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개발자에 굴절된 ‘AI 여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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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이 AI 모델 ‘미드저니’로 생성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다. 이 그림은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했다. /제이슨 앨런 트위터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이 AI 모델 ‘미드저니’로 생성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다. 이 그림은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했다. /제이슨 앨런 트위터

이미지 생성 AI 모델인 스테이블 디퓨전과 미드저니는 ‘남성’ 개발자들의 놀이터다.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개발자들은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를 생성해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자랑한다. 현란한 프롬프팅 실력을 뽐내며 동료들의 추앙도 기대한다. 다양한 외부 도구를 연결하고 파라미터를 조정해 실존하는 인간을 재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기괴하고 요상하지만, 창의적인 이미지도 곧잘 만날 수 있다. 우스꽝스럽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패러디물은 물론이다. 이제 이미지 생성 AI로 그려내지 못할 대상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이 인간이건 괴물이건 로봇이건 장난감이건, 주문만 하면 어떤 누군가가 뚝딱 생성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미지 생성 AI 도구는 그야말로 ‘그리기 놀이터’가 됐다.

이 ‘그리기 놀이터’엔 연필이나 물감이 따로 필요 없다. 스케치북이나 캔버스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태블릿용 드로잉 펜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미지 생성 AI 모델과 파이선 그리고 다양한 설정값을 제어할 수 있는 웹 UI 같은 그래픽 인터페이스만 있으면 된다. 이 놀이터에선 그리기가 코딩으로 전환된다. 엄밀하게는 낮은 단계의 코딩이다. 그런데도 개발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고품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면 프롬프트, 네거티브 프롬프트, 샘플링 메소드, 로라, 임베딩 같은 개발 중심 용어들에 익숙해져야 해서다. 단어나 문장으로 구성된 프롬프트 텍스트와 각종 설정값의 의미와 작동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게 필수다.

그래서 아직은 남성 개발자들의 놀이터다. 지금도 개발자 생태계에선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록 3년 전의 통계이긴 하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에 근무하는 AI 연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를 넘지 못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AI 종사자의 22%만이 여성이라는 통계도 발표된 적이 있다. 신생 직종이라 할 수 있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영역에서도 이 비율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도유망한 영역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성의 진출은 더딘 편이다. AI 산업에서조차 남성 중심의 업무문화, 성차별이 잔존하기에 그렇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산업 내 남성 중심 문화는 이 그리기 놀이터를 ‘욕망의 놀이터’로 변질시킨다. 매일매일 자랑하는 생성 이미지 대다수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다. 그것도 남성 개발자들의 왜곡된 욕망이 투영된 여성 이미지가 가득 채워져 있다.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강조돼 있거나 속옷 차림만으로 그려낸 이미지가 커뮤니티 공간에 흘러넘친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를 변형해 다소 음란하게 그려낸 이미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친절하고 깊이 있는 이미지 생성 AI 사용법 강의에도 생성 사례는 온통 여성 이미지로 도배된다. 때론 낯뜨거운 차림의 여성 이미지를 실습 대상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여성에 대한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이루다 사태’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교훈은 얻었지만 변한 건 없다. 여성을 향한 일부 남성 개발자들의 굴절된 시선이 텍스트를 넘어 이제 이미지와 영상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공개된 공간에서조차 그들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일부 남성 개발자들의 폭주도 관찰된다.

인공지능은 당대 인류의 거울이다. 개발 주체도, 생산물도 그 사회의 인식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교육과 윤리의 문제로 돌아온다. 느리더라도 한 사회의 교육이라는 공간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게 가장 바른 길일지 모른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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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