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길은 강남으로 통한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 한 원인으로는 국가재정법의 예비타당성 제도가 지목된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도로 철도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강남과 연결되는 사업은 90.5%가 통과되었지만, 강남 3구를 지나가지 않는 수도권 사업은 65.8%만이 통과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용 편익 분석(cost benefit analysis)에서 편익이란 예상 이용량과 예상 이용요금을 곱한 예상 매출액으로 산정된다. 때문에 주거인구, 직장, 학교, 학원 등이 많아 교통수요가 많고 소득수준이 높은 곳에서 편익이 크게 나온다. 신분당선의 서울 강북 방향 노선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교통 등 공공인프라가 강남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강남구에는 지하철 노선이 6개가 지나가고, 지하철역이 33개나 있는데, 관악구에는 지하철 노선이 단 하나 지나가고, 지하철역도 4개뿐이다.
수도권 사업과 비수도권 사업 사이에서의 쏠림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비수도권 사업 사이에도 과거에는 경제성이 평가항목 중 가중치가 높아 공공인프라의 특정지역 쏠림현상이 매우 심했다. 인구가 적고 소득수준이 낮은 낙후지역은 편익이 높게 산출되기 어렵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결과가 좋게 나오기 힘들었다.
문제는 공공인프라 쏠림현상이 민간투자에도 쏠림현상을 유발하고, 그 결과 인구 격차, 소득 격차가 더 심해지고, 추후의 경제성 평가에서 지역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낙후지역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도 없고 지역불균형이 시정될 수도 없다. 과거에는 불균형개발 정책으로 특정지역에 편중된 개발을 하더니, 이제는 예비타당성 제도로 개발을 막는다. 낙후지역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국회 본회의에서 예비타당성 제도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기획재정부 교통국이라는 말이 있는데 들어본 적이 있나”라는 질의까지 나왔을까.
지역불균형 문제뿐만 아니라 예산의 바람직한 사용 자체를 막는 경우도 있다. 가령 철도사업은 도로사업에 비해 장점이 많다. 인구와 기업을 분산시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고, 도로교통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운송비용이 저렴하며 에너지 효율이 좋아 친환경적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초기에 고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도로사업에 비해 경제성 항목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여 2010년 철도부문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개선안이 나오기도 했다. 비단 철도사업만의 문제일까.
비용 편익 분석이 순수하게 객관적인 조사인지도 의문이다. 연구원, 외부 용역기관, 교수진의 성향이 보수적인지 다소 느슨한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도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구 의원의 정치적 행위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은 여의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2019년 4월 제도 개편으로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에서 경제성을 낮추고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을 높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불균형 때문에 헌법 제120조 제2항에 “국토의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는 규정을 가진 나라다. 이러한 특수성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예비타당성 제도 개편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김윤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