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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만족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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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는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모임인 중국 한국상회 창립 10년 기념식이 있었다. 중국 한국상회가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3개사의 사례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중국 굴삭기 시장의 20%를 차지한 대우종합기계(산둥성 옌타이), 스웨터 공장을 차려 11년 만에 2천5백만위안(37억5천만원)의 재산을 모은 강동섬유(랴오닝성 푸순), 중국 투자 3년 만에 본전을 뽑고 지주회사를 세워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는 포스코(베이징)였다. 이들 기업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특파원리포트]중국인이 만족할 때까지

대우종합기계는 1996년 7월 산둥성 옌타이에서 굴삭기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그룹이 공중분해된 데다 그동안 수출해오던 한국과 동남아 시장이 완전히 무너졌다. 대우는 이때 100% 현금 장사로 이뤄지는 중국 굴삭기 내수 시장에 주목했다. 중국 전체 굴삭기 규모는 연간 2,000~3,000대에 불과했다. 그나마 굴삭기를 구입하려는 업자들은 광둥성으로 내려가 홍콩에서 건너온 외국산 중고 굴삭기를 현금을 전액 주고 사고 있었다. 대우가 마련한 비장의 카드는 '분할판매'였다. 현금을 30%만 내면 굴삭기를 가져가고 나머지 70% 돈은 1년 안에 갚도록 한 이른바 신용판매인 셈이다. 남을 의심해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중국인의 속성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1998년 상반기에 53대를 팔았지만 분할 판매가 시작된 하반기부터는 400대를 팔았다. 이어 입소문이 돌면서 판매가 급증, 올해는 6,000대(판매금액 75억위안)를 판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신용판매는 이제 미국과 일본 등 기득권을 잡았던 기업마저 뛰어들 정도로 널리 퍼졌다.

1991년 사무소 개설로 중국에 처음 진출한 포스코는 중국 전역에 17개 현지법인을 세워 22억4천5백만달러를 투자했다. 벌써 출자금(2억9천4백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지법인 가운데 장쑤성 장자강의 스테인리스 공장은 1997년 가동 초부터 흑자 경영을 이뤘다. 이밖에 랴오닝성 다롄에 있는 아연도 강판, 광둥성 순더의 아연도 강판 등은 공장 경영 3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유식 포스코차이나 부본부장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정확한 시장예측으로 현지 특성에 맞는 생산 품목을 잘 골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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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중국 철강산업과 동시 성과를 거두는 투자전략을 마련했다. 중국산 원료 수입을 크게 늘리는 한편 투자 성과를 한국으로 송금하지 않고 전액 현지에 재투자, 설비 확장 및 이미지 개선을 꾀했다. 현지 지방정부와 유력 철강업체-유통업체 등 실력이 있는 합작선을 잡고 이들에게도 '함께 큰다'는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

강동섬유 양승국 사장(59)은 서울 강동구에서 스웨터 제조업을 하던 중소기업 경영자였다. 1992년 푸순에 공장을 세워 여기서 만든 스웨터를 11년째 전량 수출하고 있다. 그는 1997년 푸순시로부터 받은 수출장려기금(10만위안)을 시당국에 기부했고 외국인의 정성에 감동한 시장이 시예산 30만위안을 들여 초등학교(중국에서는 소학이라고 함)에 기부, 학교 이름을 '강동희망소학'이라고 바꿔 관리하고 있다. 2000년 랴오닝성에서는 한국인으로 두번째로 '그린 카드' 성격의 영구 체류증을 받기도 했다.

중국인 근로자에게 마음을 열어줬다  강동섬유는 근로자 800여 명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우회를 조직, 회사가 제공하는 근로자 월급 1.5%를 이용해 1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해주고 생일 때 선물도 주고 있다. 회사측은 근로자들에게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부조금도 챙겨준다. 목돈이 필요한 직원에게는 동료 직원의 보증으로 받아 3,000위안 한도 내에서 무상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양 사장은 "직원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만큼 근로자도 회사가 수출 물량 납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자진해서 야근이나 철야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이 점을 유의하라

양승국 강동섬유 사장은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 시 가능하면 독자진출을 권유했다. 합작 투자를 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1년 안에 중국 파트너와 불화로 헤어지거나 철수한다는 설명이다. 요즘은 미화 3천만달러 이하 투자에는 현지 지방정부가 독자기업 진출 허가를 내줄 정도로 기준이 완화됐다. 

그는 조선족이나 한족 통역을 신뢰하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들은 협상이나 상담 때 이쪽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될 만한 대목은 아예 통역 차원에서 생략하면서 협상을 성사시키려고만 한다는 설명이다. 2명의 통역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밖에 미리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현지 한국상회를 찾아가 상담하라고 권고한다.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뒤 찾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소기업인들을 많이 보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계약서에 10년 투자하겠다고 서명해놓고 5년 만에 철수하면 기계를 한국으로 들고 가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선험자들의 경험 이상 좋은 지침서가 없다는 것이 양 사장의 지론이다. 중국의 법이나 규칙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양로보험이나 지체부자유자 고용 등 각종 준조세 성격의 규정에 대해서는 당국에 적극적으로 문의, 해결해야 한다.     

랴오닝성의 경우 외국 투자기업에 대해 보일러 설치 금액 반액 감면 등 108개 특혜를 주는 조항이 있다. 각 지방마다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다양한 우대 조치가 있는 만큼 이를 제대로 챙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채규전 대우종합기계 옌타이 총경리는 "이익이 생기면 본사에 송금하는 과실 송금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20~30년을 멀리 보고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하겠다는 각오로 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홍인표 특파원 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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