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미분양 급증…특례법 폐지하고 원가 등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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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 사무국장 맡고 있는 ‘10년차 농부’ 장정우 활동가

사진/ 주영재 기자

사진/ 주영재 기자

‘경축 내포신도시 미래신산업 국가산업단지 유치 확정!’ 지난 5월 16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들어서자 면사무소 전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산업단지 유치는 누군가에겐 경축할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민간이 산업단지를 개발할 때 토지의 50% 이상을 확보하면 나머지 땅도 강제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이 거의 모두 반대해도, 땅을 많이 가진 소수만 찬성하면, 반대하는 이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발이 진행된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거의 100% 땅과 자본을 가진 이들이 승리했다.

산업단지만이 아니라 폐기물 매립장, 축사를 비롯한 온갖 환경오염시설이 농촌에 난립하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지키고, 농업을 옹호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농민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지난해 비영리 공익법률단체 농본이 출범한 이유이다. 정보공개 운동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가 중심이 돼 꾸려진 농본은 법률 지원을 넘어서서, 농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함께 논의하고, 농민과 농사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적 해결책까지 모색 중이다. 농본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장정우 활동가를 이날 홍동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사람이 적게 산다는 이유로, 법을 들이대며, 농촌 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데 농민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을 폐지하고, 산업단지 추진 과정에서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이윤 추구 수단이 된 산업폐기물 처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초중고를 이곳에서 나온 토박이이자, 귀촌 후 10년차 농부로 사는 그는 “농촌의 경관과 환경이 보존될 때 농촌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결국 시민이 가진 집단의 힘으로, 공론화로 기울어진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농본 활동에 참여하게 됐나.

“산업단지나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홍성의 다른 지역에 많이 들어왔지만 홍동은 아직 안온한 편이라 농촌이 처한 현실에 무감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내 땅이 멀쩡해도 전체적으로 농촌과 농민이 축소되면 결국 내 문제가 된다. 코앞에 닥치기 전에 현실을 알고 싶었다. 농본 활동으로 농민으로서 다른 농민과 연대할 수 있겠다 싶었다. 농사와 농본 활동을 1 대 1의 비율로 하고 있다. 농민 당사자라는 점에서 농본의 활동에도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골프장, 축사도 있지만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반대하는 사안은 대부분 산업단지와 폐기물 매립장이었다. 영향을 받는 주민들이 많아 마을 단위에서 공동대응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산업단지가 지방소멸을 앞당기고 있다고 했다.

“산업단지를 추진할 때 인구 증가, 일자리 증가, 세수 증가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논리를 편다. 각각 확인해보고 싶었다. 인구 증가의 경우 산업단지가 1개 들어왔을 때는 지역 평균과 큰 차이가 없지만 3개 이상 들어온 지역은 평균보다 확연한 감소를 보였다. 천안은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2만명이 늘었다. 반면 산업단지가 늘어선 직산읍, 풍세면, 성환읍, 성남면 등은 인구가 줄었다. 산업단지가 많을수록 지자체 평균보다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예산군도 지난 14년간 12% 정도 인구가 줄었다. 삽교읍만 인구가 늘었는데 산업단지가 아닌 외적 요인이라 할 내포신도시 덕분으로 보인다. 산업단지 관리 비용 등으로 세수 증가의 효과는 명확하지 않고, 일자리 증가 효과 역시 미미했다.”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매립장, 소각장 등 폐기물 처리시설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최근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2019년을 전후로 태영그룹과 SK그룹 같은 대기업만이 아니라 사모펀드도 뛰어들고 있다. SK건설은 아예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꿨다. 평균 순이익률이 매립장은 30%, 소각장은 15% 정도로 추정된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50% 넘는 곳도 여럿이다. 일례로 충북 충주에 있는 에코비트그린충주는 2017~2022년까지 1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그중 973억원 이상이 당기순이익(순이익률 58% 이상)이다. 20억원을 자본금으로 출자한 주주들은 배당금으로만 2022년까지 822억원을 챙겼다. 폐기물 처리업의 영업이익률이 높은 건 독과점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는 수집과 운반, 중간처리, 최종처리로 나뉘는데, 폐기물 최종처리 업자 수는 아주 적다. 조성비용이 크게 들고, 관리 기준이 강화되니 가능한 업체가 몇 개 안 된다. 인허가만 받으면 높은 순이익을 보장받게 된다.”

최근 산업단지 바깥에 독자적인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건설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산업단지 내 폐기물 매립장을 활용하는 편법이 늘고 있다. 폐촉법(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연간 폐기물 발생량이 2만t 이상이고, 조성면적이 50만㎡ 이상인 산업단지를 개발할 때는 폐기물 처리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 조항을 악용해 폐기물 발생량을 부풀려서 산업단지 내에 폐기물 매립장 인허가를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사무국장이 5월 16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사무실 앞에서 산업단지 개발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사무국장이 5월 16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사무실 앞에서 산업단지 개발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패키지로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산업단지 계획서를 보면 폐기물 발생량이 수만t씩 굉장히 높게 잡힌다. 예상 발생량인데, 산출근거가 불명확하다. 계획서상의 발생량과 실제 발생량을 보면 현저하게 실제 발생량이 적다. 사실 주민들은 산업단지보다 폐기물 매립장을 더 반대한다. 그래서 폐기물 처리시설을 산단 개발에 끼워넣어 진행하면 훨씬 더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산업단지 자체가 폐기물 매립시설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산업단지 분양이 잘 안 될 경우 이를 이유로 들어 변경고시를 해 폐기물 매립과 재활용업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바뀌기도 한다. 경남 사천의 대진산업단지는 애초에 승인받은 것과 달리 산업단지를 통째로 산업폐기물매립장과 소각장으로 바꾸려 한다. 이곳 매립장은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하는데 이 회사가 기존 산단 내의 매립장 부지를 사들이거나 산업단지와 묶음으로 매립장을 추진하는 게, 우리가 파악한 곳만 5곳이다. 사실 폐기물 매립장에는 별도의 큰 비용 없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많다. 예를 들어 부지는 일정해도 깊이 파기만 하면 폐기물 처리 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전북 김제 지평선 산업단지 매립장의 경우 기존에 승인받은 것보다 깊이를 40m 더 파는 것만으로 용량이 6배 증가했다.”

-산업폐기물을 공공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폐기물 매립장이 이익을 많이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후관리 비용이 제대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의 경우 매립이 끝나면 법적으로 30년 동안 사후관리를 하게 돼 있지만 업체가 부도나면 지자체가 그 뒤처리를 맡아야 한다. 실제 충북 제천 왕암동 매립장의 에어돔이 붕괴하자 지자체가 98억원의 예산을 들여 복구했다. 결국 업체가 이익은 이익대로 보고 환경오염 피해는 지역주민이 보고, 사후관리 부담은 지자체가 떠안는 부정의한 일이 발생한다. 우선 산업폐기물 매립장 업체의 초과이익을 환수하고 여기서 사후관리 재원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산업폐기물처리와 관련해 공공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생활폐기물(전체 폐기물의 11.7%)은 국가가 책임지는데, 그것보다 더 위험하고, 양도 많은 산업폐기물을 왜 기업에 맡기나. 지자체는 이익이 안 난다고 하는데 사실 가장 이익이 나는 사업이 폐기물 매립사업이다. 생활폐기물 매립장엔 주민 감시요원을 둘 수 있는데, 산업폐기물 매립장과 소각장은 민간사업장이어서 주민감시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지자체가 출자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기만 해도 좋겠다.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주민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과 어떤 정보도 주민이 얻을 수 없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현행법은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각장에 대해 영업구역을 제한할 수 없도록 했다.

“영업구역을 제한하면 불법 폐기물이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를 든다. 실제로는 업계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땅값이 싼 농촌지역에 매립장을 지어 원가를 줄이고, 그곳으로 전국의 폐기물을 받아 수익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폐기물도 권역 간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권역별로 공공성을 확보한 주체가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각장을 설치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산업단지 인허가 특례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8년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 제정 후 산업단지 미분양면적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 말을 기준으로 산단 내 미분양면적(2152만㎡)과 분양미공고면적(8639만㎡)은 올해 신규 지정된 산업단지 면적의 약 2배에 달한다. 그만큼 무분별하게 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수도권 인근 지역은 보상가와 분양가 사이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산업단지 개발로 시행사가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는지, 보상가와 분양가, 조성원가 등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더라도 주민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산업단지가 과다공급됐다는 점에서 특례법을 폐지하고 기존 산업단지 활용에 초점을 맞출 필요도 있다.”

-주민들의 반대 운동이 처한 어려움은.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단지는 토지 소유자들의 동의만 얻으면 되는데, 우리 농지의 50% 정도가 임차농이다. 이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진다. 한두 세대 이전에 도시로 간 이들이 땅을 상속받는데 이들은 농촌을 고향으로 보지 않는다. 반면 주민은 땅을 적게 갖고 있거나 빌려 농사를 짓는다. 이들은 산업단지 승인이 다 나온 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 때야 비로소 아는 경우가 많다. 적법 절차만 거치면 그 이후 단계는 주민 여론과 무관하게 그대로 흘러간다. 알기도 늦게 알고 권한 자체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반대가 어렵다. 실제로 주민이 사태를 파악도 하기 전에 설명회가 끝난다. 제도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단위가 굉장히 중요하다. 산업단지 승인 결정권이 읍면 단위까지 내려와야 한다.”

-산단으로 농촌 경관이 훼손되면 인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도시적 삶의 기준만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농촌을 잘못된 방향으로 개발하게 만든다. 농촌은 농사와 관련한 경제활동이 중심이어야 하고, 농사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어야 한다. 지역의 경관과 환경이 보존될 때 농촌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에 사는 분들이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농민들은 ‘자기 부정’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폐기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과정이 매달 매년 반복되면서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는 조건에서 살고 있어서다. 쌀값도 그렇고, 양파도 조금 비싸지면 바로 수입한다. 가격이 오른 건 생산단가가 높아졌거나 공급이 적기 때문인데, 정부는 가격이 오를 땐 너무 빨리 시장에 개입한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떨어질 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하니까 농민 입장에선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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