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정치·경제적 기반을 지닌 국가, 독일을 이끌었다. 2005년 51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 동독 출신의 정치인은 취임 당시 11%가 넘던 실업률을 5.6%로 낮췄고, 연방정부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했다. 중도우파 정당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시리아 난민 100만명을 수용했다. 그는 트럼프가 자유세계의 질서를 위협할 때 실질적인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불렸으며 변덕스러운 남성 정치인들이 세계를 위협하는 한가운데서 합리적이고 확고한 리더십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이끌었다. 그는 사생활과 정치를 완벽하게 분리했고, 그 어떤 비리에도 연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디어에 등장하기 위해 애쓰는 한국 정치인들과는 반대로 정치의 본질에 충실했다. 그의 이름은 앙겔라 메르켈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그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총리가 되기 전 과학자로 훈련받았다.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1986년 베를린과학아카데미에서 물리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남편은 양자화학자였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여행을 좋아하던 메르켈은 과학자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동베를린에서 자유독일청년단의 젊은 동료들과 과학 이외의 정치 사회 및 국제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했다고 한다. 그는 독일통일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고, 199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메르켈 총리는 과학자처럼 일한다”
유럽이 코로나19로 혼돈에 휩싸였을 때, 독일은 메르켈의 진두지휘하에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했다. 마침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과 국민의 절반이 백신음모론에 빠진 프랑스 사이에서, 독일의 메르켈 리더십은 그나마 유럽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딜 수 있는 희망이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은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는 과학자처럼 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많이 읽고 사실을 평가하며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르켈이 무려 16년 장기집권 이후 75%의 지지율 속에 퇴임하는 배경에는 과학자로 훈련받은 그의 정체성이 녹아 있을지 모른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아틀란틱’지에 ‘독일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비밀: 앙겔라 메르켈은 과학자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독일의 과학자들과 의학전문가들의 의견을 신중하게 경청하고 이들과 열린 자세로 토론했으며, 증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 바로 그 점이 메르켈과 방역에 실패한 정치지도자들을 가르는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사는 비록 메르켈이 현장과학자로서의 경력을 그만두었지만 실제로 그는 과학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치인으로 매일매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는 과학자로 훈련받은 규범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메르켈이 팬데믹 상황에서 보여준 가장 놀라운 태도 중 하나는 전문가들과 상의하고 나서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실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처음 만난 예측 불가능성의 최극단에 속한 감염체였고, 과학자들 또한 이 바이러스에 대한 예측에서 번번이 틀릴 수밖에 없었다. 메르켈은 기초감염재생산수에 대해 자세히 국민에게 설명하고 왜 현재의 조치가 필요한지 설득해나갔다. 최대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뒀지만, 정치적 결정이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국민에게 불필요한 절망을 안기지도, 불가능한 희망을 주지도 않았다. 독일의 작가 캐롤린 엠케는 메르켈의 연설은 꿈과 비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건조하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메르켈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것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대부분의 실험실 과학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규범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기초과학자 출신이었기에 항상 말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고, 그러기에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메르켈의 말 속에는 과학자가 자연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신중함의 규범이 녹아 있다.
조선은 중인계층이 과학기술계 진출
훔볼트대학의 정치학 교수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메르켈을 개인 과외하며 경험했던 에피소드는 정치인 메르켈에게 물리학자로 훈련받았던 경험이 여전히 얼마나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강의가 끝나자 메르켈은 강의의 내용을 전기회로도 같은 도식으로 스스로 정리했다고 한다. 뮌클러는 바로 이런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이 메르켈 리더십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로 훈련받은 규범 덕분에 메르켈은 유럽연합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신뢰, 열린 토론, 신중함,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등 메르켈의 성공을 상징하는 단어들과 과학자사회의 규범을 연결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런 과학자로서의 규범에 더해 규율과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동독 개신교 목사 가정에서 성장한 그의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정치인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규준일 것이다.
과학사가 김근배는 ‘한국 과학기술자의 형성연구’라는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낸다. 식민지 시기 국가가 주권을 잃으면서 과학기술인력을 진흥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이공계로의 진학은 대부분 중하층의 신분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상류층이 적극적으로 과학기술계로 진출한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기술은 양반이 아닌 중인계층이 고스란히 물려받게 됐다. 그나마 사회적으로 각성했던 과학기술자들은 국대안 파동으로 월북했고, 남한의 개인주의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과학기술자들은 이후 박정희 시대에 독재정권의 충실한 노예가 됐다. 한국 과학자사회에서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나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검사, 변호사, 판사 출신이 대부분인 한국의 정치지형도에서 메르켈과 같은 과학적 리더십을 바라는 건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가는 바람이다. 그나마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존중과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 비전의 설계라고 보여야 할 텐데, 현재 한국 대선은 정치포르노 그 자체다. 게다가 박정희 시대 이래로 정치에 종속돼 버린 한국의 과학기술계 리더십은 이번 대선에서도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하는지만 눈치나 보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에겐 과학적 규범이 녹아들 여지가 없고, 과학자사회는 사회의 주인이기보다는 노예에 만족하는 상황, 메르켈을 바라보는 마음이 부럽고 무겁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