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금융지주 16조 순익, 잔치 벌일 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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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금융지주회사의 지난해 순이익 실적 합계가 16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한 4조6000억원, KB금융 4조4000억원, 하나 3조6000억원, 우리가 3조2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각 회사가 대략 분기당 1조원씩 수익을 냈다. 이 막대한 순이익을 둘러싸고 ‘파티’를 즐기려는 이해관계자들의 속셈이 분주하다. 주주는 배당을 많이 하라고 하고, 임직원은 성과급을 많이 달라고 한다. 감독당국은 최대한 충당금을 많이 쌓으라면서 눈치를 주고 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1층의 영업창구 /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1층의 영업창구 / 연합뉴스

누구 주장이 맞는 것일까? 이익이 많이 나면 주주에게 배당을 많이 해야 마땅하다. 이익이 많이 나면 열심히 일한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주는 것도 맞다. 또 올해 가계 및 기업 부분의 대출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비해 미리 돈을 떼어 놓으라는 말도 일리 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 성과급 주고, 특별 충당금(명목이 무엇이건 간에) 더 쌓고, 남은 돈은 시원하게 주주에게 배당하면 다 잘한 일인가?

채무자 빠진 배당·성과급·충당금 논의 아니다. 이것은 부당하다. 왜 부당한가? 잊힌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내몰려 절규하는 채무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인 금융회사들은 마땅히 이들 한계 채무자와 적극적인 채무재조정 협상에 나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부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지금 언론에 떠도는 16조원의 순이익은 이런 작업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나온 수치일 뿐이다. 채무자 입장을 싹 무시한 채 주주와 임직원과 회사가 16조원을 가지고 ‘파티’를 벌이는 것은 그래서 부당하다.

이런 필자의 주장에 대해 일부 독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도 있다. “대출 계약을 했으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약정 금액을 갚는 것이 마땅하지, 도대체 왜 채무자가 어렵다고 채권자가 나서서 일부 손해를 자신이 떠안아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의 극치이고, 이럴 경우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고 성실하게 부채를 상환하는 착한 채무자의 상실감만 더 커질 것 아닌가? 이 사람 혹시 빨갱이 아니야?”

우선 필자는 빨갱이가 아니라 대학에서 화폐금융론을 강의하는 교수다. 둘째로 위와 같은 주장이 언론에 횡행하고 또 일견 매우 그럴듯하고 조리 있는 반론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이 주장은 잘못됐다. 채무자가 변제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채권자는 그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게 법이다. 여러 거래비용을 감안할 때 법에 호소해 채권의 일부를 회수하는 것보다 채무자와 협상을 통해 채권의 일부를 회수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더 이익이 된다. 그래서 채권자는 부도 상태에 빠진 채무자와 채무재조정 협상을 하고 손해도 일부 떠안는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채무재조정(쉽게 말해 ‘부채 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굳게 믿는 분들이 계실지 모른다. 이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다음의 예를 생각해보자.

홍길동이 은행으로부터 100원을 대출받으려고 한다. 시중 무위험 이자율은 10%이고, 은행이 이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럼 대출 이자율은 얼마가 될 것인가?

10%일까? 아니다. 물론 예대마진을 통해 임직원들 보수를 주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편의상 이 측면을 무시하더라도 대출 이자율은 10%가 될 수 없다.

왜 그럴까? 홍길동이 언제나 확실하게 대출을 상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편이 좋을 때는 이상 없이 대출을 상환하지만, 형편이 안 좋을 때는 감옥에 가두어도 돈이 안 나온다(그리고 근대 이후 대출을 못 갚는다고 채무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노예로 파는 행위는 불법이다). 즉 은행은 대출 이자율을 설정할 때 언제나 홍길동의 신용도와 부도 가능성 그리고 부도 시 회수액 등을 따져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웃돈’, 즉 가산금리의 크기를 조절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6분의 5 확률로 채무를 상환하지만, 6분의 1 확률로 돈이 모자라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60원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대출 이자율은 10%가 아니라 20%가 된다. 즉 100원을 빌려갈 때 계약상의 만기 시 상환액은 120원으로 적어놓는다. 이러면 은행은 6분의 5 확률로 120원을 상환받고, 6분의 1 확률로는 60원만 회수된다. 이 평균값이 정확히 110원이 되어 은행의 조달금리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은행이 홍길동의 신용도를 평가한 후 조달금리 10%에 가산금리 10%를 더한 20%로 대출해 주었다”고 한다.

문제는 은행이 웃돈으로 받은 10%의 가산금리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가장 표준적인 의미의 보험료다. 채무자의 부도가 ‘보험사고’이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채무자가 보험료 명목으로 웃돈 10원을 더 냈다고 볼 수 있다.

가산금리는 일종의 보험료…부채 탕감해야 그럼 누가 보험회사가 되는가? 은행이다. 은행이 보험료 성격의 가산금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즉 은행은 대출 계약에서 한편으로는 채권자,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회사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만일 홍길동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는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로서의 은행은 채권자로서의 은행에 부족분을 보험금으로 지급하고, 홍길동은 면책된다. 이 거래는 동일한 은행 내부의 거래이므로 외부적으로는 그냥 은행이 60원만큼 부채를 탕감해준 것처럼 보일 뿐이다(이 상황은 홍길동이 외부 보험사로부터 보증료를 내고 보증보험 증권을 끊어 제출하고, 그 대신 은행은 가산금리 없이 10%로 대출해주는 경우와 실질적으로 동등하다. 이 경우 보험회사는 10원의 보증료를 수령하고, 6분의 1 확률로 60원=110원-50원(보증료 지출 후 홍길동 재산 10원 감소)을 은행에 지급하게 된다).

결국 은행이 가산금리 형태로 보험료를 징수하고도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처했음에도 채무탕감에 나서지 않는 것은 보험회사로서의 기능은 뒷전으로 돌리고 채권자로서의 입장만 강변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계약위반이다.

금융지주회사가 작년에 올린 약 16조원의 순이익 중 상당 부분은 가산금리 부과에 따른 것이다. 즉 보험료 수입이다. 이게 은행 ‘돈장사’의 실체다. 그렇다면 감독당국은 금융지주회사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대출금리 낮추라고? 이건 아니다. 부도 위험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험사고를 당해 낭떠러지 앞에 선 채무자에게 은행이 보험금을 주라고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채무재조정이고 부채탕감이다. 금융지주회사의 주주와 임직원은 아직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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