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월 중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추진
‘가장 광범위하고 시장 개방도가 높은 자유무역협정(FTA).’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 뒤따르는 수식이다. CPTPP는 이른바 ‘메가 FTA’로, 가입국 간 상품무역 분야에서 최대 96%의 관세를 철폐한다. 현재 가입국은 일본, 호주, 멕시코, 칠레, 베트남, 캐나다 등 11개국이다. 전신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미국이 2016년 가입해 세력이 커졌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탈퇴를 선언했다. 이듬해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CPTPP로 출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CPTPP는 세계 무역의 15%가량을 차지한다. 가입국 GDP는 전 세계 GDP의 12.8%, 무역액은 세계 무역의 15.2%에 해당한다(2019). 세계 인구의 6.6%를 보유한 시장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는 CPTPP 가입 절차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CPTPP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통상 협정이면서 차기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는 과제다. 가입할 경우 한국은 급변하는 통상환경에 대응할 기회를 얻는 반면, 후발주자이니만큼 개방에 앞서 내부적으로 취약 산업 정비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가입 신청 시점으로 지목한 ‘2022년 4월’을 맞아 CPTPP를 둘러싼 여러 논의를 짚었다.
농수산업 타격 불가피… 대책 필요 가장 비싼 ‘입장료’를 치르게 될 분야는 농업과 수산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CPTPP 가입 시 경제전망’ 자료(2022년 3월 25일 발표)를 보면 향후 15년간 연평균 기준 농업 생산은 853억~4400억원 감소하고 수산업 생산은 69억~724억원의 감소가 예상된다. 제조업 생산이 약 1조1800억~1조8200억원 증가하리란 전망과 대조적이다. 칠레,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 등 1차 산업 강국에 시장을 여는 만큼 농수산업계의 희생이 뒤따르리란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자연히 농어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CPTPP저지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4월 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삭발식과 상여 행진을 벌였다. 앞서 산자부가 지난 3월 25일 연 공청회는 농어민 반대로 예정보다 일찍 종료되는 파행을 맞았다. 이들은 정부에 더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공개하라고 요구해왔다. 이학구 비대위원장(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역대 최고 수준의 시장 개방을 지향하는 만큼 그동안 체결한 어떠한 FTA보다 농수산업 분야 피해가 클 것”이라고 했다.
농업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우려하는 건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정 정비다. CPTPP에 가입하려면 농축산물 수입허용 여부를 평가하는 단위를 기존의 ‘국가·지역’이 아닌 특정 구역이나 농장 등으로 ‘구획화(세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어느 국가에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가축질병, 식물 병해충이 발생하면 우리가 해당 국가 농축산물의 수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지만, CPTPP 하에선 질병이 발생한 국가이더라도 청정지역, 안전함이 인증된 농장·도축장 단위로 우리 쪽에 수입을 요청할 수 있다. 일종의 ‘검역 장벽’이 사라지는 셈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은 (검역의 한계 등을 이유로) 복숭아, 사과, 배의 수입을 하지 않는데 만약 새로운 SPS 규정을 따를 경우 기존처럼 시장 개방을 막으려면 더 엄격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구획화(세분화)의 경우 반대로 생각해보면 꼭 우리한테 불리한 건 아니다”고 했다.
수산업 분야에서는 영어자금(정부가 어업 경영에 소요되는 운영비에 사용되도록 저리로 융자하는 자금) 등 각종 수산보조금이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언급된다. 세계무역기구(WTO)도 남획 방지 등을 목적으로 수산보조금 금지를 논의해왔다. 김도훈 부경대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이러한 흐름이 국제적 동향으로 자리 잡으면 결국 CPTPP에서도 수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어업용 면세유는 현재 (CPTPP의 규제 대상에) 빠져 있지만 면세유에 대한 자료는 제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결국 시점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 수산자원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더 큰 시장에 개방된다면 어업인들의 안정적 소득확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추가 개방 요구에 대비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에 민감한 일본은 앞서 쌀 관세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호주에 쌀 8400t을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일부를 개방했다. CPTPP 회원국 중 이미 한국과 FTA를 맺은 국가들(베트남·칠레·호주 등)이 이번에 더 적극적으로 농수산 분야 개방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한호 교수는 “이들은 자신들이 과거 FTA에서 한국으로부터 (농산품의) 충분한 개방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CPTPP 가입과 개별 협상에 나서면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한일관계도 매끄럽지 않고, 상대국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추가 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CPTPP 국가 중 농업 강국이면서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멕시코로, CPTPP를 통하면 시장 개방의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시마산,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나 또 하나의 복병은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식품의 수입 문제다. CPTPP는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새 가입국을 받기 때문에 미국이 떠난 이후 CPTPP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이 한국에 후쿠시마산 수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실제로 요구할지 여부는 가입 신청 후 협상 단계에 가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대만 사례를 주목한다. 일본이 지난해 9월 가입을 신청한 대만에 후쿠시마 식품 수입을 요구했고, 대만은 지난 2월 이를 받아들였다. 대만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1년 만에 전량 통관 검사 등 조건을 달아 후쿠시마 포함 일대 5개 현(縣)의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으로선 협상 카드인데, 내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김양희 국립외교원 교수), “일본은 수출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당연히 요구할 것”(김도훈 교수)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동이 지난 3월 25일 “국민 건강권도 위협하는 협정의 일방 추진에 반대한다. (대만에 이어) 우리도 일본의 방사능 의심 농축수산물 수입을 허용할 수 있어 국민 건강까지 우려되고 있다”는 입장문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일본에서는 대만과의 협상을 두고 “CPTPP 가입을 신청한 중국이나 가입에 의욕을 보이는 한국과 협의를 진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아사히신문 2월 12일 사설)이란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현재 한국은 후쿠시마 포함 8개 현에서 생산하는 수산물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수산업계는 ‘2013년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한다. 당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가 누출됐다는 보도 이후 국내 수산물 소비가 급감했다. 소비자들이 일본산 수산물뿐만 아니라 아예 수산물 섭취 자체를 대폭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3년 10월 18~20일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누출 보도 이후 수산물 소비를 줄였다는 소비자가 77.5%였고, 줄인 양은 절반가량(48.9%)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정부가 2023년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미 수산업계의 근심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후쿠시마산 수입은 소비자 심리·반일감정 등의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 안전성과는 무관하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도훈 교수는 “예를 들어 8개 현이 아닌 다른 지역에 가서 가공을 하고 들어오는 식품에 대한 검사 같은 것들을 어디까지 할지와 같은 대응책이 정부에서 보다 면밀하게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절차는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2022년 4월’을 CPTPP 가입 신청 시점으로 내걸고 절차를 추진해왔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10년 가까이 만지작거리던 카드에 최근 다시 추진력이 붙은 건 중국이란 변수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국은 CPTPP 가입 신청서를 냈다. 곧 대만도 뒤따랐다. 이 둘의 가입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만장일치로만 신규 국가를 받아들이는 구조상 새로 들어가려는 입장에서는 기존 회원국이 하나라도 적을 때 가입 절차를 밟는 게 협상에 유리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CPTPP 가입 신청을 위해 지난 3월 25일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에 따른 공청회 절차를 마쳤다. 다음은 국회 보고가 남아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재 논의는) 실제 협상 결과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추후 협상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입을 신청하는 정도에서는 국회에 보고 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가입 신청은 말 그대로 번호표만 받는 것이다. (타국 사례를 보면) 신청했다고 해서 협상을 바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달까지 가입 신청만큼은 해놔야겠다는 게 현 정부의 의지”라고 밝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학영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우리가 통상 영역을 확대해 가야 한다는 틀에서는 여야 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달 상임위가 열리면 CPTPP 관련 보고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다음부터다. 농수산업계의 우려를 수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농어민들은 각지에서 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6일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만나 우려를 전달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위성곤 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은 “농업 부문 피해액을 산출하고 대책을 마련한 후에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협정에 가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재차 말했다. 이 같은 반대에 대해 정부는 가입 신청 이후에도 논의의 기회는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농어민 의견을 반영하고, 민감한 분야에 대한 피해 대책을 만들고 국민 판단도 듣게 된다. 이런 과정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가입 신청은 문재인 정부에서 하더라도, 구체적인 협상과 피해 분야 대책 마련이라는 과제는 차기 정부가 이어받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약에서 CPTPP와 같은 역내 무역협정을 활용하겠다고 밝혔고, 당선 이후 이에 관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보고도 받았다.
‘땜질식 대책’을 넘어서 피해 산업 보완은 시장 개방을 할 때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문제다. 이번에 정부는 ▲CPTPP 가입으로 인한 피해에 충분한 제도적 보상 ▲협상 타결 전에도 취약분야 경쟁력 제고 지원 확대 ▲우리 강소기업의 공세적 발굴을 내걸었다. 농수산업 분야에는 직접적 피해보상을 강화하고 폐업지원 제도를 개선한다는 방안을, 일본 대비 경쟁력이 낮은 소재·부품·장비 제조업에는 기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대안을 담았다. 김봉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직접 피해 보상제도는 해당 상품이 수입됐을 때 그와 똑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에만 적용이 되고 품목 간 대체소비가 일어나는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축산물 수입이 늘어나 수산물 소비가 줄어드는 건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간접적이고 포괄적인 영향까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은 CPTPP 가입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다 얻기만 하는 게임이란 건 국제사회에 없다. 내는 것과 받는 것을 대차대조표로 그려봤을 때 그래도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종합적으로 보고, 전체적으로 플러스가 나오면 들어가는 거다. 지역·다자 차원의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혼자 휘둘리게 된다. 보호막은 필요하다. 이런 이점과 특정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저울질해봤을 때 훨씬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다.” 이어 그는 “이제 우리도 무역 규범을 그냥 좇아갈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만들어나갈 정도의 체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CPTPP가 무역 규범을 새로 만들어가는 포럼의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