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용정보법 개정… ‘탐정’ 명칭 규제 사라져
방구석 탐정. 아무런 근거 없이 추측에 기대 사건을 예단하는 이들을 빗댄 말이다. 최근 한강 대학생 실종 사망사건에 각종 음모론이 쏟아지자 한 경찰관은 블라인드에서 “다들 ‘방구석(명탐정) 코난’에 빙의했다”며 음모론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사실 방구석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다. ‘노력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나 사업자 등록 절차만 거치면 탐정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탐정업을 금지해온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이 지난해 개정되면서다. 물론 활동에 제약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위치정보법 등을 침해하는 활동은 금지된다. 하지만 사생활 조사와 무관한 탐정업무는 가능하다. 탐정업무 일체를 금지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변화다.
‘탐정’ 간판을 내걸 수도 있다. 실제로 탐정사무소도 생겨나고 있다. 사실상 탐정업무를 해온 기존 심부름 센터나 흥신소 중에는 탐정사무소로 업소명을 바꾸는 곳도 있다.
규제 풀리니 자격증 장사 성행
그렇다면 국내 ‘탐정’은 몇명이나 될까.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 가운데 하나인 민간조사사를 취득한 인원은 4300명(2020년 8월 기준)에 달한다. 자격증과 별개로 탐정 관련 업무 종사자는 약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은 관청 등록 절차만 밟으면 발급 가능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은 27개(2020년 8월 기준)에 달한다. 새로 생겨나는 탐정 자격증 취득 인원까지 감안하면 국내 잠재적 ‘탐정’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탐정 명칭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면서 현재 탐정 시장은 무주공산이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은 탐정 자격증 시장이다. 탐정 자격증은 어떻게 취득할 수 있을까. 탐정 자격증을 발급하는 관련 단체를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경찰 아니죠? 그럼 지금 당장 자격증 준비하세요. 탐정법 통과되면 따고 싶어도 못 땁니다. 법 통과되면 수사 실무경력이 있는 경찰들만 탐정 자격증을 딸 수 있어요. 제도가 바뀌기 전에 얼른 시험 보세요.” 탐정 단체 관계자는 탐정 자격증부터 취득할 것을 권했다. 탐정법이 생겨 공인탐정제도가 생기면 수사 실무경력이 없는 일반인은 탐정일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격증 시험을 보려면 교재가 필요한데 교재는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자격증을 배부하는 해당 단체를 통해서만 구입 가능하다. 회원 가입비와 교재비, 전형료, 교육비를 합하면 대략 80만원 정도 필요하다. 협회에 따라서는 100만원 납부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시험은 필기시험이다. 이곳은 1·2차 시험을 한꺼번에 치르는데 모두 온라인으로 치른다. 난이도를 묻자 책을 사서 공부한 대학 졸업자는 모두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대기업에서도 탐정 자격증을 우대하기 때문에 취업에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유사 탐정 자격증 업체’에 속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른 탐정 관련 협회의 설명도 대동소이했다. 탐정 자격증이 꼭 필요하냐고 묻자 협회 관계자는 “자격증이 없어도 탐정사무실은 차릴 수 있지만 탐정 자격증이 있어야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카페에 손님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답했다. 또 다른 탐정 관련 협회 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에 탐정 자격증과 단체가 갑자기 급증하고 있다”며 “설립한 지 오래된 협회에서 교육을 받아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류하는 공인탐정 왜
협회 측의 설명처럼 탐정법이 통과되면 일반인은 탐정일을 할 수 없게 될까. 현재 국회에 발의된 탐정 관련 법안은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윤재옥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과 탐정업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이다. 두 법안 모두 탐정 자격시험에 합격해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만 탐정일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장이 시행하는 시험 혹은 경찰청장이 등록심사를 통해 결정한 민간기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19세 미만이나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공인된 시험에 합격하면 탐정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경찰공무원, 검찰청, 국가정보원 등 유사업무 종사 경력이 10년 이상, 수사업무 종사 경력 10년 이상 있는 응시자는 1차 시험에서 면제된다.(윤재옥 의원안)
두 법안은 탐정업을 현행 자유업에서 등록 영업으로 변경하도록 한다. 탐정 영업을 하려면 관할관청(경찰청장)에 등록한 뒤 경찰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소재 조사를 주로 하는 탐정업무 특성상 사생활 침해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를 우려가 높기 때문에 관리 감독 시스템 안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른바 공인탐정제도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경찰청과 법무부를 각각 주무기관과 협조기관으로 지정해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논의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7대 국회부터 발의돼온 탐정 관련 법안 역시 계류되다 폐기됐다. 이번 법안도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공인탐정제도가 표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관할권’ 싸움에 있다. 경찰청과 법무부가 탐정업의 관리·감독 권한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정사무실은 늘어나는데 탐정업을 관리할 규정은 전무하다. 영업자 준수사항 등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지 않다. 탐정업 관련 불법 행위를 비롯해 소비자 불만과 민원이 발생해도 이를 처리할 주무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그사이 탐정업은 ‘음성적 민간조사업’으로 변질됐고, 최근에는 ‘탐정’ 명칭 허용과 맞물려 자격증 장사마저 성행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탐정업에 대한 법률이 아니라 탐정업 규제에 관한 법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탐정 자격증 시험은 경찰이 주관하고 활동에 대한 관리·감독은 법무부에서 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