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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큰 공무원 투기꾼 ‘딱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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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인근 위장전입 ‘묻지마 투기’ 적발… 공무원만 50여명 ‘믿는 구석’ 있었나

[사회]간큰 공무원 투기꾼 ‘딱 걸렸네’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는 이곳은 몇 해 전만 해도 온통 논바닥이었다. 인천공항의 화려한 건물과 실내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면 인접한 운서동의 푸른 평야는 사람들에게 넉넉함과 여유를 선사해주었다.

2002년을 전후해 이곳 운서동에도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교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운서동에도 개발열풍이 불어온 것이다. 8월 22일 찾아간 운서동에는 실제로 마을 곳곳에 빌라촌이 형성돼 있었다.

이상한 것은 빌라들마다 차들은 빼곡하게 주차돼 있는데 마을을 지나는 사람의 흔적은 거의 없다는 사실. 한적한 전원풍경에 빌라들이 삐죽삐죽 들어서 있는 것도 신기한데 주차장에 빼곡한 차들의 주인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평일 대낮에 찾아간 운서동 빌라촌의 풍경은 흡사 기괴하기까지 했다.

운서동 빌라촌에 흐르는 이 적막한 기운의 실체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경찰은 최근 공무원 등 고위 인사들이 인천 운서동 등에 위장전입한 뒤 부동산 투기를 벌인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최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인천시 중구 운서동 일대에 다세대 주택 70여 채에 대한 매매현황 및 위장전입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8월 말 수사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사람 흔적 없는 유령 빌라촌

경찰 관계자는 23일 “공무원 등 사회 고위 인사들이 본인명의나 부인 등 가족의 이름으로 비교적 가격이 싼 운서동 일대의 다세대 주택을 구입한 뒤 위장전입하는 수법으로 부동산투기를 벌이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현재 부동산투기를 목적으로 운서동과 인천 서구, 중구, 계양구 등에 위장전입한 혐의(주민등록법 위반)를 받고 있는 입건대상자만 300여 명을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공무원도 및 그 가족들도 50여 명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운서동 지역에서는 2001년 33동과 2002년 39동 등 모두 72동이 빌라신축 허가를 따냈다. 빌라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8월 전후. 영종과 용유도, 무의도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의 후광을 노린 것이다. 분양은 당연히 순조롭게 이뤄졌다.

문제는 인천시 등에서 개발방식과 보상의 범위 등을 놓고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비롯됐다. 그 틈새에 부동산업자와 건축주들이 교묘히 끼어들었다. 이들은 이곳이 수용될 경우 주택 소유자들이 엄청난 이익을 누릴 것이라며 매수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택지개발할 경우 이곳을 수용해 분양자들이 단독필지 70평과 상업용지 8평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덕분에 2004년 분양한 다세대 주택들은 분양 당시에도 20평 9000여만 원, 12평 7000여만 원 등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분양에 성공했다. 이들 다세대 주택은 현재 20평형이 1억2000천만 원, 12평형의 경우 1억 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매매가격은 정상적인 조건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가격이라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천 중구 행운부동산 남기창 대표는 “현장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어 교통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수도시설 등 기초적인 시설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데 그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가 배경을 의심해볼 일”이라면서 “그런 곳에 빌라를 짓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급조한 운서동 빌라촌의 경우 겉에서 보기에는 번듯하지만 내부에는 마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벽지만 발라놓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면서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불을 켜놓는 등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주소지만 옮겨놓은 채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위장전입으로 부동산투기에 해당한다고 보고 전기료 고지서 등 관련 증빙자료를 확보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이나 기타 지역의 부동산에 대한 투기는 대개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지만 운서동 빌라에 대한 투기는 시세차익보다도 내년쯤 이뤄질 보상을 노린 측면이 크다”면서 “현재 보상방식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투기꾼들 대부분은 이주비와 건물보상비, 여기에 소문처럼 택지를 공급받거나 아파트 입주권을 받아보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보상을 자기가 가로채겠다는 심리로 고위직 공무원들이 앞다퉈 위장전입이라는 편법을 자행하며 ‘묻지마 투기’에 나선 셈이다.

[사회]간큰 공무원 투기꾼 ‘딱 걸렸네’

보상 못받는데 투기한 이유는

이에 대해 지역주민 보상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토지공사측에서는 개발계획이 발표된 2003년 8월을 기준으로 1년 전인 2002년 8월 이전에 거주하던 사람들만 보상대상이라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에도 빌라에 대한 투기가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는 토공측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경찰의 분석은 조금 다르다. 분명히 뭔가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2004년까지도 이 지역 빌라에 대한 투기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이번에 빌라투기와 위장전입 혐의로 적발된 50여 명의 공무원 중에는 개발 관련 부서인 건설교통부와 경제자유구역청, 인천시는 물론 토공 직원도 다수 포함도 있었다”면서 “이들이 2002년 8월 이후에 투기에 나선 것은 토공측 주장대로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영종지역 일부와 인천 서구와 계양구, 중구에 시세차익을 노리고 위장전입한 뒤 농지취득을 벌인 투기꾼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농지에 대한 투기 역시 운서동 빌라촌에 대한 투기와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최하 100여 평에서 수천 평에 이르기까지 개발이 덜 된 인천 곳곳의 농지를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공무원 등이 현지주민으로 위장해 농지매입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있던 인천 부동산도 경제자유구역 개발의 후광을 노린 전방위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면서 급격히 치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하늘이 두쪽이 나도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 외곽의 자투리 논에서 원룸빌라까지, 그것도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싹쓸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천/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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