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예산관료 폐쇄성 깨야 재정운영 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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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재정운영과 관련해 특별한 제안을 했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예산실을 기재부에서 들어내자는 것이다. 청와대, 총리실로 보내거나 혹은 기획예산처를 새로 만들어 청와대 직속으로 두거나 하는 방식으로, 여하튼 현재의 기재부로부터는 부서를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획기적인 제안을 하려면 국민에게 무엇 때문에 그런 변화가 필요한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기재부가 예산전담부서로서 정치권의 결정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인지, 그리고 예산실의 소속을 변경하면 어떤 실제적 변화가 생긴다는 것인지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선거에서 개혁성을 강조해 득표에 도움을 얻으려는 것으로만 치부될 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막강한 예산편성 권한

어느 나라에서나 예산편성의 권한은 막강하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예산편성 권한을 가진 재무부의 수장은 수상 다음의 권한을 가진다.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이 그러하다. 다른 부서의 사업예산을 반대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의회에 속한 집권당 의원이 부서의 장이 되므로 정치권과 예산관료 간에 의견 차이를 부서 내에서 조율한다. 미국은 백악관과 의회 모두에 예산편성의 전문성을 가진 관료 그룹이 속한 조직이 있어 의견 차이를 각각 조율한다. 조율된 의견을 바탕으로 행정부가 예산을 제안하면 의회에서 이를 심의해 결정한다. 우리는 예산전담부서인 기재부의 장을 대체로 기재부 출신 관료가 맡는다. 정치권과 예산관료 간에 의견 차이 조율 과정이 예산부서(기재부) 외부에서 이뤄진다.

중요한 점은 재정운영의 거버넌스, 즉 예산편성의 책임과 권능을 정치권과 관료들한테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산관료는 직업적인 관료로서 업무 경험이 누적돼 있고, 모든 예산 관련 정보를 관장한다. 자리 자체가 최고의 예산전문가가 될 수 있는 코스다. 정치가는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사람으로서 주권자의 의지를 대변한다. 예산편성에서 주권자 국민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예산 배분의 큰 방향성을 결정할 때 경제학이나 다른 어떤 학문도 지침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지원이나 연구개발투자를 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보건과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나은지에 학문적으로 엄밀한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개별 주권자들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집약된 방향으로 예산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합의한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다.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적하는 내용은 바로 이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예산관료는 정치권의 예산 결정에 실제로 제동을 건다. 기재부 외의 부서와 지자체는 예산확보를 위해 국회보다 기재부 예산관료에게 줄을 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도 지역구 사업예산을 확보하려면 예산관료에게 잘 보여야 한다. 청와대와의 관계에서도 기재부는 자신들의 의견을 상당부분 관철시킨다. 기재부가 가진 지식과 전문성의 힘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정보비대칭성이 작용할 여지도 크다. 적어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사회 일각에는 존재한다. 기재부가 부서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해 재정의 확대가 더 가능하고, 그것이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와 소상공인 등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데도 재정의 어려움을 근거로 정치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 인력 투입 가능해야

예산실의 관료가 정치가들의 예산요구에 반대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부당한 요구를 견제하려면 예산관료가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이를 누를 수 있는 논리나 지식을 동원해 이를 지적하면 된다. 예산관료의 행태를 우려하는 시각에도 근거는 있다. 기재부 관료는 각종 정부위원회에 파견하는 고위급 자리를 확대하고, 은퇴 후 지자체의 장으로 선출되거나 지자체, 공기업의 수장 및 임원 자리를 독차지한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예산을 넉넉하게 따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재부 출신은 오라는 곳이 많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인력구성의 폐쇄성 때문이다. 해당 영역의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집단 외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업무처럼 예산실 공무원의 예산편성 및 집행업무도 대체 가능한 인력이 없다.

그 폐쇄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내부적 힘은 이해관계동맹에 있다. 전관예우다. 고위공무원은 통상 일찍 퇴직하며 퇴직 후 법무법인, 금융·공공기관, 대기업의 임원 등 민간영역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보통 매우 높은 보상을 받는다. 높은 보상을 지불하는 이유는 퇴직자들이 현직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공공의 특혜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해관계의 사슬구조에서 관료는 아무도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부처의 조직을 바꾸고 소속을 변경해도 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퇴임 후의 보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근본적으로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 이재명 후보의 제안대로 예산실의 소속을 변경해도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검찰개혁과도 비교되는 사안이다. 검찰개혁에 시민은 높은 기대를 가졌고, 공수처를 만들면서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생각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누구도 공수처를 언급하지 않는다. 뭐가 바뀌었는가? 공수처를 만들어도 검찰에서 검사를 데려가야 기소업무를 할 수 있다. 이들도 언젠가는 법무법인으로 가거나 변호사를 개업해 법원 및 검찰을 상대로 업무하면서 돈을 벌어야 노후가 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관예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변할 수가 없다.

예산관료의 폐쇄성을 깨야 한다. 외부 인력들이 예산부서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단기적 손실은 기존의 조직 내부 사람들보다 외부에서 새로 들어간 사람들이 일을 잘 못 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경험이 다르므로 일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이 외부출신들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기도 할 것이다. 장기적 이익은 투명성이다. 공동의 이해로 묶인 조직의 외부에 대체세력을 만들어줌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시도했다. 모든 부처에 개방직 공무원을 만들어 민간 전문가들에게 임용기회를 줬다. 이명박 정부에서 크게 후퇴했고, 그 뒤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를 다시 대폭 확대해야 한다.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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