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 사태’ 좀비는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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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할인율·신뢰 기반 급성장…‘폰지사기’ 대한 당국 발 빠른 대처 요원

지난 4월 14일 한 사기꾼이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을 저지른 희대의 금융사범 버나드 메이도프가 82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이다. 이른바 폰지사기로 불리는 사기 수법을 통해 피해액이 650억달러(약 72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기범죄를 저지른 메이도프는 법의 심판을 받고 수감 중이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버트너의 연방교도소 의료시설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지포인트 이용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사무실로 몰려와 회사 측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머지포인트 이용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사무실로 몰려와 회사 측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그의 범죄 규모는 말 그대로 역사적이자 세계적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2008년 12월까지 세계 136개국 3만7000여명이 피해를 봤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 등 유명 인사들도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투자금을 반환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드러났다. 메이도프는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고수익을 미끼로 신규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실제로는 그 돈으로 단 한주의 주식도 사지 않는 등 투자를 일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높은 수익률 또는 할인율을 내세워 다수로부터 돈을 모은 뒤 초기에는 실제로 약속한 혜택을 보장한다. 이익이 보장된다는 사실이 더욱 알려지며 더 많은 참가자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돈을 받게 되고, 굴리는 자금의 액수도 더욱 커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겉으로 내건 투자 모델이나 영업방식이 계획대로 굴러가지 못하더라도 한동안은 투자자나 소비자에게 약속한 이득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모아둔 투자금 중에서 수익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식으로 굴러가는 전형적인 다단계형사기는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이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러 자신의 이름을 단 사기 수법이 통용되게 만든 찰스 폰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러한 폰지사기는 무수히 반복돼왔다.

전형적인 ‘폰지사기’ 구도

지난 8월 11일 포인트형 지급수단인 ‘머지포인트’를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전면에 드러난 머지포인트 사태 역시 폰지사기의 전형적 구도와 닮은 점이 많다. 자산기술(핀테크) 분야 벤처기업을 표방한 머지플러스가 발행한 머지포인트는 편의점과 대형 할인마트 같은 대기업 유통업체를 비롯해 유명 프랜차이즈 식음료점 등 생활에 밀접한 여러 분야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며 이용자들을 모았다. 머지포인트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할인율 때문이었다. 20%를 넘는 할인율, 즉 20만원어치 포인트를 16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홍보했고 실제로도 한동안 할인 구매가 가능했던 탓에 이용자들은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포인트 발행에만 그치지 않고 구독형 할인 제공 서비스까지 제공한다고 나서는 등 할인결제 플랫폼을 자처한 머지포인트는 돌연 서비스가 중단됐다. 적게는 수만원대부터 많게는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포인트를 구매해두고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에서 소비할 예정이던 이용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서비스 가입자 수는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미사용 포인트 잔액 규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발행액을 모두 합산하면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머지플러스는 현장 환불에 이어 온라인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용자들이 구매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회사 측이 ‘순차적으로 돈을 돌려주겠다’고는 하지만 향후 환불 일정이나 환불받은 인원과 액수 등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백명의 이용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로 몰려가 환불을 요구하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회사 측이 일부 이용자에게만 현장 환불을 해줬다는 소문을 듣고 지난 8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머지플러스 사무실에 몰려든 이용자들은 회사 집기를 무단으로 들고 가져가기도 했다. 13일 본사 앞에서 환불을 요구하며 길게 줄을 서 있던 이용자 강택형씨(34)는 “20% 넘게 포인트를 할인 판매할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빨리 품절될 때가 많아 그때그때 가족 아이디까지 활용해 100만원어치 이상의 포인트를 쌓아뒀다”며 “액수도 액수지만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어 이렇게라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주말과 광복절 대체휴일 연휴까지 본사 앞을 점거하며 환불을 요구하던 이용자들은 17일부터 회사가 용역업체 직원을 투입해 출입을 통제하자 해산했다.

머지플러스가 자사의 포인트 사용을 중단시킨 이유는 전자금융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해온 이들의 영업행위를 두고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러한 위법 사실을 검찰과 경찰에 통보했고,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머지포인트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출시된 시기가 2018년 2월부터이고, 세간의 인기를 끈 것은 지난해 초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미 시장에 알려진 서비스 업체에 대한 점검이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머지포인트가 불티난 이유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던 머지플러스의 영업방식이 지속가능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나왔다. 처음엔 사용처에서 결제 금액의 일부를 적립하는 형태로 시작했던 평범한 포인트 서비스가 높은 할인율을 무기로 내세워 이용자들을 모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머지플러스가 주로 판매한 포인트 상품은 대체로 20만원권에 집중돼 있어서 다른 상품권에 비해 판매 건당 비교적 많은 액수의 현금을 모을 수 있었다. 반면 주 사용처가 편의점과 간이 식음료점 등 소액 결제가 많은 가맹점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구매해둔 포인트를 단시간에 모두 소비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머지플러스는 올해 7월부터는 연간 구독료를 한 번에 내면 처음에 이벤트로 일정액을 바로 환급하고 매월 정해진 환급액을 준다는 구독형 서비스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장 18만원을 내면 바로 5만원을 현금성 포인트로 지급하고 월마다 1만5000원 상당의 할인 혜택과 환급액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7월 한달 동안 머지플러스가 판매한 상품 액수만 424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매출은 급상승했다.

머지플러스 직원들이 자리를 떠나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머지플러스 직원들이 자리를 떠나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는 수익구조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이용자들이 머지포인트 구매에 열을 올린 배경에는 핵심적인 사용처들이 생활에 밀접한 유통업체에 집중돼 있었던 측면도 있다.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할인마트와 전자제품 매장 등에서 포인트를 이용한 할인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았다. 머지플러스는 이른바 ‘콘사’로 알려진 상품권 결제대행 업체 11곳을 통해 다방면에 걸친 분야에서 유명 가맹점들을 섭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맹점들을 모아 상품권 발행업체와 이어주는 이들 콘사는 중개 수수료가 늘어날수록 이익이고, 포인트 사용처인 가맹점 프랜차이즈 업체 역시 해당 분야 경쟁업체에 밀리지 않으려면 인기 있는 결제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포인트를 발행하는 업체가 이익을 편취할 의도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해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던 셈이다.

이러한 허점은 당국의 규제가 미처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 부각됐다. 금융감독원은 머지플러스가 전자금융업 등록을 하지 않아 감독 의무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회사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이상 금감원조차 정확한 재무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머지플러스와 유사한 선불충전금 업체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선불충전금 잔액이 2조원이 넘는데도 견실하게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가 아닐 경우 이번 사태로 도미노식 위기를 맞아 유사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있다. 일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강제력이 있는 대책은 미사용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20% 이상 유지하도록 하는 규정뿐이다. 이를 위반하면 당국이 영업정지나 허가 취소를 할 수 있지만, 피해액을 보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론 이번 사태는 머지플러스 측의 해명대로 이들이 추진하는 사업모델이 정착해 성공하고, 투자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면 시간이 지나 해결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머지플러스 측은 수익 모델에 대해 “상품권 발행이 워낙 화제가 되면서 고유 사업모델로 오해될 수 있다”며 자사의 수익사업은 “결제 수수료, 광고 수수료, 결제 및 위치 기반 데이터 사업 등 다양한 파트너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일단 처음에는 출혈을 감수하고 대규모의 이용자층을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투자 유치에 나서 적자 회복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용자들의 신뢰가 사라진데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향후 방안 역시 나오지 않고 있어 갈 길은 멀다. 당장으로선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불업에 해당하는 영업을 하는 사례들을 파악하고 점검해 재발 방지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한편 전금법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지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힌 대로 허점을 틈타 여전히 발생하는 추가 피해를 막는 일이 급선무다.

‘도미노 피해’ 막기 위해선

머지포인트 사태 외에도 폰지사기가 의심되는 피해 사례는 최근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 가상의 패션 아이템에 투자하면 수익을 내게 해준다고 해놓고 사실상 가치가 없는 가상화폐 코인을 지급하는 식으로 6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패션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애초에 폰지사기는 1920년대 찰스 폰지의 사기범죄 이후 ‘폰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역사를 따져 올라가면 유럽의 중세에도 비슷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찰스 폰지 사건을 보도할 당시 현지 언론에서 쓴 ‘피터의 돈을 폴에게 전할 뿐’이란 표현 역시 중세부터 폰지사기의 구조를 가리키던 속담에 바탕을 뒀다.

폰지사기가 오랜 역사를 가진 데에는 당장의 고수익을 제공하며 미끼를 물게 한 뒤 신뢰를 쌓아 생명력을 연장하는 구조가 큰 힘을 발휘했다. 사기를 저지르는 쪽의 의도를 모두 간파할 수 없는 이상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을 방지할 대안이 이미 나와 있음에도 관련법 개정과 당국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선불충전금 보호를 위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선불충전금을 외부기관에 신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됐을 경우 머지포인트 사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충전해둔 포인트 금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전되지 못해 아직까지 외부기관 신탁 의무화 조치는 행정지도 수준에만 그치고 있다.

포인트형 지급수단이나 다양한 온라인상의 가상 아이템을 포함한 새로운 금융 영역에서 고전적인 폰지사기가 재발하는 상황에 대해선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서정 홈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아이템을 빙자한 폰지사기가 계속 형태만 바꿔 기승을 부리고 있고, 피해 규모가 크다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감독원에 폰지사기에 대한 특별사법 경찰권 또는 최소한의 조사권을 부여해 재발 방지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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