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돌고래 박진’으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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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한 ‘빡찐’에서 ‘몸짱’으로 변신 성공… 목표 정하면 성실하게 파고드는 노력파

[유인경이만난사람]“이젠 ‘돌고래 박진’으로 불러주세요”

‘2달 만에 체중 15㎏을 빼고 폭소클럽을 만들다.’

얼핏 들으면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한 연예인 이야기같다. 그런데 주인공은 마냥 진지해보이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다. 지난 6월, 스스로 ‘돌고래 다이어트’라 명명한 체중감량 프로그램을 시작한 그는 8·15 광복절을 맞아 95㎏에서 79㎏으로 줄어든 몸무게를 확인하고 ‘독립만세’와 함께 ‘다이어트 만세!’를 외쳤다. 얼마나 감개무량했으면 지인들에게 ‘드디어 해냈습니다’란 문자메시지까지 보냈을까.

혼자서 하다간 중도포기할 것 같아 다이어트에 돌입한다고 공개선언하면서 그는 폭소클럽도 결성했다. 웃는 모임이 아니라 폭탄주 소탕클럽이다. 그가 분석한 비만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회식자리의 ‘폭탄주’여서 주당파 동료의원들에게 가입을 권유했다. 혼자 “저 술 안마십니다”라고 했다간 왕따를 당하지만 폭소클럽 회원이 늘어나면 억지로 마시며 돈과 몸을 버리던 폭탄주문화가 사라질 것 같아서다.

평소 약간 느끼해보이던 박의원은 15㎏ 감량 후 확실히 날렵하고 신선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돌고래 다이어트’란 이름도 그가 붙였다. 해군출신인 그는 평소 돌고래에 관심이 많았는데 돌고래가 항상 등푸른생선, 해초류, 플랑크톤을 먹고 운동량이 많아 뚱뚱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단다. 식단도 돌고래처럼 바꾸고(플랑크톤은 먹을 수 없어 고등어·미역 등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국회의원회관 7층에 있는 사무실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다.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인 여름 2달 동안 집중적으로 살을 빼야 했어요. 강북 삼성의료원 비만클리닉에서 각종 검사와 지침을 받았죠. 워낙 맛있는 음식, 치즈케이크 등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는데 음식조절도 힘들고, 무더위에 운동하기도 쉽지 않았죠.

권투도장에 다녔는데 사범이 ‘국회의원이라도 제자는 제자니까 룰대로 하자’면서 조금만 방심해도 막 때리더군요. 돈내고 맞으면서까지 살을 빼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허리의 유연성과 군살 빼는데는 권투가 도움이 되더군요. 이것 보세요. 이제 허리벨트는 4개나 구멍이 줄어들어 맨 끝의 구멍이 맞는데 더 줄여야 해요”
체중감량 후에도 예전 옷들을 그대로 입으니 재킷과 셔츠는 마치 몰래 꺼내입은 큰형 옷처럼 어깨가 늘어지고, 바지도 벨트만 졸라매 주름치마나 과거 배삼룡 등 코미디언이 가슴부분까지 끌어올려 입던 바지 같다. 그는 헐렁해진 옷차림을 매우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이젠 국회의원도 참 알뜰해졌다. 나 같으면 핑계김에 날렵한 몸매가 돋보이는 새옷을 몇벌 마련했을 텐데…

외국인도 인정하는 ‘영어의 달인’

최근엔 살빼기와 음주문화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박진의원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비서관으로 통역을 담당하면서부터다. 김 전대통령과 영국의 메이저 총리가 정상대담을 하던중 그의 탁월한 영어실력에 놀란 메이저 총리가 쪽지를 써서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을만큼 그의 영어와 통역 실력은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어서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모두에 능통한데다 평이한 단어를 쓰면서도 아주 고급스럽고 세련된 영어를 구사해서 외국인들도 그의 실력에 감탄한단다.

[유인경이만난사람]“이젠 ‘돌고래 박진’으로 불러주세요”

“저도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죠. 닉슨 대통령과 만났을 때 대통령께서 ‘우리나라에 큰 배나와 개핵이 일어날끼라케라’라고 하는데 배가 왜 나오는지, 개핵은 무슨 핵인지 몰라 머뭇거리니까 김기수 실장이 다가와 ‘변화와 개혁’이라고 알려주더군요”
한국어 통역(?)을 거쳐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김전대통령이 자주 쓰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도 직역하면 굉장히 잔인한 표현이 되기 쉽고 ‘대도무문’도 함축한 의미가 커서 힘들었다. YS의 언어스타일은 거두절미와 정면돌파형이란다.

“클린턴 대통령에게 ‘대도무문’의 휘호를 직접 써주면서 김대통령은 ‘한 번 멋지게 설명해봐라’고 하시더군요. 불교용어인 본뜻을 길게 설명할 수 없어 ‘정의로우면 거리낄게 없다’고 통역했더니 클린턴이 고개를 갸우뚱해요. 그래서 ‘고가도로엔 톨게이트가 없다(Freeway has no Tollgate!)’라고 했더니 이해한다며 웃더군요. 그후 저를 만나면 ‘헤이, 미스터 프리웨이’라고 인사를 하며 반가워하죠”

만약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통역한다면 어떤 점이 가장 어렵겠냐고 물었다.

“노대통령은 굉장히 언어감각도 뛰어나고 다변입니다. 다만 앞뒤가 모순되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을 납득시키기가 힘들 겁니다. 전반에 A라고 주장했다가 후반에 가면 B로 바꾸는 경우가 많거든요.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해놓고 나중엔 ‘그런게 아니거든요’로 끝나면 전달에 혼란스러운 측면이 많지요”

박의원은 ‘외교’란 소리없는 전쟁이고 ‘협상’을 통해 우리의 국익을 챙겨야 하는데 대통령들은 물론 협상담당자들이 글로벌한 언어감각이 없어 뜻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우리 밥그릇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 답답하단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이나 대화에선 항상 친미·반미 등 이분법으로 나눠 실용외교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 미국과의 외교문제는 비자발급부터 재미동포의 권익, 주한미군문제부터 한미동맹까지 다 연결되어 있고 경제규모도 엄청나 감정적인 대립보다는 실익을 챙기는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따른 인생행로

박진의원의 이력서를 보면 요즘 신세대들의 거친 표현을 빌리자면 ‘재수없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서울 명륜동에서 내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은석초등학교(당시 최고의 사립초교) 경기고-서울법대-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영국 옥스퍼드 대 정치학 박사의 화려한 학벌을 만들었다. 영어, 불어, 일어, 스페인어에 능통하며 요즘은 방송통신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중이다. 외무고시에도 합격했고 미국 뉴욕주의 국제변호사이며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한나라당 대변인을 거쳐 현재는 국회의원. 경향신문을 비롯, 각 시민단체에서 선정한 국감 최고의 의원, 최고의 신사의원 등에 뽑히는 등 상복도 많다. 음악가인 부인과 딸아들을 고루 두었다.

예전엔 좀 뚱뚱해서 ‘빡 찐’이라고 놀리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180㎝에 78㎏의 몸짱이다. 살이 빠지니 얼짱이란 말도 어색하지않다. 스쿠버다이빙, 국궁 등 만능스포츠맨이고 서울법대 시절엔 ‘뱀파이어’라는 밴드를 결성해 키보드를 연주했으며 전국대학생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는 등 제법 놀아도 봤단다. 기타연주와 노래 솜씨도 수준급.

부럽다기보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실패나 시련도 경험해봤냐”는 질문에 그는 “그럼요. 운전면허 시험에도 떨어진걸요”라고 말했다.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확인하더니 금세 “아, 농담입니다. 하지만 제 삶이 그렇게 이력서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잘못 알려진 점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유인경이만난사람]“이젠 ‘돌고래 박진’으로 불러주세요”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는 집앞에 있던 혜화동 분수대에 발가벗고 들어갔다가 경찰아저씨에 걸려 종아리를 맞은 사건이다. 추첨으로 경일중학에 진학했는데 학교건물이 무허가라 문을 닫아 남대문중학으로 전학. 선배들이 술과 담배와 놀이를 지도해줘서 실컷 놀다가 정신차리고 자퇴, 검정고시로 1년 일찍 경기고에 입학. 나이 많은 동급생들을 제압하기 위해 영어 수학 공부에 매진, 경시대회에 1등해 성적짱이 됐단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려던 그는 인생을 바꾸는 한 순간을 맞이했다. 영어공부를 위해 ‘타임’지를 읽었는데 표지에 닉슨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핑퐁외교로 동서냉전의 빙벽이 녹아든다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얼마 후 뉴스에 박정희대통령이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란 말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세계가 마구 변한다는 것을 몸과 머리로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앉으셨던 병원 의자에 앉기만 하면 되는 평온한 인생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격변하는 국제정세’란 말에 미래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다섯번이나 찾아가 문과로 바꾸겠다고 설득해서 서울법대에 진학했죠”

법대생이면서도 국제적인 외무고시를 선택,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 생활 역시 적당히 따라가면 될 것 같았는데 프로외교관이 되기엔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다들 만류했지만 유일하게 ‘자네는 다시 정부로 올 사람이니 뜻대로 하라’고 격려해준 선배가 있었다. 10년 후 그가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때 전화를 걸어 “10년 공부했으면 이제 돌아와 국가를 위해 일하게“라고 청와대로 부른 사람이 당시 김석우 통일보좌관이었다.

“유학도 모두 시험을 쳐서 장학금으로 마쳤습니다. DJ시절에도 문희상의원 등이 청와대에 남아달라고 했지만 거절하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재충전도 필요했고 IMF 무렵이라 이젠 ‘격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해외자본유치를 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할 것 같아 미국 뉴욕대(NYU)에서 장학금을 받고 꼭 365일 공부해서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땄지요”

귀국해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외국투자관련 일을 맡아 제법 돈도 잘 벌었는데 2001년 5월, 대선을 앞둔 이회창 총재가 국제담당 특보를 맡아달라고 했다. 월급은 없다고 했다. 돈은 못 벌지만 21세기 ‘격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국제담당 특보는 의미있는 일인 것 같아 수락했고, 그가 태어나고 자란 종로구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기에 도전, 16대 국회의원 배지도 달았다. 17대엔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김홍신씨가 출마했는데 선거중에 부인까지 잃어 은근히 동정표가 몰릴까 걱정도 됐지만 예의상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김 전의원의 상가에 앉아 있었다. 겨우 588표 차이로 이겨서 재검표라도 요청하면 어쩌나 했는데 김홍신씨가 전화를 걸어와 ‘박의원, You Win!’하고 축하전화를 해줘서 감격했단다.

그는 ‘타고난 행운아’로 비치는 게 억울한 노력파다. 물론 뜻을 세우면 미친 듯이 몰두해 그것이 시험이건 의원배지건 체중감량이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노력만 하면 되냐”고 물으니 “운도 필요하긴 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너무 완벽하고 지나치게 성실하고 잘하는 것도 많아 오히려 손해를 보는 박진의원. ‘인동초‘ 김대중, ‘바보’ 노무현, ‘저격수’ 홍준표 등 정치인들은 단 한마디의 카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데 내세울 게 너무 많은 그는 한마디로 표현되지 않아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런 지적에 그는 상받기를 기대하는 착한 소년처럼 “이젠 ‘돌고래’ 박진으로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가 체중감량을 한 것도 차기 서울시장을 목표로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정치적 목적이면 또 어떤가. ‘한 건’을 위해 거짓자료를 발표하거나 상대를 비방하는 것보다는 자기 살을 빼서 본인도 행복하고 남이 보기도 좋은데. 목표만 정하면 무엇이건 성실하게 파고드는 박진 의원. 그가 계속 그의 인생화두인 ‘격변하는 국제 정세’에 몰두해 국가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상한 게이트나 권력의 단맛에 쏠리지 말고….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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