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부예산안이 지난 9월 2일 국회에 제출됐다. 예산은 정부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이다. 동시에 해당연도에 집행하고자 하는 정책의 집대성이다. 현재의 경제상황을 반영해야 하고 정책을 통해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나라의 미래사회 모습도 담아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예산안의 수치를 총량적으로 보면 총지출은 639조원으로 전년 대비 31조4000억원, 5.2% 늘었다. 총수입은 625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2조4000억원, 13.1%가 늘어난다. 국가채무는 1134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4조4000억원 늘어나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8%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이 수치들은 전년도, 즉 2022년의 본예산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5월 말에 2022년의 두 번째 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2년 남은 기간에 다른 추경이 없다고 가정하자. 이 두 번째 추경까지 감안한 지출과 수입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2022년 정부 재정활동의 실체에 부합한다. 2022년 2차 추경에서의 수치와 비교하면 2023년 예산이 계획하는 총지출은 전년 대비 40조5000억원, 6.0% 줄어든다. 총수입은 전년 대비 16조8000억원, 2.8% 늘어난다. 3년 연속 100조원대를 기록한 국가채무 증가 폭은 66조원으로 줄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전년 대비 0.1%포인트 소폭 높아진다.
세계의 에너지 상황은 2023년 본격적으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도, 전쟁을 조기 종결할 의사는 없어보인다. 미중 간의 갈등은 한국이 추구하는 수출주도성장의 전제조건이 되는 국제규범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반도체나 배터리 등의 제조과정에서 고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공급사슬의 주요 부분을 자국 내로 가져가려 한다. 미국과 반도체 동맹으로 묶인다면 중국과의 교류는 커다란 제약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한편 기후위기의 징후는 어느 때보다 명확하다. 2022년 여름은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기온상승과 가뭄, 장마, 태풍의 새로운 기록으로 가득했다. 전쟁이나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과 무관하게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그리고 기후위기는 양극화된 사회의 아래쪽에 위치한 이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 삶의 조건을 더 가혹하게 만들 것이다.
예산안, 당면한 다층적 위기 담았나
2023년 예산안은 경제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정부는 2023년 예산을 통해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국정기조의 변화를 확실하게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지출 규모가 추경 대비로는 6.0% 감소했으나 본예산 대비로는 5.2% 늘어났다.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2023년의 경제상황은 추경을 편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추경의 개연성이 높은 이상 미리 긴축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건전재정을 추구할 경제적 여건도 아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수출과 생산, 고용에서 총체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국제적 갈등에서 정부의 대응에 따라서는 유럽 국가들처럼 가스나 원유의 확보에 곤란함을 겪고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종의 중소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현실이 엄중해지면 국민생활의 보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마지막 행위자로서 재정을 동원해야 한다. 건전재정을 얘기할 국면인가. 지키지 못할 건전재정의 기치를 지금 열심히 흔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영구 임대주택과 청년·노인 일자리 등의 예산 삭감을 두고 “참 비정한 예산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예산은 당면 현실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국가와 사회 미래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글로벌화가 후퇴하고 지역주의 입장이 강화되면서 내수시장의 발전 없이 수출주도의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발전 모형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미래의 길을 열기 위해 디지털, 재생에너지 등 분야에서 국가의 선제적인 인프라 투자 필요성이 절실하다. 올해 한전의 적자가 30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가스요금 급등의 여파로 발전회사로부터 사들이는 전기의 도매가격은 급상승했으나 소비자들에게 원가상승을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물거릴 틈이 없다. 시간을 늦추면 후일 몇 배의 비용으로 닥칠 것이다. 해법은 오직 하나다.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견디기 어려운 서민들에 국한해 재정을 통해 소득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행태에 에너지 가격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는 서민들의 어려움은 줄여줄 수 있다. 그리고 태양력과 풍력, 지열 분야 등 재생에너지 분야로의 전환을 획기적으로 가속화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국가 차원의 선제적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취약층 외면한 예산안, 대폭 개정해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탄소 절감을 위한 대책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지, 어느 정도의 기온상승과 강우량의 계절적 변화로 나타날지, 장기적인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에 대처하는 농업을 비롯한 산업적 영향과 수자원 이용과 관련한 국민적인 대처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도 정부의 선제적 인프라 투자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예산안은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강조하면서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선제적 투자 내용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풍력발전소 등의 투자과정에서 발생할 보상재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산안에서 복지 분야 증가율은 4.1%에 그친다. 증가 내용을 순액으로 보면 8조9000억원 늘어난다. 공적연금 의무증가가 8조3000억원이며 여기에 물가를 반영한 기초연금 증가분을 추가해 생각하면 복지 분야 예산증가액은 모두 연금 분야에서의 자연증가분으로 사용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내년에 사용할 복지예산의 규모는 실제가치로는 감소한다고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복지 분야 예산편성의 잘못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삭감이다. 이는 주거복지 측면에서 국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주거문제가 어디에서 풀리지 않고 있는지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일자리 사업에서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도 이 사업의 소득보장적 성격과 노인들의 사회참여를 통한 정신적·육체적 건강증진 프로그램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단견으로 지적된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낮아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복지예산은 향후 상당기간 10% 정도의 증가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 정부예산안이 국회에서 대폭 개정되기를 바란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