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서울시)는 서울 원도심의 부동산 공급정책을 이번 주 월요일(7월 13일)에 발표하기로 했어요. 지난주 목요일(7월 9일) 정책패키지를 마무리했고, 금요일에 보도자료를 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사흘을 앞두고 사달이 벌어지면서 이 정책은 박 시장의 마지막 유작이 되어버렸습니다.”

7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그린벨트 보전 발표에 대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그린벨트를 두고 오락가락한 홍남기 기재부 장관,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실장 등 정책 담당자를 즉각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기자가 접촉한 서울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는 현안(박 시장 성추행 고소건)을 제외하고 이 내용에 관심이 있으면 따로 이야기하자”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후, 청와대·집권당 발 ‘그린벨트 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7월 15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동산 공급 확대 방안 대여섯 가지를 검토 중”이라며 “이달 말이면 (주택) 공급대책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비공개 당·정협의에 참석한 국회 국토교통위 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한 질문에 “그런 것까지 포함해 주택공급방안에 대해서 범정부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청 입장 정리” 뒤 들썩인 강남 집값
이틀 뒤인 17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도 홍 부총리의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그린벨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 실장은 “그건 당·청 사이에서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날 발언에서 “모든 정책수단을 메뉴판 위에 올려놓고 있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판단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날 홍 부총리의 발언과 이어 놓고 보면 정리가 끝났다는 것은 해제로 기울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해제와 관련한 구체적 방안이 채 나오기도 전에 시장부터 들썩였다. 서울시 그린벨트 지역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의 아파트 거래 호가는 15일 홍남기 발언과 17일 김상조 발언 사이에 1억~2억원이 급등했다. 기존에 나왔던 집들도 집값 상승 호재를 노린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가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
논란이 확대되자 정치권 인사들이 해제 반대 목소리를 보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돈 없는 사람도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쫓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가 됐다. 한정된 자원인 땅에 더 이상 돈이 몰리게 해서는 국가의 비전도 경쟁력도 다 놓칠 것”이라며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과 수도권에 전국의 돈이 몰리는 투기판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7월 19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 탓에 ‘로또’가 될 가능성이 커 너도나도 투기에 열을 올려 전국에 부동산 광풍을 불러올 것”이라며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정세균 총리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그린벨트는 한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당정이 검토하기로는 했지만 합의되거나 결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튿날(7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회동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면서 해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매체들은 이 결정을 속보로 정했다.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부터 시작된 그린벨트 해제 검토 소동은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건 표면으로 드러난 일부일 뿐이다.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는 국토부와 청와대 그리고 서울시의 물밑 긴장 관계는 이미 그전부터 고조돼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절정에서 박 시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기자는 서울시 고위관계자를 다시 취재했다. 그는 현재 박 시장 성추행 고소건과 관련한 핵심인사다. 그는 서울시 측과 논의과정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토부의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시의 복안은 앞서 그가 언급한 것처럼 원도심고밀도재개발이었다. 그는 “서울시 주택공급정책에서 우선 고려했던 것은 새로 공급된 주택 때문에 주변 시세가 올라가는 등 가격 급등이 번지는 걸 막는다는 원칙이었다”라며 “세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 지역은 가급적 제외하고, 설사 강남을 개발하더라도 분양보다는 공공임대방식을 통해 주변시세가 오르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고 말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 보좌관 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망 하루 전, 당 대표 회동서 오간 말들
박 시장은 이를 위해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를 7월 8일 만나 설득했다. 박 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 이뤄진 이 회동에서 오간 이야기는 일부 매체의 보도로 알려지긴 했다. 이해찬 대표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당의 분위기를 전달한 걸로 보도되었지만, 당일 배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이해찬 대표는 부동산 규제정책만 언급하고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서는 스치듯 가볍게 언급하며 당내 여론도 강하지 않다는 투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2~3일 간격으로 이낙연·김부겸 등 당내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을 만나 그린벨트 해제를 대신하는 서울시의 대안을 설명할 계획이었다는 것 역시 그동안 일부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7월 5일 일요일, 박 시장이 개발이익 광역화 이슈를 페이스북으로 제기하고 나서 다음 날 바로 김현미 장관 측에 문제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차주 목요일, 즉 16일에 만나자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김상조 실장이 동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 회동에서 그린벨트 해제 압력이 세게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서울시 측은 일단 이 회동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당 대표-주요 당내 대권주자 면담 이후 원도심고밀도개발공급정책이라는 ‘그린벨트 보존정책대안’을 7월 13일 발표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주장대로 김상조 정책실장은 박 시장 측을 만나 그린벨트 해제 ‘압력’을 넣을 계획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월요일 주례회동과 관련해 청와대 보도자료에서 그린벨트와 관련한 박 시장의 말(‘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이 그대로 나오는 걸 보고 ‘박원순 시장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뜻은 떠나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7월 22일 ‘박원순계’ 또는 ‘친문’으로 분류되지 않는 여권 인사의 말이다. 그는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날(7월 10일) 기자에게 전화해 그린벨트와 관련한 최근 서울시의 움직임을 취재해보면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한 ‘다른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죽음에 성추행 고소를 제외한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건 현재까지 나온 정보만으로는 음모론의 영역에 해당하는 주장이다. 그에게 그날 왜 그렇게 봤는지에 관해 물었다.
“박 시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사망 전날 당 대표 면담에서 서울시의 그린벨트 사수 입장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전달받고 그가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린벨트나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뉴타운은 소수의 이익으로 돌아갈 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수의 눈으로 보면 강남 그린벨트는 지금쯤이면 두 번은 풀렸어야 하는데 자치단체장이 버티고 있어서 풀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정부·여당은 작업이 거의 되었는데 10년 동안 서울시장이 버틴다.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저앉히려 하지 않았을까.” 그 ‘소수의 세력’이 누군지 그는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복잡하게 소설을 쓸 것 없이 팩트만 보면 된다. 박 시장이 죽기 전까지 가장 고민했던 것이 뭔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린벨트 문제다. 그렇다면 그걸 빼놓고 그의 죽음을 해석할 수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 사진 공동취재단
박 시장이 그린벨트 해제의 대안으로 추진하던 원도심고밀도재개발정책은 서울시의 일부 라인을 통해서만 추진된 것이 확인된다. 박 시장의 ‘복심’으로 불리며 1기와 2기 서울시 정책 청년수당 정책이나 3기 민주주의위원회 정책을 주도한 시민사회측 측근들은 ‘부동산국민공유제’를 주장하며 원도심고밀도개발안에 반대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에도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두고 국토부와 서울시는 대립한 적이 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당시 처음 원도심고밀도개발을 제안해 박 시장은 수용했는데, 시민사회측근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며 “시민사회는 공급, 즉 개발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고 규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논의해봐야 소용이 없어서, 현 원도심고밀도개발안은 지난 6월부터 서울시 주택본부와 지속적으로 준비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원도심고밀도재개발, 박원순 대선공약?
정리하면 지난 4월 정무비서라인을 종전의 시민사회에서 정치권 정책전문가로 교체하면서 ‘전국민고용보험’에 이은 2호 박원순표 정책대안으로 내놓을 복안이 ‘그린벨트 해제 대신 원도심고밀도재개발정책’이었고, 이런 정책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대권주자 박원순’을 띄울 계획이었던 셈이다.
“잘 아시지 않나. 국토부는 전반적으로 여의도와 당·청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기 스탠스를 주장할 수 있는 부처가 아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던 전 국토부 고위인사의 말이다. “현직이 아니라 최근 벌어진 논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면서도 이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국토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못 해 안달하는 악마 같은 부처가 아니다. 박선호 차관은 참여정부에서 주택정책과장을 역임한 최고의 주택 전문가다. 국토부 공무원들이라고 영혼 없는 테크노크라트가 아니다. 그린벨트를 푼다고 부동산 안정화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실제 그럴 것으로 믿는 국토부 공무원들은 거의 없다. 당과 청, 정치권의 요구를 기술적으로 검토하면서 시민사회 등의 저항이나 반발을 신중하게 고려해 검토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으로 3기 신도시 건설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의 신중함이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7월 16일 면담일정을 결정하고 청와대 정책실장 배석을 통보한 김현미 장관 측은 관련한 기자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김상조 정책실장도 휴대폰으로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으나 답하지 않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