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포럼서 정재철 전 민주정책연 연구위원 제안
고용보험과 분리해 비정규직·자영업자 등도 지원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 연합뉴스
심각한 저출생 위기 상황에서 육아휴직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보험 형태의 새로운 연대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초저출생·인구위기대책위원회 연속포럼 ‘선택과 집중, 아동 돌봄이 답이다’에서 정재철 전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린이연대기금을 제안했다. 국민연금보험료, 국민건강보험료, 노인장기요양보험료 등에서 추가징수를 통해 안정적 재원을 확보한 후 기금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 기금을 육아휴직 급여, 아동수당 지급 등에 사용하자고 그는 주장했다.
현행 육아휴직 제도는 사각지대는 넓고 소득대체율은 낮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출생아 100명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OECD 평균 여성 118.2명, 남성 43.4명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육아휴직을 여러 차례 나눠 사용한 것이 중복된 수치다). 소득대체율도 낮다.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은 최초 3개월까지 통상임금의 80%(상한액 월 150만원), 이후 종료일까지 통상임금의 50%(상한액 월 120만원)를 지급한다. 상한액이 낮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2021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육아휴직자의 월평균 소득은 348만원이고, 월평균 급여는 102만5000원이다. 소득대체율이 30%가 채 안 된다.
일본의 ‘양육지원 연대기금’
육아휴직 제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고용보험법이 있다.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법에 따라 지급된다.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하지 못한다. 육아휴직 대상자는 사업장에 상시고용돼 6개월 이상 근무한 노동자로 한정된다.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는 제외된다. 육아휴직 대상자라 해도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육아휴직을 쓰지 못한다. 고용보험의 주목적이 실업급여다 보니 육아휴직 지급액 상향도 쉽지 않다. 낮은 소득대체율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 결과 여성 육아휴직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계속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
정재철 전 연구위원은 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며, 일본에서 추진 중인 ‘양육지원 연대기금’을 소개했다. 일본도 한국처럼 고용보험법에 따라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해왔다. 육아휴직 급여 지급액이 점점 증가하면서 고용보험의 ‘주객전도’ 상황이 발생했다. 2018년 육아휴직 급여 지급액은 5312억엔으로, 실업급여 기본수당 5725억엔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급증했다. 그 결과 육아휴직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분리해 독자적으로 운영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저출생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됐다. 육아휴직 급여 대상자를 취업자뿐 아니라 출산·육아 후 재취업하는 부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2022년 4월 일본 내각부의 경제자문회의는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피보험자에 한정돼 있어 자녀 양육으로 휴직하고 퇴직한 사람 모두를 위해 직장 복귀 전까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지난 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차원이 다른 저출생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3월에는 2021년 14%에 불과한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2030년 8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육아휴직 보편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다. 소비세 인상이 최선책으로 거론됐지만, 정치적 부담이 컸다. 일본은 당초 2015년 10월 소비세를 10%로 인상하기로 했다. 두 차례나 연기됐다. 2019년 10월에야 소비세가 인상되면서 사회적으로 피로도가 쌓여 있다. 차선책으로 나온 대안이 사회보험 방식이다. 연금보험, 건강보험,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에서 갹출해 양육지원연대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을 어린이 양육에 투자하는 구조다. 정재철 전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는 재원 마련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한 가운데 사회보험 방식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전 위원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육아휴직 대상을 퇴직자, 자영업자, 전업주부 등으로 대폭 확대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여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원 마련은 국민연금보험료, 국민건강보험료, 노인장기요양보험료 등에서 추가징수를 통해 확보한 후 어린이연대기금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정 전 위원은 “최근 정책 흐름을 보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등 저출생 문제를 ‘사적 육아’의 형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라며 “저출생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흐름을 바꾸고 어린이 돌봄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소득재분배 기능을 가진 사회보험을 활용한 ‘공적 육아’ 강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전 세대가 아동부양에 ‘올인’한다는 취지에서 어린이연대기금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수익자부담 원칙과 충돌
전 세대가 육아휴직 급여 등 양육비 부담을 지는 내용을 두고 수익자부담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사회보험 원리상 기여와 급여가 연계돼 있다. 이른바 납부자와 수혜자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는 뜻”이라며 “이 부분에서 얼마나 사회적인 수용성이 있을 것인가 여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고용보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라며 “전업주부, 단시간 근로자, 무급종사자까지 포함할 경우 육아휴직 동안 그렇지 않았다면 받을 수 있었던 급여 보전 기능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금보험,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에 더해 추가로 연대보험료까지 징수한다면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은 “미래의 의료와 요양, 연금 등 대부분의 고령자 관련 급여는 당시 근로세대의 부담을 통해 지급된다. 미래의 근로세대가 될 현재 영유아의 육아 지원을 위해 지금의 고령세대나 근로세대가 부담을 공유하는 것은 사회연대 중 하나인 세대 간 연대를 위해 필요한 조치로, 이를 사회보험을 통해 구현하는 방안은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