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은 사막이다. 햇빛과 모래만 무한히 반복되는 이곳은 태양의 열기로 모든 것이 녹아 없어지는 진공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을 무한히 달리다 보면 홀연히 나타나는 초현대적인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지치고 힘든 여정을 끝내고 거짓말처럼 나타난 네온사인의 열기는 여행자를 환락과 도박으로 유혹한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보면 이곳이 왜 ‘죄악의 도시’(Sin City)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공항에서부터 편의점, 차를 주유하기 위해 들른 주유소에도 슬롯머신이 있어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매년 40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여가활동, 쇼핑, 컨벤션 센터를 결합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도 성장 중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에 우뚝 솟은 라스베이거스 빌딩 숲을 보면 의문이 든다. 어떻게 물과 전기를 큰 도시에 공급할 수 있을까. 답은 도시 동쪽에 있는 후버댐에 있다. 후버댐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무너졌던 미국 경제를 일으킨 미국 뉴딜(New Deal)정책의 상징이다. 콜로라도강의 협곡을 막아 높이 221m, 길이 411m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 63빌딩 높이와 비슷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막아선 모양이다. 이 댐의 완공으로 미드호(Lake Mead)가 만들어졌는데, 서울시의 크기와 비슷한 거대 인공호수다. 댐의 저수량은 약 320억t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소양강댐 저수량(29억t)의 10배가 넘는다. 댐 건설 후 라스베이거스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지역의 주요 상수원이 됐다. 2080㎿의 발전 용량을 갖추고 있어 건설 당시 세계 최대 수준의 수력 발전 용량이었고, 지금도 주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한다. 후버댐에서 공급받는 물과 전기가 화려한 ‘불야성’ 라스베이거스를 만들고 있다.
문명 성공 요소, 치수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문명은 물을 다스리는 ‘치수’를 통해 과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의 근간으로 삼았다. 물을 통제하고 공급 확대에 성공한 소수 문명은 번영과 정치적 활력을 얻었다. 특히 댐은 과도한 강수량을 일시적으로 저장해 하류 지역으로 급격한 방출을 방지하고 홍수 위험을 줄여 인구 밀집 지역이나 농업지대에 피해를 최소화한다. 또한 가뭄 시기에 물을 방출해 농업, 산업, 가정용 물 공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태양광이나 풍력과 함께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재생 에너지다. 대공황 시기에 건설된 후버댐처럼 대형 토목공사는 심각한 불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도 잘 이용된다. 건설 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돈이 풀리고, 공사 인력을 구하는 과정에서 실업이 줄고, 새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돈을 쓰면서 경기 부양이 종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후버댐 같은 성공사례는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지난 7월 30일 한국 환경부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무려 14개의 댐이다. 낙동강 권역이 6곳으로 가장 많고, 한강 권역 4곳, 영산강·섬진강 권역 3곳, 금강 권역 1곳이다. 용도별로는 다목적댐 3곳, 용수전용댐 4곳, 홍수조절댐 7곳이다.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에 대응하고, 미래 용수 수요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2022년 서울 동작구와 올해 7월 전북 군산의 집중호우처럼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집중돼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이와 반대로 2022년 남부지방의 극단적인 가뭄처럼 생활∙산업 용수가 부족한 위기를 언급했다. 이를 예방하고자 댐 건설을 계획했고, 이름도 ‘기후대응댐’이라 지칭했다.
기후대응댐의 모순
위의 주장은 일견 맞아 보인다.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와 가뭄을 대비해 물 저장고를 늘리는 댐을 건설하는 것은 나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댐으로 늘린 물 저장공간은 극한 홍수에 대비해 버틸 수 있는 ‘몸집’을 키울 수 있지만, 댐 하류 쪽의 폭우에는 원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댐의 기능은 상류에 쏟아지는 폭우를 잠시 진정시키는 것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발표에서 언급됐던 2022년 서울 서남부 일대 반지하주택 참사나 2023년 충남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의 사례는 댐과 상관없이, 제방이나 배수 쪽 미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기후 패턴으로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홍수를 어떻게 고정적인 댐 건설로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홍수가 발생하면 댐은 그대로 물폭탄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1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이 실종한 리비아 대홍수 사태도 믿었던 댐 붕괴로 물이 쏟아지면서 시가지를 쓸어버린 결과다. 극한 홍수에 대비해 늘렸던 몸집이 오히려 더 큰 재앙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극한 가뭄에 대비한 수량 확대를 강조하면서 댐 건설이 초래할 수질 고민은 빠졌다. 댐을 통한 물흐름의 정체는 남조류 같은 수질 문제를 악화시킨다. 물이 더러우면 양이 많아도 쓸모가 없다. 댐을 잘못 건설하면 어떤 부작용이 빚어지는지 영주댐이 잘 보여준다. 내성천을 훼손하며 무리하게 추진된 영주댐은 녹조현상이 극심하고 수질만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댐 건설에 따른 경제적 비용 부담, 하천 생태계 파괴 그리고 지역주민 피해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빠져 있다.
셋째, 1990년대를 고비로 국내에서 대형 댐 건설이 가능한 입지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생태계 파괴 등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오랜 논의 끝에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댐 정책의 패러다임을 ‘건설’에서 ‘관리’로 바꾸고, 국가 주도의 대규모 댐 건설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환경부의 댐 후보지 발표는 과거의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6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14개의 댐이 왜 갑자기 필요해졌을까. 환경부의 발표는 기후대응댐이 ‘과학적’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과학적으로 홍수 조절이 이루어지고 용수 확보가 해결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홍수조절용 7개 댐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울산 울주의 2200만t 규모의 회야강댐인데, 소양강댐의 13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로 극한 홍수를 방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후위기 홍수 관리는 기존의 제방이나 배수, 댐을 보강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뒤에도 새로운 댐이 진정 필요하면 체계적인 종합 환경평가를 거치고 객관적인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하나씩 건설해야 한다. 구체적 검증 없이 14개의 댐을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논란과 오해만 일으킬 뿐이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