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위기감 속 긴축재정, 옳은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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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감소·사회 안전망 부실’로 이어져 미래세대 부담 우려

경제위기 때 재정당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맞을까. 이 물음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고 단호하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급격히 불어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됐으니, 이제부터라도 고강도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의 긴축은 국가채무와 재정수지의 엄격한 관리, 정부 지출과 조직 규모 축소 등이 골자다. 씀씀이와 몸집을 줄이면 재정상태가 나아질까. 반론과 비판도 만만찮다. 수출·소비·투자가 둔화하고, 통화당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사상 초유의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에 나섰다. 국내·외 경기침체가 올 하반기를 지나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재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정의 선순환과 급속한 고령화,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지출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증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는 감세 일로를 걷고 있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가 ‘감세와 재정의 긴축’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을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7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새정부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방향을 논의하는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7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새정부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방향을 논의하는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어떻게

윤석열 정부 5년의 재정운용 기조는 ‘긴축’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나빠진 재정상태를 정상화하고, 미래 국가재정의 건전화 기틀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재정지출을 늘려 경제가 회복되고 세수가 늘면 결과적으로 재정건전성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확장재정을 이어간 문재인 정부와 간극차가 크다. 활용되는 대표적인 지표는 나랏빚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가 올해 약 11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5년 만에 국가채무가 416조원 증가한 것으로, 직전 5년간 국가채무 증가치(170조원)의 2.4배에 달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13일 ‘제45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지난 5년간 가계부채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늘었고, 국가채무도 이 기간 400조원이 늘었다”고 했다.

긴축재정의 밑그림은 지난 7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왔다. 우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2027년까지 50% 중반대에 묶어두기로 했다.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연말 기준 49.7%(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정도로 예상되는데, 상승 규모를 임기 내 5~6%포인트 내로 막겠다고 했다. 재정수지 관리도 엄격해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정 지표로 활용한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를 버리고 관리재정수지를 적용한다. 관리재정수지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하고 산출하는 지표다. GDP 대비 적자 비율이 통합재정수지보다 통상 2%포인트가량 더 높다. 구체적으로 관리재정수지를 GDP의 마이너스(-)3.0% 이내로 꾸려가겠다는 목표다. 재정을 통제하기 위한 재정준칙도 강화한다. 지출 구조조정 수준은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예산안과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이를 기반으로 짜여진다. 8월 중 기본 윤곽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공무원 인력 감축에도 속도를 낸다. 부처별 공무원 정원의 1%를 감축·재배치하는 ‘통합정원제’다. 역대 정부의 공무원 총 정원 규모는 노무현 정부 97만8000명, 이명박 정부 99만명, 박근혜 정부 103만2000명, 문재인 정부 116만3000명 등이다. 공공기관의 청사와 자산의 매각, 복리후생 축소 등 구조조정도 동시에 추진한다. 절감한 재원은 국정과제와 취약계층 사회안전망 강화에 투입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가 치솟고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것은 맞지만 아직까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우선은 재정당국은 재정의 건전화에, 통화당국은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2.25%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2.25%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향후 대내외 경기가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의 글로벌 확산, 실질금리 인상, 중국 경제성장 둔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언급하며 “2022년은 힘든 해가 될 것이다. 2023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현시점의 국내 경기는 수출·소비·투자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금리는 큰 폭으로 인상됐다. 통화당국은 지난 7월 13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0%포인트(연 1.75→2.25%) 올렸다. 추가 인상 가능성도 크다.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주요국 성장세 약화의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2.7%)를 다소 하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경제 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금리 인상은 경제주체들의 비용 부담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의 투자를 감소시키고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특히나 지금의 인플레이션 요인이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 즉 대외 요인이라는 점에서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의 고통은 커지는데, 급속한 경기 악화로 민생 어려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재정·통화 당국의 긴축으로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과 가계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올 하반기를 지나 내년에도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는 점에서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출 감소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경직성 예산들을 제외할 때, 결국 사회안전망 구축 등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들어가야 할 예산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 11일 논평에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자산·소득의 양극화 문제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유연한 재정운용을 통한 복지지출 확대는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사회적 요구임에도 (7월 7일)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시민의 그 어떤 요구에도 답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엇나간 재정건전성 구호와 과도한 국가채무 관리는 결국 서민, 취약계층의 삶을 더 악화일로로 빠뜨릴 것”이라고 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재정건전화를 위한 긴축은 자산 과세를 강화하는 등 증세를 펼치면서 지출 효율화를 병행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증세 없이 법인세와 소득세 등 감세와 재정의 긴축만 얘기하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이어 “재정지출로 얻을 수 있는 소득창출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감세와 긴축으로만 재정을 운용하면, 세수 감소와 사회안전망 부실로 이어져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만 키우게 될 것”이라며 “감세와 긴축의 병행은 미래세대를 포기하는 최악의 정책 조합”이라고 밝혔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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