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포장재에 담아 배송하고 사용 후 포장 용기 수거해 소독 후 재사용해야
얼마 전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두 회사가 국내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하나는 신세계백화점이 5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또 다른 회사는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 이니스프리. 스타벅스는 4월 초에 2025년까지 전국 매장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해 매우 좋은 반응이 있었다. 반대로 이니스프리는 플라스틱병 제품의 겉면을 종이 포장으로 감싸고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병이야’)로 표시해 그린워싱(친환경 이미지를 얻기 위해 행하는 허위 또는 과장 홍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니스프리는 즉각 사과했다.

해양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필리핀 베르데섬 인근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 그린피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양 9% 불과
기업들의 행동에 대한 이러한 환호와 비판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두가지 흐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내 기업들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어인 ESG 경영시스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둘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어느 때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문제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졌고, 윤리적 소비를 하려는 욕구도 커졌다. 이에 따라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기업들은 자사 특정 제품의 플라스틱 양을 줄이거나 아예 플라스틱을 대체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는 일부 제품의 플라스틱 양을 줄이거나 대체품으로 바꿔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2015년을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중에서 재활용되는 양은 9%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즉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플라스틱이 계속 생산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곳은 어디일까?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지난해 말, 국내 기업의 일회용 플라스틱의 배출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 전국 260개 가구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가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10개 중 7개는 식품 포장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들인 CJ제일제당, 롯데칠성, 농심, 오뚜기, 동원F&B 등의 포장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식품 제조사들은 개별 제품의 플라스틱 함량을 줄이거나 대체재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특히 기업들이 얼마 전부터 우후죽순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생분해성 플라스틱 대부분은 섭씨 50도의 온도와 일정한 습도로 조절된 폐기 시설에서만 6개월 이내에 분해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버려지는 자연 상태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건이다.

멕시코에서는 1인당 연간 48㎏의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한 멕시코인이 플라스틱병을 가득 담은 수거용기를 나르고 있다. / 그린피스
최근엔 재활용이 잘될 수 있도록 라벨을 없애거나 플라스틱의 색상을 통일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각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잘하더라도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 시스템이 소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재활용되는 플라스틱보다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플라스틱, 심지어 노지나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훨씬 더 많다. 용케 재활용된다고 해도 플라스틱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재활용되지 않고 ‘저열화(downcycle)’된다. 즉 이전보다 더 낮은 품질의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가공되고, 이 과정을 몇 번 거쳐 완전한 쓰레기가 된다.
‘우유배달부 모델’로 해결할 수 있다
결국 플라스틱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회용기를 통한 재사용과 리필 시스템 도입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해외의 디지털 쇼핑 플랫폼인 루프(Loop)는 제품을 튼튼한 재사용 포장재에 담아 배송하는 ‘우유배달부 모델’을 구현 중이다. 루프는 제휴 브랜드와 협력해 해당 브랜드 제품의 포장재가 쉽게 리필이나 재사용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현재 하겐다즈, 질레트, 팬틴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참여하고 있다. 재활용조차 어려운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어 팔던 면도기를 루프에서는 안전 및 위생을 위한 최소한의 포장만 하고 다회용 스테인리스 케이스에 넣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제품을 모두 이용하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단하게 반납을 신청할 수 있다. 업체에서는 수거한 용기를 철저히 소독 및 멸균하고 다시 사용한다. 식품 제조사들 역시 이런 방식을 활용해볼 수 있다.
그동안 일용소비재 기업들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계속 생산하고 사용하면서 그로 인한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해왔다. 기업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소비문화의 원인을 제대로 짚고, 잘못을 그 출발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식품 제조사들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감축하겠다는 로드맵을 신속히 제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염정훈 그린피스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