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로션과 크림을 남김 없이 쓰기란 쉽지 않다. 양이 줄수록 잘 나오지 않아 사용이 불편해진다. 거꾸로 뒤집어 놓아도 되직한 내용물이 아래로 흐르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결국 참다 못하고 내용물이 꽤 남았음에도 버리게 된다. 이렇게 버려진 용기는 세척이 어려워 재활용이 안 된다.
화장품 업계의 고질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하는 묘안이 나왔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용기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이너보틀’(innerbottle)은 7월 1일 ‘엘또브레니’란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했다. 다 쓴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수거해 재활용·재사용하는 사업 모델이다. 엘또브레니(elttobrenni)는 회사의 사명이자, 혁신적 내용기의 이름을 거꾸로 해 지은 이름이다.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실리콘 풍선 내용기인 이너보틀을 용기 안에 넣어 압력에 의해 내용물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고, 용기에 내용물이 묻지 않아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너보틀은 이 내용기 기술로 창업오디션 프로그램 ‘K-startup’에서 우승팀에게 주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엘또브레니 출시는 제로 웨이스트를 구현하는 친환경 용기 개발을 넘어 직접 플라스틱 자원순환 생태계의 선례를 만드는 시도이다.

스타트업 ‘이너보틀’(innerbottle)이 7월 1일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엘또브리니’의 제품. 이너보틀 제공
화장품 용기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려 복합재질을 사용하고, 잔여물까지 남아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편이다. 소비자는 플라스틱인 줄 알고 열심히 분리수거하지만 사실 일반쓰레기에 불과하다.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는 “지금까지 화장품 용기는 내용물을 잘 보전한다는 본질적 목적과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강화하는 심리적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하다보니 화장품 용기는 더더욱 재활용이 어려워졌고, 결국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본질에 집중하자, 그리고 이너보틀 솔루션으로 재활용을 넘어 재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엘또브레니는 멀티크림과 비타민 나이트 케어 세럼 2종으로 첫선을 보인다. 멀티크림은 아예 종이 용기에 이너보틀을 넣었다. 소비자가 다 쓴 용기의 수거를 요청하면 전용 물류 파트너가 이를 수거해 재활용·재사용할 수 있게 했다. 엘또브레니는 플라스틱 자원순환의 핵심 고리인 이너보틀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오 대표는 “시장에 용기 솔루션을 출시했지만 내용기를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긴 어려웠다”면서 “좋은 화장품을 담아 용기도 알리고, 내용물도 선물하자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엘또브레니의 화장품 제조를 위해 나노 제형의 화장품 제조 기술을 갖고 있는 코스메틱 회사 피코스텍과 협업했다.

스타트업 ‘이너보틀’(innerbottle)이 7월 1일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엘또브리니’의 제품. 이너보틀 제공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재사용하는 모델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드물다. 미국의 스타트업 ‘테라사이클’이 화장품 용기 재사용 사업을 선보였지만 알루미늄이나 유리 용기를 재사용하는 모델이다. 용기를 모은 후 세척을 해야 재사용할 수 있지만 화장품의 유분 때문에 세척이 어렵고, 세척할 때 물을 너무 많이 쓰는 문제점이 있다. 내용물을 거의 전량 사용하면서 재활용·재사용성을 높인 경우는 이너보틀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너보틀은 플라스틱 자원순환을 위해 대기업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23일 LG화학과 플라스틱 자원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맺고, 에코 플랫폼 구축을 발표했다. 순도 높은 폐플라스틱 용기를 소비자로부터 ‘자원’으로 회수해 원료화, 재활용·재사용 과정을 거쳐 다시 유통하는 생태계 구축이 골자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여러 대기업이 이 플랫폼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너보틀은 엘또브레니 출시로 플라스틱 자원순환 플랫폼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한편, 수익금 전액을 환경다큐멘터리 제작에 사용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제작될 환경 다큐는 가정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보여주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일대기’를 담게 된다. 짧은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을 7월 8일 공개할 계획이다. 오 대표는 “아직 사람들은 제품을 다 쓴 후 용기를 회수해 다시 쓰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한다. 환경 다큐로 그것이 어색하지 않고, 용기 재활용·재사용으로 실질적으로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