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 74.1%, 여신 63.4%.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국내 전체 은행권(20개 은행)의 예금과 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2022년 말 기준)이다. 정부는 과점 은행들이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손쉽게 ‘이자장사’를 하고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본다. 과점 체제를 완전경쟁 체제로 바꾸겠다는 구상의 출발점이다. 영역을 세분화한 특화은행을 새로 추가하고, 증권사·보험사·카드사·핀테크(금융+기술) 기업 등에 은행업 문턱을 낮춰 경쟁시키겠다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신규 플레이어’를 추가로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자칫 경쟁과 효율에만 치우치다 보면 금융 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점 대형은행 향한 전방위 압박
지난 2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이하 TF) 회의가 열렸다. 이날 첫 TF 회의를 주재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민의 대출이자 부담 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은 막대한 이자수익으로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고, 그 수익으로 고액의 성과급을 지급해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잔치’를 질책하고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2월 15일)한 지 1주일 만이었다.
TF에서 다룰 주제도 제시됐다. 은행권 경쟁 촉진과 구조개선, 성과급과 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 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크게 6가지다. 사실상 은행산업 전반을 들여다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뜯어고치겠다는 취지다. TF에는 금융위와 한국은행, 금감원, 7개 금융권 협회(은행연합회 등), 연구기관(금융연구원 등)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논의 결과는 오는 6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여당과 감독당국도 ‘은행 때리기’에 가세했다. 국민의힘은 은행법의 목적 조항에 ‘은행의 공공성 확보’를 반영토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점 은행들의 담합 혐의 조사에 나섰다. 지난 2월 말부터 3월 3일까지 5대 시중은행과 IBK기업은행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였다. 은행 수수료와 대출금리 등 책정에서 담합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과점 은행들의 행태를 ‘약탈적’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2월 17일 한 세미나에서 “(과점 은행들이) 비용 절감과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의 접근성은 고려하지 않고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를 줄이거나, 고용 창출은 하지 않으면서 수익 창출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은행권은 바짝 웅크린 상태다. A은행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눈치 안 보고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은행들도 편하게 앉아서 이자장사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큰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해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이미 그러한 프레임이 씌워진 상태라 당장은 반박하기가 껄끄러운 분위기인 듯하다”고 했다. 은행권은 최근 사회공헌과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윤 대통령의 돈잔치 발언 이후 은행권이 부랴부랴 내놓은 사회공헌 규모는 향후 3년간 약 10조원이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특수은행 등 국내 20개 은행이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최소 48%(742명) 많은 2288명 이상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은행연합회는 공정위의 담합 혐의 조사에 대해 “은행의 대출금리는 시장 상황과 개별 은행의 경영 전략 등에 따라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
TF 논의의 핵심은 5대 주요 시중은행 과점 체제를 완전경쟁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혁신적인 금융기술이 강점인 핀테크 기업들이 쉽게 은행업에 진입하고 은행이 추가로 늘면, 금융생태계가 한 단계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이 커지리란 논리다. TF 1차 회의에서 제시된 주제는 1주일여 만인 지난 3월 2일 열린 TF 2차(1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보다 구체화됐다.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위한 인가 세분화(스몰 라이선스)와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인터넷 전문은행·시중은행 추가 인가 등이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스몰 라이선스나 소규모 특화은행은 은행 업무 중 일부 분야에 한정해 인가를 내주는 제도 또는 그런 업무를 하는 은행을 말한다. TF는 대표적인 예로 챌린저뱅크를 주목한다. 챌린저뱅크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중소기업금융과 소매금융 등 일부 은행 업무를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처리하는 은행이다. 우리의 인터넷전문은행과 유사하면서도 특정 영역에 특화된 은행이다. 대체로 은행 라이선스를 받은 후 오프라인 지점을 개설해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반면 챌린저뱅크와 비슷한 개념의 네오뱅크는 은행 라이선스는 보유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챌린저뱅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영국이 도입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유럽 챌린저 은행의 성장 및 시사점’ 보고서(심수연·2022년 10월)를 보면 영국에서는 챌린저뱅크를 도입한 2013년 이후 지난해 2월 말 30개까지 늘기도 했다. 다만 유럽 전역의 챌린저뱅크 지점은 2014년 20만9000개에서 2019년에는 16만5000개로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중화된 온라인 뱅킹의 영향이 지점 수 감소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TF는 챌린저뱅크가 도입되면 금융서비스 수수료가 낮아지고 소비자 선택권이 향상될 것으로 본다. 인가 조건 중 하나인 최소자본금(시중은행 1000억원) 요건도 지방·인터넷은행(250억원) 수준으로 완화할 방침이다.
TF는 또 다른 사례로 공교롭게도 최근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 불능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지목했다. TF는 SVB 파산 사태 이전에 배포한 자료에서 “미국 SVB는 별도 인가 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벤치마킹할 사례로 지목한 SVB가 갑작스럽게 파산하면서 당국의 특화은행 도입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향후 TF 논의 과정에서 SVB 파산 사태를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은행권의 은행업 진출 확대도 추진한다. 카드사에 종합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 증권사에 법인대상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 보험사에 지급결제 겸영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다. 지급결제 업무 도입은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의 숙원이다. 당국이 구상하는 방안은 지금까지 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전자금융거래를 해야 했던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가 지급결제 계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고객이 간편결제, 송금, 급여 이체, 보험료 납부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사업자가 되면 예금과 대출을 제외한 모든 은행 업무가 가능해진다. TF는 지난 3월 8일 열린 회의에서도 비은행권 종지업 도입에 대한 금융권 의견을 청취했다.
TF는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시스템도 만든다. 우선 오는 5월까지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털사 등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가 온라인에서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한다. 연내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온라인에서 한눈에 비교하고,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다. 또 은행 경영진의 보수 결정 과정에 주주가 직접 참여하는 방안과 손실 발생 시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회수하거나 삭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외에 금융취약계층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점포 축소·폐쇄 관련 절차 법제화 등을 순차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경쟁 체제 강화, 기대효과와 한계는
은행산업이 완전경쟁 체제로 바뀌면 과점 은행들의 이자 장사가 줄어들고 소비자 편익이 나아질까. 챌린저뱅크와 SVB 같은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 신규 플레이어가 진입하면 은행권 전체적으로 서비스 경쟁에 나서고 수수료 인하와 소비자 선택권 강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인가가 나더라도 대형은행과는 여전히 경쟁이 쉽지 않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금융혁신연구실장은 “5대 은행과 실질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선 자본금이 최소 조 단위가 필요한데 그만한 자본력을 갖춘 대상도 찾기 어렵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고강도 긴축 상황 등에서 공격적으로 영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공기업 임원은 “진입장벽을 낮춰 대형은행들의 과점을 흔들어보겠다는 구상은 이론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신규 플레이어가 들어온다면 규모 면에서 인터넷은행이나 지방은행 수준일 텐데 그 정도로는 대형은행의 과점 체제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어렵다. 해외에서도 특화은행을 과점 체제를 흔들어보는 용도가 아닌 특정 영역의 자금줄을 두텁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했다.
특화은행의 수익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럽 챌린저 은행의 성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챌린저뱅크는 IT 기술을 활용해 운영 방식 등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기존 은행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출시해 성장했다”면서도 “은행 수와 이용 고객 수 측면에서 챌린저뱅크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이익을 시현하고 있는 은행은 소수에 그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수익모델 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당국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따라줘야 하지만, 이럴 경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히 구분하는 금산분리 완화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당국은 또 비은행권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이용자의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본다. 예컨대 TF에서 논의 중인 증권사 법인결제의 경우 현행은 은행연계망 이용에 따른 지급결제 수수료가 1건당 200~500원인데, 증권사가 직접 지급결제망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1건당 10~14원으로 크게 줄어 증권사를 이용하는 기업들의 금융비용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TF에 따르면 보험업의 경우 자금이체 수수료 등 명목으로 매년 은행에 1000억원 이상 납부한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사와 카드사 등에 지급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면 소비자 후생이 개선되리란 연구결과도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4월 내놓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이 금융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보완 과제’ 보고서(황순주)를 보면, 빅테크사와 카드사 등에 지급서비스를 개방했을 때 은행 수시입출식 예금과의 경쟁으로 은행의 예금금리 상승이 예상된다. 2010~2020년 분기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결제성 예금이 1% 감소하면 예금금리는 2분기 동안 0.29%포인트 상승했다. 대출금리의 경우 결제성 예금이 1% 감소한 후 1년간 대출금리 상승 폭은 0.17%포인트로, 예금금리 상승 폭보다 0.12%포인트 작았다.
당국은 세부적으로 전금법 개정을 통해 보험·카드사 등에 종합지급결제업을 도입하는 방안을, 증권사는 금융결제원 규약을 개정해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금법 개정안의 핵심은 지급서비스를 빅테크 등 대형 기술기업과 카드사 등에 개방하는 것이다. 다만 이용자 보호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빅테크 등이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인가를 받으면 은행처럼 수시 입출식 계좌를 발급해 모든 지급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전금법 개정안은 이용자 자금을 예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전금법 개정안은 2021년 11월 발의(김병욱 의원)된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 없이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종합지급결제업 허용 논의는 지난 정부 금융위와 빅테크사들이 추진하다 포기한 사안이다. 네이버나 쿠팡의 고객이 보통예금 같은 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가 없을 리 없다. (한국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이나 안전관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도입돼 금융소비자 보호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예금자 보호, 금융실명제 등의 문제가 생기고, 보이스피싱 피해 급증도 우려된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일하다 대형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분들이 과거 지급서비스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곤 했는데, 이분 중에는 빅테크사 부사장 명함을 가지고 다닌 경우도 있었다”며 빅테크사들의 집요한 로비를 문제삼기도 했다.
과점 은행들의 경쟁 유도할 방안은
은행권의 ‘완전경쟁’ 체제가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한국은행은 과거 ‘은행산업의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2016년)에서 “금융기관 간 건전한 경쟁은 독과점 이익 축소를 통해 금융소비자의 후생을 증가시키고 금융산업의 발전에 기여하지만, 경쟁이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과 혁신을 수반하지 않고 특정 부문의 시장점유율 확대나 가격 인하 위주로 전개될 경우 (금융안정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
과점 체제 해체 논의는 대내외 여건이 갖춰진 후 중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하되 당장은 소비자 후생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와 TF에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 시스템과 은행권 금리 공시 강화, 점포 폐쇄 절차 개편 등을 논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병호 실장은 “은행과 고객 사이에는 정보 비대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비자 후생을 위해서라면 이 문제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대출 등 상품 공시를 강화하고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당국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금융노조 등에서는 금감원이 2021년 2월 마련한 은행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을 은행들이 따르지 않고 각자 사정에 따라 제멋대로 적용하고 있음에도 금감원이 제대로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미루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고강도 긴축과 금융시스템 우려 등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지금의 신규 플레이어 진입 논의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우선은 과점 체제 내에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인터넷은행이나 지방은행에서 금리가 낮은 대출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당국이 기반을 마련해주고, 이를 소비자들이 쉽게 비교하거나 갈아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은행들의 가격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