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투자’와 ‘데이터’로 농업의 미래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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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쥬빌리파트너스 하정희 투자팀 상무

애그테크 기업 랩씨드 황동주 대표

농업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조선시대에 국한된 말이 아니다. 농업은 탄소중립이라는 지상 과제 앞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살펴야 할 산업으로 부상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도 하지만, 탄소 감축 잠재력도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식량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면서 식량위기가 부상하고 있다. 세상의 근본이 기후위기와 전쟁으로 흔들리고 있다. 식탁 물가로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를 지나면, 기근과 분쟁이라는 진짜 괴물이 찾아올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려면 농업이 변해야 한다.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경작지의 탄소흡수를 늘려야 한다. 이상기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하정희 D3쥬빌리파트너스 투자팀 상무(왼쪽)와 황동주 랩씨드 대표가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아카데미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하정희 D3쥬빌리파트너스 투자팀 상무(왼쪽)와 황동주 랩씨드 대표가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아카데미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인류의 미래가 농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단법인 다른백년이 지난 9월 6일부터 오는 12월 13일까지 매주 화요일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을 주제로 연속강연을 열기로 한 배경이다. 애그테크(농업기술·Agriculture Technology) 스타트업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뜻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까지 최일선에서 한국의 미래 농업을 그려가는 기업가·투자자·연구자가 강연자로 나선다. 강연의 물꼬를 뜬 임팩트 투자사 D3쥬빌리파트너스의 하정희 투자팀 상무와 애그테크 기업 랩씨드의 황동주 대표의 강연을 묶어 소개한다.

탄소중립 열쇠 쥔 농업, 투자가 필요하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하정희 상무는 반도체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 기업 전략, 파이낸스 등의 경험을 거쳐 임팩트 투자에 발을 들였다. 하 상무는 “마흔을 넘기면서 이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보다 높은 의미를 추구하는 일에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둘째를 낳으면서 아이들이 살아야 할 사회와 지구의 미래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에 D3쥬빌리파트너스의 설립자인 이덕준 대표를 만나 임팩트 투자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ESG) 경영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노동자 안전 등 사회적 책임에 소홀했을 때 기업이 맞닥뜨릴 법적 책임과 시장에서의 외면 등 위협을 줄이고자 하는 리스크 관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임팩트 투자는 사업모델 자체가 사회 및 환경 문제 해결과 연결된 회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돈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투자 철학의 차이가 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사들은 그간 에너지·순환자원·지속가능 농업 등 기후·환경위기 해결 영역과 일자리, 교육, 바이오헬스 등 사회적 격차 해소를 위한 포용적 혁신이라는 두 영역에 꾸준히 투자했다.

하 상무는 임팩트 투자사가 농업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후위기는 결국 농업 생산성, 식량 생산과 연결되고, (가격이 높아질 경우 그 접근성에서) 사회적 격차가 심화되는 한복판에 농업이 있기 때문에 임팩트 투자사가 농업적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에 더하여 농업이 발전 분야에 이어 탄소 감축 잠재력이 큰 산업으로 꼽힌다는 점도 지적했다.

기후위기 연구기관인 ‘프로젝트 드로다운’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인류가 갖고 있는 기후위기 해법만 더 큰 규모로 활용해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유지할 수 있는데 감축 효과가 큰 상위 10개 해법 중 3개가 농업에 속한다. 하 상무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온실가스 감축법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로의 이행이지만 탄소 감축 효과의 1·2위는 음식물쓰레기 감축과 육류 위주 식단을 뒷받침하는 축산업의 개선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음식물쓰레기를 1위로 꼽는 이유가 있다. 운반 중 냉장시설이 뒷받침되지 않아 상하거나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한 못생긴 과일, 채소 등이 버려져 매립돼 썩는 과정에서 메탄이 나오고, 모아 태우는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하 상무는 “지구 한쪽에선 기아 문제가 여전한데, 다른 한쪽에선 생산된 농산물들이 식량 역할도 못 하고 온실가스 배출원의 역할만 하고 있다. 그 양이 연간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에 달한다”고 말했다. 콜드체인을 잘 관리하거나 적절하게 보존제를 사용해도 상당한 양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식량위기가 도화선이 돼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기후투자가 필요한 때다. 하 상무는 아직 농업 분야가 차지하는 무게감에 비해 투자가 미진하지만, 2015년 이후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인정받은 기후·환경 유니콘 기업 50개 중 10개 정도가 애그테크 기업인 것은 고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주요 투자 대상은 수직농장이나 로봇과 센서를 이용한 농업 데이터 플랫폼 기업, 작물 품종 개량 분야의 기업들이다. 배나 사과껍질의 성분을 자연 유래 보존제로 개발한 어필(Apeel) 등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거둘 수 있어야 움직인다는 한계가 있다. 하 상무는 “기업과 투자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아시아개발은행 또는 월드뱅크 등의 ‘인내 자본’이 채워줘야 하고, 그래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정치와 외교가 풀어야 한다”면서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몬트리올 의정서를 시작으로 전세계가 오존층 파괴에 공동으로 대응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처럼, 기후 문제에도 한마음이 돼 움직이면 결국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농산물, 데이터가 살린다

황동주 랩씨드 대표는 농업 데이터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듯, 농업도 결국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이 플랫폼 경쟁에서 우위에 설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황 대표는 지난 9월 13일 강연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 많이 적용됐지만, 농업 분야에선 발전이 더디기 때문에 내가 들어가면 변화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웹에서 구글이, 모바일에서 카카오가 나왔다면 다음 대기업은 농업분야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분야에서도 이미 자율주행 로봇과 드론, 스마트팜 제어에 정밀기기를 사용하지만, 아직까진 사용자 편리성을 높이는 데 더 집중하는 상황이다. 황 대표는 앞으론 생산성 향상과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데이터 확보가 중요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데이터가 있다면 최적의 수확 시기나 농약 살포 시기를 파악할 수 있고, 질병 발생 등 리스크 관리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농업분야 데이터는 환경, 생육, 농작업 데이터 등 3가지로 나뉜다. 센서 등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 생육 데이터와 달리 농작업 데이터는 수집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파종, 수확, 농약 살포 등 농부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인데 대다수 농부는 이를 기록하지 않는다. 랩씨드는 이 농작업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카메라를 이용해 자동으로 영농일지를 작성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아직 농업 데이터로 수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로컬푸드 마켓을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온라인상에서 구축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농업 가치 사슬 전체를 잇는 공급망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급망 데이터가 있다면 생산물 이력을 추적할 수 있어 시장 참여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버려지는 농산물을 줄여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농산물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의 급격한 변동은 결국 생산과 관련한 정보 비대칭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농가에서 어떤 작물을 생산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황 대표는 “농업은 가장 큰 산업이면서도 가장 느린 산업이다. 동시에 새로운 시장 참여자를 필요로 하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면서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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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