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서비스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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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의 ‘팔’을 똑 닮아 있었다. 테이블에 고정된 원통 위로 몇개의 원통을 이어붙이고 끝부분에는 손가락 역할을 하는 집게를 달았다.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자 처음에는 몸을 풀 듯 상하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내 뒤쪽에 놓인 컵을 들어 안에 담긴 갈린 원두를 드리퍼(dripper) 위로 쏟아부었다. 원두가 평평하게 담기도록 드리퍼를 한차례 흔드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준비작업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오른편에 놓인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드리퍼 위로 원형을 그리며 물을 부었다, 멈췄다를 몇차례 반복하며 미세하게 물양을 조절했다. 이내 익숙한 커피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주전자에 남은 뜨거운 물을 안전하게 버리고 나서야 그것은 작동을 멈췄다.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가 핸드드립 커피를 완성했다.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카페 라운지 엑스에서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 김찬호 기자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카페 라운지 엑스에서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 김찬호 기자

지난 5월 16일 방문한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9.81 파크 지하 1층 카페 ‘라운지 엑스’의 풍경이다. 로봇 ‘바리스’는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바리스’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는 무인 로봇 카페와는 다르다. 단순히 에스프레소 기계가 내린 커피를 ‘전달’하는 게 아닌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인간 바리스타가 준비해둔 원두의 특성에 맞게 물을 붓는다. 바리스에는 나선형을 그리거나 꽃을 그리듯 작은 원을 만들며 물을 부을 수 있는 알고리즘이 미리 입력돼 있다.

바리스가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면,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도 잠시 멈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로 젊은 관광객임에도 로봇이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모습은 꽤나 흥미로운 광경이다. 로봇 드립커피를 주문한 A씨는 “아이가 신기해해서 한 번 더 보여주려고 주문했다”며 “미세한 물 조절이 가능한 사람이 만드는 커피와 맛이 같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모습만 보다가 놓치는 광경도 있다. 바리스의 뒤편에서 또 다른 로봇 ‘아리스’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로봇 2대가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은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보던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바리스가 단순한 홍보수단인 것은 아니다. 카페 직원 B씨는 “따로 개입하지 않아도 커피를 만들어놓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날에는 일손을 덜어준다”고 말했다.

바리스는 어느 순간 인간의 일상으로 훅 치고 들어온 로봇의 사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는 제조업 중심으로 이용하던 로봇의 용도 확산을 촉진했다. 전염 우려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로봇은 각종 서비스업에 속속 진출했다. 노동력 부족,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로봇을 도입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기술의 확산 양상이다. 역사 속 패러다임의 전환은 늘 이렇게 예상치 못한 충격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확산은 제조 로봇 중심에서 서비스 로봇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서비스 로봇, 무엇이 다를까 서비스 로봇은 고객지향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기계 또는 자동화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고객의 특정한 요구를 감지, 이해,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 서빙 역할을 하는 로봇이나 인천공항에서 활약 중인 길 안내 로봇 ‘에어스타’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서비스 로봇

서비스 로봇을 키오스크 등과 혼동하기 쉽지만 지향점, 구현 형태 등에서 차별화된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는 고객이 이용법을 숙지하는 등의 학습이 필요하다. 이는 사실상 종업원의 역할을 고객이 분담하는 것이다. 반면 서비스 로봇은 고객이 별도의 이용법을 숙지하지 않아도 로봇 스스로 ‘종업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다. ‘바리스’가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고객의 수고가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다수 연구에 따르면 고객들은 서비스 로봇을 사회적 개체 또는 사회적 존재로 인식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이청림 경기대 교수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논문 ‘로봇 vs 사람: 종업원의 서비스 성공과 실패가 고객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비교 연구’에 따르면 고객은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받은 경우 종업원이 사람인지, 로봇인지 신경쓰지 않았다. 반면에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는 로봇보다 사람 종업원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로봇에게 관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직까진 고객들이 로봇보다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높은 기대치를 갖는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은 서비스 로봇이 대중화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고객들은 로봇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서비스 로봇이 고객에게 한번 부정적 경험을 남기면 이를 도입한 업체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서비스 로봇에 대한 고객의 인식은 기업들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로봇 도입이 비용 절감과 홍보 측면에서 도움은 되지만 서비스가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저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확산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비대면이 서비스의 기본이 되면서 관련 업계들이 빠르게 서비스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호텔, 식당 중심으로 확산되는 로봇 서비스 로봇 도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호텔업계를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은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서비스 로봇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호텔에서 일하는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3차원 공간 매핑(지도화)과 자율주행 기술 등을 갖추고 있다. 주로 투숙객이 원하는 생수나 수건 등의 물품을 객실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비스 로봇 ‘엔봇’이 여기서 일한다. KT와 현대로보틱스가 엔봇을 만들어 공급했다.

‘엔봇’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투숙객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방까지 운반한다. 이 호텔 관계자는 “투숙객들이 호텔 직원들의 물품 전달보다 엔봇의 운반을 선호한다”며 “방역 요인도 있지만 아이에게 로봇을 보여주고 싶어하거나 SNS에 엔봇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롯데호텔의 ‘엘봇’,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의 ‘탐코봇’, 서울 드래곤시티호텔의 ‘노보’ 등도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또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역시 LG가 만든 로봇 ‘클로이’를 올해 안에 도입할 방침이다.

서비스 로봇 도입이 늘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식음료 업계다. 특히 ‘비트’는 빠른 속도로 로봇 카페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비트는 서울 롯데월드를 비롯한 관광지, 대학 캠퍼스, 기업 본사 등으로 매장을 확장해 5월 기준, 약 170개의 지점이 있다. 매출 역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비트를 운영하는 비트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서울 롯데월드 비트 지점의 지난 4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가 넘었다. 로봇이 일을 하는 만큼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 비대면이라는 점 등을 성장세의 비결로 꼽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로봇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를 고객들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로봇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객의 재방문을 막지 않을 정도로 품질 관리가 된다는 의미다.

위부터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카페 라운지 엑스에서 로봇 ‘아리스’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로봇 카페 ‘비트’의 서울 롯데월드 지점.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점에서 운영 중인 ‘엔봇’ /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점 제공

위부터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카페 라운지 엑스에서 로봇 ‘아리스’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로봇 카페 ‘비트’의 서울 롯데월드 지점.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점에서 운영 중인 ‘엔봇’ /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점 제공

요식업계에 진출한 서비스 로봇은 주로 서빙 업무를 담당한다. 서빙 로봇을 공급하는 선두 업체는 이동통신 업체로 익숙한 KT와 대기업 LG다. KT는 기존 유무선 사업을 다각화해 디지털플랫폼(디지코) 사업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디지코의 대표영역이 바로 로봇 사업이다. KT는 서빙로봇뿐만 아니라 효도로봇, 방역로봇 등으로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로봇의 매핑, 자율주행, 음성인식 및 제어 등의 소프트웨어 측면을 KT가 담당하고 있다”며 “주요 신사업의 하나로 로봇 영역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LG 역시 서빙, 바리스타, 셰프, 잔디깎이 로봇을 계속 내놓으며 사업을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가올 30년, 로봇 시장의 미래 서비스 로봇 시장의 확대는 각종 통계 수치로도 확인 가능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지난해 공동발간한 ‘2020년 기준 로봇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2020년 국내 서비스 로봇 시장의 규모는 약 8577억원으로 매출액과 사업체 수 등에서 모두 제조업용 로봇의 성장률을 압도했다.

전망이 밝다 보니 대기업의 로봇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는 추세다. 지난 3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종희 부회장은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는데 그 첫 행보는 로봇”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로봇사업팀’을 만들었다. 첫 상용화 제품인 의료용 로봇 ‘젬스’ 출시도 앞두고 있다. 최근 금리 인상 여파로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증시에서도 로봇 관련 업체들은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역시 서비스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한국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제안한 ‘서비스 로봇의 소프트웨어 모듈용 정보모델 표준안’이 신규작업표준안(NP·New Proposal)으로 채택됐다고 밝혔다. 서비스 로봇은 소비자 필요에 따라 기능이 탑재된 모듈을 탈부착해 조립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때 각 제작업체가 만든 모듈을 결합하려면 호환성을 높이는 통신 표준이 필요하다. 이 표준안으로 한국이 제안한 기준이 채택됐다.

제품 생산의 효율을 높이려 사용하던 로봇이 코로나19 바람을 타고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일상에 퍼진 비대면 선호 현상은 로봇에 대한 거부감마저 누그러뜨리는 중이다. 다가올 30년,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서비스 로봇은 인간의 일상을 얼마나 바꿔놓을 것인가.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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