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불평등 확대가 성장과 혁신에 나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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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높은 물가상승으로 가구의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못했고,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가구소득 증가율이 높아서 전년 동기 대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된 지난 5월 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켜놓고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 상인들이 일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높은 물가상승으로 가구의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못했고,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가구소득 증가율이 높아서 전년 동기 대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된 지난 5월 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켜놓고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 상인들이 일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5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동안 불평등이 심화됐고, 약자들의 고통이 커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높은 물가상승으로 가구의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못했고,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가구소득 증가율이 높아 전년 동기 대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소득 하위 20% 가구 중 적자 가구 비율이 약 63%로 전년보다 약 5%포인트 증가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은 부자 감세와 긴축재정을 지향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불평등과 격차의 확대가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국가에서 소득분배 악화와 성장률 저하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실에서 불평등과 성장 사이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여러 경제학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론과 실증연구를 발전시켜 왔다.

과거의 연구는 부자들이 저축을 더 많이 하니 불평등이 높아지면 저축과 투자 그리고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발전된 거시경제학 연구의 전반적인 합의는 불평등이 성장에도 나쁘다는 것이다. 먼저 심각한 불평등은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둔화시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소득층이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악화되면 경제 전체의 소비와 총수요가 억압된다. 이렇게 총수요가 둔화되고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장기실업이나 신기술 투자 둔화 등의 이력효과를 발생시켜 생산성 상승과 장기적인 성장 저해로 이어진다.

또한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이 커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도 라틴아메리카와 같이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이 토지개혁에 성공했고, 소득분배가 균등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정치적으로 더 불안정하고 성장률도 낮음을 알 수 있다.

금융시장 정보 비대칭성과 경제성장

보다 최근 ‘새(New)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금융시장의 불완전성과 불평등을 결합해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금융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즉 은행이 차입자의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흔히 담보를 요구한다. 따라서 저소득층은 돈을 빌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난한 부모는 아이들이 똑똑하다 해도 그들에게 비싼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아이들은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각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교육의 경로를 통해서도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을 저해하는 셈이다.

불평등은 또한 포용적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아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돈과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된 사회는 포용적인 정치·경제적 제도가 발전하기 어렵고, 지대추구가 만연해 경제주체들의 노동과 혁신의 의욕이 약화하기 쉽다. 나아가 불공정한 불평등은 작업장 차원에서도 노동의욕과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여러 실험연구는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노동의욕이 낮아진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논의와 함께 실증연구도 급속히 발전됐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는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소득이나 부의 불평등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음(-)의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자료가 발전돼 경제학자들은 이제 장기적인 패널 데이터를 사용, 각국 안과 각국 간의 변화 모두를 분석하고 있다. 몇몇 연구는 소득불평등이 단기적으로 한 국가 내에서는 성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의 경제학자들은 개선된 데이터와 발전된 계량분석기법을 이용해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며 정부의 소득재분배는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을 개선해 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불평등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들이 제시한 포용적 성장이라는 의제는 바로 이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은 그 수단으로 증세와 사회복지 확충, 금융포용 정책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제시했다. 특히 적극적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하고 수요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인프라나 연구개발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 포용과 혁신 모두에 매우 중요하다.

혁신 가능하려면 사회안전망 튼튼해야

불평등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경로는 혁신을 통한 경로일 것이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면 혁신적인 경제활동이 발전하기 어렵다. 먼저 한국의 승차공유 서비스의 경우에서 보이듯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기존의 노동자들이 혁신에 저항할 수 있다. 혁신은 산업과 사회의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혁신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기초해 새로운 수요가 있는 신산업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서 혁신에 대한 반대가 강하지 않다.

심각한 불평등은 또 저소득층의 똑똑한 아이들이 혁신에 기여할 가능성을 억누른다. 체티 하버드대학 교수 등은 미국에서 3학년 때 수학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특허를 얻는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지만, 그 집단 내에서도 부잣집 아이들이 빈곤층 아이들보다 그 확률이 훨씬 높다고 보고한다. 결국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과 생산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심각한 불평등이 혁신을 저해하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국가 간 실증분석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은 1인당 특허출원이나 총요소생산성으로 측정되는 혁신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또한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포용적인 성장의 추진이 혁신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 한국은 고도성장과 함께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분배로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제의 구조변화와 함께 동아시아의 기적의 반대편으로 달려온 듯하다. 이러한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 불평등과 불공정을 개선해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경제는 사회복지와 안전망의 확대, 증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그리고 공정한 경제구조의 확립을 통해 포용과 혁신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지속가능한 성장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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