역만의 기업이 아니라 폐광지역의 균형개발을 위해 설립된 기업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게다가 1단계 사업으로 정선군 지역에서 다양한 이익을 얻었으니, 2단계 사업은 폐광지역이 가장 컸던 태백시 쪽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선군은 매년 100억 원에 달하는 지방세 수입을 거두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경제효과를 누리고 있다.

양측 모두 3월 중순에 발표될 용역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현재로선 보장이 없다. 지역에 유리하게 나오지 않으면 거부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은 답답하다. 올해부터 10년간 내국인 카지노라는 특별한 위상을 보장해주는 폐특법이 연장됐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다시 연장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제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카지노 내국인 입장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10년 안에 다른 사업으로 강원랜드가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하면 강원랜드를 중심으로 경제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는 4개 시군이 공멸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곳을 ‘도박공화국’으로 주범으로 인식하는 외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지역간 조정의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어느 측도 공동협의체 구성에 적극적이지 않다. 강원도 주관의 탄광지역균형발전협의회나 사회단체가 중심이 된 광산지역주민협의회 모두 이해관계 충돌로 활동이 중지된 상태다. 최근 3500원에서 5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의 카지노 입장료 인상안에 대한 대처만 보더라도 이런 모습은 잘 드러난다. 폐광지역의 젖줄인 강원랜드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 강원랜드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는 정선과 태백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힘을 모을 생각은 없는 듯하다. 태백시현안대책위원회는 조만간 공동대응을 제안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선측은 함께 할 생각이 없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탓일까. 이런 사정에 밝은 한 지역신문 기자는 “오죽 답답하면 강원랜드를 민간기업에 매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민간기업이라면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쟁력 강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 그러나 민간기업 매각은 독점적인 내국인 카지노 허용과 폐광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

고한·사북·남면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의 김창완 사무국장은 “결자해지라는 말대로 강원랜드가 폐광지역의 대표와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어 절대 깨뜨리면 안 되는 원칙을 만들고 폐광지역 모두 이 원칙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선·태백/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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