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08년과 2022년, 같은 점과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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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2008년의 연장전과 같은 국제경제 상황이 2022년에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여전히 ‘관제경제’란 의미다. 신경제가 주름잡던 2008년 이전만 해도 시장경제는 당당하고 꽤 청명했다. 대학에서도 인재들은 대거 금융과 재무로 몰려들고,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주요국도 금융경제 혁신으로 국가발전의 동력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 2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개최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 2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개최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준(FRB)이 가진 발권통제력의 힘이 작동해야 하는 원리도 두 지점은 같다. 2008년의 상황이 저신용도의 모기지론 확장으로 맞은 투자금융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주된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미국 당국은 강도 높은 금융산업의 혁신과 구조개혁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되레 자본시장에 무제한 돈을 풀어 다시 그들이 더 큰 돈을 벌고 교훈을 망각하게 하는 일을 했다.

2022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수습 국면에 들어간 2021년부터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 장기전망을 보수적으로 하게 해서 서서히 금리를 올리고 서민들의 물가를 관리하는 국면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까지도 일련의 긴축은 나오지 않고 중산층 이상의 관심사인 주가와 집값만 더 받치고 있는 형국이었다.

2022년 투자시장의 장외변수들

2022년이 더 어려운 건 도저히 정책과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전쟁이란 충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은 국제사회가 명분을 가지고 개입하기 어려운 양국 간 영토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생명이 유린당하고, 인근의 지구환경이 병들고, 인류의 가슴이 미어지는 상처를 입어도 속수무책으로 전쟁을 보고만 있다. 어쩌면 핵무기 사용까지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는 듯해 극한의 불길함마저 느낀다. 지금 미국은 금리와 달러를 활용해 그들 중심의 정책효과 작동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이렇게 짙은 전운 속에서 생명과 자연, 토지, 대기의 생존과 보존의 파국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선진국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장면과 관련 수치만 들여다본다. 새로운 총리가 국정을 맡은 영국 정부가 얼마 전 취한 감세정책이 비근한 사례다. 일본 기시다 정부도 국제사회나 한일문제에서 자기들 이익만 들여다본다. 독일도,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간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이탈리아가 지금 경제문화와 산업기술 선진국의 대표적인 대형 국가 그룹인데, 지구나 인류를 위한 공동의 목표는 현재 딱히 없다.

그럼에도 투자시장의 영향을 전망해보자. 2008년의 문제가 시장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2022년 문제는 경제 외적인 외생변수다. 투자시장에서는 이런 것을 장외변수라고 한다. 자연재해, 질병, 전쟁, 경제불황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금은 이 변수들이 거의 다 총출동한 양상이다. 외생변수를 정면으로 상대해 이길 수 있는 투자전략은 없다. 마치 모두가 금이 가는 얼음판 위를 함께 걷는 상황과 같다.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투자수익 면에서 보면 외생변수는 주로 대형주에 타격을 많이 준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황을 반영해 하락한 것 이상으로 더 하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에 비해 많이 오른 대형주들이 이런 상황에서 매물압박이 크다. 또 이럴 땐 오래 소외된 주식도 시장과 같이 흐름을 타서 더 어렵다. 이미 장기간 매수세가 끊긴 종목은 이런 시기엔 더더욱 잊히기 쉽다. 개별주의 저가 단타를 좋아하는 기술적 매매는 그래서 번번이 예상이 빗나간다.

장기 자산을 관리하는 대형 운용사들은 우선 일부를 채권으로 돌리지만, 전체 기대수익률은 더 내려간다. 안전자산 선호도가 커지면서 자본시장이 수익률을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증시와 부동산이 포함된 대체투자시장은 원래가 위험시장이다.

10월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10월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장외변수 사라져도 우려되는 서민경제

다만 장외변수는 어느 시기에 가면 사라진다. 그후엔 다시 열기가 달아오르기도 한다. 아마도 이번의 위기로 인한 파국이 더 이상 확산하지 않고, 모두가 바라는 생명안전과 평화유지의 길을 찾아간다면 자본시장은 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물론 그 선봉에는 국제적인 생산기업의 대형주가 앞장을 서면서 수익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 전쟁과 질병의 문제가 가라앉으면 그동안의 문제였던 생산원가 절감, 온전한 수요 회복, 자본시장의 포트폴리오 확대 효과 등이 동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이 이렇게 전개되면 지금 부동산시장의 부진한 매매동향도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날 수 있어 사실은 좀 조심스럽다. 일각에서는 당장의 현상만 보고 ‘이참에 집값이 조금 안정되려나’ 기대하지만, 우리나라 일부 대도시 도심 요지의 주택가격 앙등 문제는 그곳의 누적된 공급압박의 문제가 근간의 요인이라 단기간에 효과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당국은 이 점을 늘 관찰해야 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는 장외변수가 가라앉더라도 남아 있다. 나라마다 집권한 정파들이 자기 나라와 지지자 입장의 정책만 동원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 정부는 놀랍게도 국가주의적 입장이 분명하다. 이전 민주당 정부는 국제적인 정책에서 개방성과 공정성을 함께 강조한 열린 정당이었지만, 바이든 정부는 전쟁과 질병의 대응과정에서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 대변한다.

원화는 사실 평소에 그렇게 하락할 이유가 크지 않은 통화지만, 국제적 장외변수가 생기면 환시장에서 통화투자관리 바스켓(기준환율을 산정할 때 적정 가중치에 따라 선정되는 구성통화 꾸러미)의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지역리스크가 발생한다. 따라서 지금의 환율은 장기적으로는 원화가 다소 과소평가된 점이 있다. 다시 수출이 회복되고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흑자로 정상화되면 늘 지켜오던 1달러당 1100~1200원으로 오래지 않아 돌아갈 수도 있다.

다만 서민경제 문제는 긴 그림자가 예상이 된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강제로 사라진 일련의 ‘잊힌 노동자’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본다. 또한 그동안 너무 과민하게 확장한 비대면 사업들도 경영상의 어려움이 우려스럽다. 세상은 그리 간단하게 변하지 않는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재택근무하던 직원들은 사무실에 나와야 하고, 판매도 주로 대면으로 하게 되고, 신용이 있어야 돈을 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코로나19로부터의 정상화에 이어 전쟁의 돌파구가 어렵사리 나온다면, 정부 정책은 이번 일로 날개를 잃고 희망을 상실한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가야 한다. 그곳이야말로 관제경제가 희망의 빛을 비춰야 한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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