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이사가 말하는 ‘세계 3대 연기금 APG의 투자 기준’

사진 / APG 제공
온실가스로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미세먼지로 건강에도 좋지 않은 화력발전의 생명력이 끈질기다. 석탄화력발전소를 지금도 새로 짓고 있고, 노후 석탄화력을 폐쇄한 자리엔 가스화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반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지난해 오히려 감소했다. 각국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사나 애플·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최종 수요 기업이 공급망에 속한 기업에 탈탄소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행보는 여전히 느긋하다.
이사라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이사는 탈탄소는 도덕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APG는 글로벌 투자기관과 연대해 국내외 기업의 탄소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포스코와 같은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도 주요한 관여 대상이다. 이 이사는 탄소 배출 감축에 소홀한 기업은 투자자와 공급망의 외면을 받고, 결국 시장에서 경쟁력 쇠퇴로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래세대를 위한 인프라 투자라는 관점에서 탈탄소 전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를 지난 9월 19일 화상으로 만났다.
-TSMC가 지난 9월 15일 RE100을 기존보다 10년 앞당겨 204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RE100 달성 시점을 앞당기는 건) TSMC만이 아니라 요즘 글로벌 회사들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2050년 스코프3 배출량(제품 생산 외에 물류, 제품의 사용·폐기 등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배출량)까지 0으로 만들려면 자사의 스코프1(기업의 직접 배출)·스코프2(냉난방 등 기업이 사용한 에너지를 만들면서 배출한 탄소)는 2030년 혹은 2040년으로 앞당기는 게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RE100 시점을 2050년으로 발표했다가 2040년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 RE100 선언 1주년을 맞은 날 TSMC가 이런 발표를 했다.
“애플은 2030년 스코프3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내가 애플과 사업을 하려면 나도 203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하는구나’ 생각이 든다면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빠르게 탄소중립을 이룰 때 비용이 들긴 하겠지만 공급망에 포함되고, 해당 분야에서 친환경 리더십을 인정받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면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넷제로를 이루지 못하면 공급망에서 한순간에 아웃당할 수 있다. 우리는 애플 같은 회사들이 넷제로 달성을 위해 (자사의) 공급망에 개입하도록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나는 토요타의 기후위험 관리에 아주 깊이 관여(engagement)하는데, 전기차 관련 투자 전략의 실행과 그린스틸(수소환원공법 등 화석연료 사용 없이 만든 철강)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구매할 건지, 현재 상황은 어떤지 등을 매 분기 점검하고 있다.”
-공급망 탄소중립에 소홀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나.
“삼성전자·토요타 같은 대기업은 현금이 많아 현재 금융 면에서 어렵지는 않지만, 평판(reputation) 리스크가 있다. 평판 관리는 향후 비즈니스 사이클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자본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한다. 상장된 상황에서 평판 리스크가 있다면 가치평가를 할 때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가, 기업의 시장가치를 낮출 수도 있다. 평판 리스크로 언제든 일이 터지면 고객을 잃거나 법률적 이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공급망(supply chain) 리스크다. 탄소 배출 감소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애플과 같은 고객사를 잃을 위험이 있다. 세 번째로 소송(litigation) 리스크가 있다. 최근 토요타가 호주 소비자들에게 10억달러 소송을 당한 것처럼 해외에 상장된 기업이라면 소비자들이 (배출량과 관련한) 검증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실제 사례가 있나.
“일본에서 토요타는 삼성전자와 비슷한 위상이다. 토요타가 변하면 일본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APG는 올해 초 토요타에 기후 관련 주주제안을 넣었다. 토요타의 경우 2021년 스코프3까지 넷제로를 이루겠다고 선언했지만, 토요타와 관련 협회들은 오히려 자동차 산업의 탈탄소화를 늦추는 로비를 하는 정황이 몇 년 동안 포착됐다. 이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는데 진전이 없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평판·소송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탈탄소 전략의 투명한 공시를 요구하는 안건을 이번 주주총회에 올렸다.”
-어떤 기업이 기후대응에 소극적이므로 더 이상 투자해선 안 된다고 보는 기준이 있을까.
“현재까지는 스코프1·2 배출량이다. 배출량이 많다고 무조건 투자를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사업 매출이 늘어나 스코프1·2가 늘어날 경우 이를 어떻게 줄인 것인지 전략이 있어야 한다. 성장하는 회사의 경우 전략이 있으면 계속 펀딩을 해주면서 주주로서 지원한다. 반대로 배출량은 많은데, 감축 목표도 없고, 계속해서 석탄발전소를 짓는다면, 투자자로서 우리도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전력은 이미 다 팔고 나왔다. 바로 판 것은 아니다. ‘왜 안 하나요’ 하면서 계속 개입했는데 건설적인 대화가 없었기에 우리도 믿고 투자를 못 했다. 이성적인 투자자로서, 앞으로 명확히 보이는 리스크를 무시하는 회사에 어떻게 계속 투자할 수 있겠는가.”
-포스코도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다.
“금융기관도 탄소발자국(대출·투자로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제조업의 스코프3와 비슷한 개념)을 관리해야 한다. 포스코 주식을 사면 우리 탄소발자국이 갑자기 몇 배로 확 뛴다. 우리의 탄소발자국이 증가할 위험이 있어도 탄소비용까지 고려해 포스코 주가가 구조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이제 탄소는 비즈니스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가 안 된 회사는 언젠가는 재무적 비용이나 여러 리스크가 발현될 수 있다. 그래서 함부로 비중을 올리기 애매하다. ‘세상에 투자할 회사가 이 회사만 있어’라는 생각을 자연적으로 하게 된다.”
-포스코 주가가 최근 리튬 사업으로 크게 올랐는데.
“외국인 투자 비중은 계속 줄고 있다. 장기 투자자들이 살까, 테마주로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APG는 일본에서 일본제철과 JFE홀딩스라는 제철회사에 개입하고 있다. 제철회사는 기관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투자하기에는 탈탄소 과정에서 큰 재무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증자 시에는 명확한 (탈탄소) 계획이 없으면 계속 지원하기 어렵다. 최근 탈탄소 투자를 위해 JFE홀딩스는 자사주 매각과 증자로 1215억엔을 조달하고, 전환사채로 900억엔을 더해 2115억엔(약 1조9200억원)을 마련했다. 탄소중립 선언을 이행할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시장을 미리 선점하는 전략적 결정이기도 하다. JFE에 따르면, 일반 철강보다 3~6배 비싼데도 그린스틸을 만들기로 한 건 고객사 요청 때문이다.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그린스틸을 사용하도록 개입 중이다. 제철회사들은 그린스틸이 비싸서 수요가 미약하다고 하지만, 수요를 만들어 악순환을 풀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외국 철강사와 포스코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제철은 정부의 재정적 도움 없이는 탈탄소가 어렵긴 하다. 향후 수십 년간 몇십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단위로 투자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연합에선 경제 회복 정책 자금의 상당 부분을 그린스틸로 돌리고 있다. 폐로 될 시설을 그린스틸 시설로 전환할 경우 자금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나라도 있다. 북유럽은 재생에너지를 싸게 공급해줄 테니 자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라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최근 포스코 ESG 담당자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했는데, 정부의 지원에 대한 기대가 없고,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국내 환경에 대해 토로했다. 한국 기업이 정부에 요구해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생존을 위해 해외에서 탈탄소 사업의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국내 금융기관은 여전히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분위기다.
“넷제로 선언을 하지 않은 금융기관 입장에서 화력발전 기업이 다른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준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넷제로 진영의 돈이 커지고 화석연료 쪽은 줄어드니 유동성 위기가 올 때 이걸 시장에 되파는 건 힘들어진다. 10년 후, 길면 30년 후에 내가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것이 예상되는데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한국전력은 탄소발생량이 높은 상태라 향후 해외 채권시장에서 외면당할 위험이 크다. 작년 말 국내에서 한국전력이 채권을 발행할 때 국내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해 금융시장을 교란한 전력도 있다. 한국전력이 향후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거나 탈탄소 전략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해외 우량 투자자들은 한국전력의 채권 매수 규모를 늘리기 어려워질 거다.”
-APG는 금융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나.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50%를 줄이고, 2050년 이전에 모든 투자자산에서 넷제로를 이루려고 한다. 이를 위해 국채를 살 때 그 나라의 탄소배출량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지 않는 회사에 앞으로 계속 투자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공개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건 스탠리에서 APG로 옮긴 이유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고려하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이 있었다. 모건 스탠리에 있을 땐 수익률에 중점을 두었지만, 그 일을 근 20년을 하다 보니 내가 사회에 무슨 보탬이 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했지만, 현재 회사도 자산운용회사라 수익률을 여전히 고려한다. 다만 돈과 책임투자를 어떻게 잘 접목하느냐, 대단히 힘들지만 책임투자의 원칙을 지키면서 수익률도 함께 올리는 방향으로 노력 중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에 조언한다면.
“다음 세대를 생각해 달라. 난 개인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많이 봤던 건데 정치인들은 현재의 투표가 중요하기 때문에 노인 위주로 세상이 돌아간다. 현재의 노인 세대는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던 분이 많다. 탈탄소화는 나중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탈탄소화는 향후 비즈니스 기회와 긴밀히 연결된다. 신사업으로 경제 성장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탈탄소 인프라에 국가와 기업이 투자하게 된다면, 다음 세대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저성장 경제의 문제는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다. 최근 일본을 보면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주저한다. 한국도 일본의 20년 후발주자라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희망을 갖지 못한 상태로 젊은 세대가 자라는 것이 미래 한국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떤 인프라를 갖춰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