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똑같은 ‘디지털 트윈’·아바타의 세계 ‘메타버스’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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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는 인간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는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 종족을 그대로 모사한 아바타가 실제 세계의 나비 종족과 교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와 꼭 닮은 가상세계와 그 속을 노니는 아바타는 이제 게임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이름으로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두산중공업이 탐라해상풍력발전에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시설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두산중공업이 탐라해상풍력발전에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시설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최근 발간한 ‘디지털 트윈의 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에서 실체를 갖고 있는 물리적 시스템과 이것의 기능과 동작을 그대로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연결함으로써 거울을 앞에 두고 서로 쌍둥이처럼 동작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실제 건물의 창문을 열면 디지털 세계에서도 창문이 열리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보고서의 제 1저자인 김용운 ETRI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트윈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거울상 쌍둥이 모델로 만들어 직관적으로 풀어갈 수 있게 하는 효과적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트윈에 빠진 산업과 정부

초기의 디지털 트윈은 현실을 단순히 3차원(3D)로 모방하는 데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물인터넷과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 한계를 넘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무한히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세계를 모사할 수 있는 특징을 이용해 경영이나 정책 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분석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제조업과 교통, 에너지 관리, 도시계획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가장 먼저 도입된 제조업 분야에서는 기계가 동작하는 모습을 3D로 재현해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쓸 수 있다. 도시 분야 등으로 확장하면 유동인구의 변화나 도시의 바람길 예측, 홍수가 번지는 양상 등을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도심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줄 수도 있다.

디지털 트윈이 국가·도시행정 고도화의 필수요소로 주목받으면서 여러 나라, 도시들이 디지털 트윈을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싱가포르 국토부와 국립연구재단 등이 주도하는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를 들 수 있다. 실시간, 동적 데이터에 기반해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을 가상의 도시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버추얼 싱가포르를 이용하면 도시 각 지역, 각 건물에 비치는 일조량을 파악할 수 있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경우의 발전량까지 예측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디지털 트윈인 ‘버추얼 싱가포르’를 이용해 도시 각 지구의 일조량과 기온, 자율주행을 위한 경로 안내, 태양광 패널 설치 시의 예상 발전량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버추얼 싱가포르 소개 영상 캡쳐

싱가포르의 디지털 트윈인 ‘버추얼 싱가포르’를 이용해 도시 각 지구의 일조량과 기온, 자율주행을 위한 경로 안내, 태양광 패널 설치 시의 예상 발전량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버추얼 싱가포르 소개 영상 캡쳐

중국 상하이도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졌다. 디지털 트윈 전문업체 51월드는 인구 2600만명의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를 디지털상에 복제해 도시 기능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교통량 관리부터 교량의 유지·보수를 지원하고, 예측 데이터를 활용해 홍수를 시뮬레이션하고 재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세종시와 대전시가 ETRI와 손잡고 디지털 트윈 구축에 나섰다.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구축해 교통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능형 도시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세종시의 경우 지하 공동구 전 구간을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 이상징후를 사전에 감지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디지털 트윈에 필요한 선행기술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것과 똑같이 만들려면 일단 물리적 형상을 2차원, 3차원 형상으로 그려내기 위한 2D, 3D 형상 가시화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 다음, 현실과 가상이 빈틈 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김용운 ETRI 책임연구원은 “거울상과 현실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통신, 인터페이스, 데이터 교환 등 상호 소통 수단이 또한 핵심적이다”면서 “여기에 실물 대상의 동작과 행태, 습성 등을 가상 세계로 재현할 수 있도록 모델을 만드는 모델링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용운 연구원에 따르면 이 중 모델링은 가장 난이도가 높다.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의 뺨을 갑자기 때렸을 때, 그 사람이 눈만 꿈적일 것인지, 즉각적으로 반격을 할 것인지, 눈물과 울음으로 표현할 것인지는 공격을 당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양식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성격과 행위양식이 모델로 만들어져야 가상 세계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 살짝 손을 갖다 댔을 때, 강한 충격을 줬을 때, 손을 드는 행동만 보였을 때 등 시뮬레이션도 여러 유형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현실세계의 대상을 어떻게 모델링을 하느냐가 가장 난이도가 높은 선결 문제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쓸 수 있고, 데이터 분석과 예측, 딥러닝, 빅데이터 등 여러 가지 수단들이 활용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대개 클라우드 기반으로 이뤄진다. 디지털 트윈 구현을 위해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량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데이터 처리의 유연성을 높이고 인공지능 툴로 분석하는 데 클라우드 컴퓨팅이 용이해서다. 이 분야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월 4일 이 회사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의 사물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애저 디지털 트윈’을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실재하는 환경과 자산을 디지털 환경에 접목해 사람과 장소, 사물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추적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한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두산중공업, 벤틀리시스템즈와 함께 풍력 부분에서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시범 개발했는데 풍력 발전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기존 설비의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풍력 발전은 거대 시설이지만 디지털 트윈을 이용하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무한정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면서 “현실과 똑같은 환경에서 현실과 상호작용이 가능한데다 운영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바로 데이터에 기반해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페토에서 진행된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댄스 퍼포먼스(위)와 포트나이트에서 이용자들이 가상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 네이버제트, 에픽게임즈

제페토에서 진행된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댄스 퍼포먼스(위)와 포트나이트에서 이용자들이 가상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 네이버제트, 에픽게임즈

메타버스의 세계에 빠진 Z세대
메타버스는 디지털 트윈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디지털 트윈이 실제 세계와 상호작용한다면, 메타버스는 나를 닮은 캐릭터(아바타)가 여러 가상세계를 탐험할 수 있지만 실제 세계와 물리적 환경을 똑같이 구현하지는 않는다. 인터넷기업협회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내가 생활할 수 있으며, 그 세계가 나와 상호작용하는 가상공간”이다. 위키피디아에는 “메타버스는 가상·초월(meta)과 세계·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반적 측면에서 현실과 비현실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생활형·게임형 가상 세계라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된다. 이 개념이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메타버스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80년대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90년대 인터넷 등장으로 선 너머의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면, 증강현실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가상세계에서 소셜 네트워킹을 하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네이버의 손자회사인 네이버제트가 서비스하는 ‘제페토’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불리는 제페토는 증강현실(AR)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가 찍은 ‘셀카’로 3D 아바타를 만들어준다. 사용자가 표정과 몸짓, 패션 아이템까지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가상세계 안에서 이용자들이 모여 게임을 하거나 춤을 추는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그 과정을 영상 등의 2차 창작물로 만들어 유튜브 등에 소개한다. 블랙핑크의 사인회, 올해 네이버 신입사원 연수가 모두 제페토의 가상 공간에서 이뤄졌다. 구찌, 나이키, MLB 같은 현실 세계의 브랜드가 제페토 월드라는 가상세계에 구현된다.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19로 발길이 끊긴 익선동 등 서울의 관광지를 맵으로 만들어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세계의 유수 미술관도 제페토에 가상 맵으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제페토는 Z세대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널린 곳이다. Z세대의 자기표현 욕구를 자극하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 코로나19가 겹쳐 제페토는 급성장하고 있다.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제페토는 현재 전 세계에서 2억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해외 이용자 비중이 90%를 넘고 이용자의 80%가 10대다. 네이버 관계자는 “여러 아이템과 맵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고, 창작자가 돼 직접 아이템과 맵을 만들 수 있는 툴도 제공한다”면서 “자유도와 창작성을 존중하는 플랫폼이 메타버스의 개념과 접목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인크래프트’나 ‘포트나이트’처럼 게임 속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포트나이트는 게임 안에서 영화를 보는 ‘쇼트나이트’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용자들은 가상세계에 마련된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면서 가상의 팝콘을 먹을 수도 있다. 영화 <테넷>의 전 세계 예고편도 포트나이트 안에서 처음 상영됐다. 포트나이트를 서비스하는 에픽게임즈 측은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을 못 하는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게임 안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면서 “자사의 3D 모델링 제작 툴인 언리얼 엔진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는 데도 활용된다”고 말했다.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고정된 가상세계는 마치 거품처럼 가상 세계 안에서 새로운 가상 세계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대로 변모했다. 마치 평행우주론(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 상에 위치한 다른 세계)이나 다중우주론(우주가 여러 조건에 따라 갈래가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우주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이론)에서 상상해온 세계가 디지털트윈이나 메타버스의 세계 속에 펼쳐진다.가상 세계의 확장은 인간의 욕구가 확장되기 때문일까. 김용운 책임연구원의 의견은 이렇다. “현실세계의 제약과 한계를 벗어나는 시도는 물리적, 법적, 윤리적인 한계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가상 세계에서는 온갖 제약을 벗어나서 상상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고, 거기에서 만족과 쾌감을 느낄 수 있고, 그게 욕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욕구의 본질, 기저에 있는 실체는 호기심이다. 인간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동물계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것이 파멸로 이끌기도 하지만 진보와 혁명을 유발시키기도 하는. 호기심이 결국 현실의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한 욕구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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