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약 1조7000억원 가치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쇼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가상화폐를 칭찬하며, 코인 가격 상승에 일조합니다. 동시에 그는 미국 유명한 코미디쇼에 나가 “가상화폐는 허슬(사기)이다”라는 농담을 해 가상화폐의 급락 이슈를 만듭니다. 일론 머스크가 우리나라 기업 CEO라면 우리 반응은 어떨까요? 대기업 오너라면 노조에서 성명서 한 줄 정도는 나올 사안입니다. 기업의 금융투자 활동은 테슬라 사례 외에도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윤이 목적인 기업에 투자활동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단기 주식투자거나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투자일 경우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합니다. 어떤 회사가 요즘 트렌드인 가상화폐 코인에 투자한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 사람이 ‘회사가 이상한 거 아냐’라고 경영진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오너 기업이 많은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탓에 이런 종류의 투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주주 개인적인 감으로 진행되기에 회사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본업과 상관없는 투자는 사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이 다르게 이용되는 것이니 주주 입장에서 좋을 이유가 없습니다.
기업의 금융투자 칭찬하는 분위기
하지만 최근에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회사가 사업뿐만 아니라 투자도 잘하더라’ 식으로 기업의 금융투자를 칭찬하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기업 중에도 해외 주식투자를 잘해 뜬 회사도 생겼습니다. ㈜국보디자인은 회사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입니다. 그런데 테슬라 주식을 사서 유명해졌습니다. 2020년 3분기 테슬라 주식을 342억원에 매수했고, 그 뒤로도 투자를 확대해 2020년 말 기준 630억원을 취득했는데 장부가액 975억원입니다. 테슬라 한 종목만으로 345억원의 가치 상승을 이뤘습니다. “증권회사가 아닌데 주식투자를 하는 건 불법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정관상 사업 외에 기타수익을 얻기 위한 다양한 투자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주식, 부동산 등 심지어 코인투자도 가능합니다. 다만 주요사업 이익은 영업이익으로 표기하고, 그 외 투자 수입은 기타수익으로 재무제표에 구분해주면 됩니다. 물론 회사가 본연의 사업은 뒷전이고, 투자활동에만 골몰한다면 도덕적인 비난까지 피하기 힘듭니다.
투자를 즐기는 회사의 주식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회사의 금융투자가 ‘올바르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투자자는 회사가 가진 금융자산이 무엇이고, 당기순이익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금융자산 투자 현황을 알아야 하는데, ‘주석’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주석 중에 ‘공정가치○○’ 키워드가 들어 있는 항목을 검색하면 찾기 쉽습니다. 재무제표에서 ‘공정가치’란 ‘현재 시장가치로 가장 가깝게, 공정하게 장부에 기재한다’ 뭐 이런 뜻입니다. 투자한 금융자산은 대부분 가격 변동이 있기 때문에 공정가치로 표기합니다. 국보디자인의 금융자산 장부가액 수치는 해당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기에 그 시점 가치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 사이 테슬라 주가가 더 올랐으니, 이익은 더 올랐을 수 있습니다.
제약 그룹인 휴온스의 지주사 ㈜휴온스글로벌도 금융자산 투자를 잘했습니다. 2020년 금융수익이 250억원에 달합니다. 주석에 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처분이익 20억원과 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평가이익 174억원이 기록돼 있습니다. 처분이익은 실제로 팔아 차액을 얻은 것이고, 평가이익은 장부상 평가 상승액을 계산해 놓은 수치입니다. 금융자산의 가치상승분은 금융수익에 포함돼 당기순이익에 더해집니다.
대부분 회사가 금융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는 사내 유보한 이익을 재투자할 때, 시기적으로 기다려야 할 경우 잠시 ‘돈’을 금융기관에 맡겨 둡니다. 언제 꺼내 쓸지 모른다면 수시 출금이 가능한 은행에 넣어 작은 이자수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기간에 여유가 있다면 고금리가 보장된 금융상품에 묶어둡니다. 보통 게임회사가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현금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벌었는데, 아직 차기 게임을 만드는 데 큰돈이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넥슨코리아의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금융자산은 1조5000억원이나 되며, ㈜네오플은 단기금융상품이 2조3000억원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금융자산뿐만 아니라 현금도 역시 많습니다. 돈이 많아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경우, 즉 금융자산은 회사의 여유를 나타냅니다.
금융자산이 많은 게임회사
또 다른 케이스는 아직 사업이 확정되지 않아 재원을 ‘파킹’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유상증자, 특수사채 발행으로 투자받은 재원을 다 쓰지 못해 금융상품이나 금융자산에 두는 바이오 기업 재무제표를 종종 목격합니다. 기본적으로 제조업 회사는 금융자산이 많을 이유가 없습니다. 시장이 확장되면 공장을 증설하거나, 운전자본 또는 차입금을 줄이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소주 회사인 ㈜무학은 좀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무학은 300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소주는 지금은 아니지만, 지역 분할로 시작해 지금도 굳어진 유통 형태를 보입니다. 소비량이 한정적이라 아무리 재원이 많아도 공장을 더 짓거나, 창고를 늘릴 수 없습니다. 무학이 오랫동안 벌어들인 이익을 쌓아두다 보니 의도치 않게 큰 자금을 장기금융자산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금융자산 외에도 투자부동산, 재무적 투자로 인한 지분 획득 등 다양한 형태로 회사는 투자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전체 자산 비중에 투자자산이 많다면, 주식투자자는 두가지 관점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주력 사업에 상관없이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해당 투자가 회사 당기순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동학개미운동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투자활동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국채와 펀드 등의 간접투자에서 벗어나 공모주, 미국주식 등 직접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자산 투자를 즐기는 회사를 상대로 개인투자자는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할지, 판단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회사의 투자상황을 정확히 미리 알면, 뜻하지 않는 수익을 주는 ‘투자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일회성이지만 기타이익이 당기순이익을 급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 유의해야 합니다.
<이승환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