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투명 공개’가 최선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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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나이·동선 공개 사생활 침해 논란… “시간과 장소 공개로 충분” 지적

‘투명한 정보공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이 빠르게 안정기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투명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확진자 신상과 동선 공개는 코로나 방역에 커다란 공헌을 했지만, 사생활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pxf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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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스크 쓴 얼굴도 식별 가능

지난 3월 중국의 한왕테크놀로지라는 회사는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얼굴 식별뿐 아니라 온도 센서 연결을 통해 체온까지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회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1초 이내에 최대 30명의 신원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인식 성공률은 마스크 착용 시 95%, 마스크 미착용 시 99.5%에 이른다.

한왕테크놀로지는 마스크를 쓴 의료인들의 출입을 편하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밝혔으나, 중국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의 감시망이 더 촘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CCTV의 추가 설치다. 지난 4월 28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중국의 몇몇 지방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겠다는 이유로 집 밖은 물론 집 내부까지 촬영하는 CCTV를 설치했다. CNN은 자가격리 대상자 거주지 앞 현관에 카메라를 설치해 외출 여부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 일부는 자가격리자의 집 안까지 비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논란은 휴대전화에 깔리는 건강 QR코드다. 이는 코로나19와 관련해 개인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전자서류다. 건강 상태는 초록(양호)·노랑(주의)·빨강(확진)으로 나타난다. 코드는 진료기록·위치정보·통신내역·결제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색깔이 바뀐다. 가령 초록색이었다 해도 머물렀던 공간에 확진자가 있었다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코드는 각 개인에게 건강 상태를 알려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민은 코드가 없으면 사실상 이동이 불가능하다. 코드가 노란색이거나 빨간색이어도 마찬가지다. 버스·기차·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코드를 내밀어야 탑승이 가능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드론이 차량 운전자들의 코드를 확인한다. 코드를 요구하는 식당·카페·마트 등도 있다. 현재 7억 명가량이 이 코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철현 경희대 중국 인문사회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코드가 만들어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의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코드를 만들었다”며 “불편을 없애는 대신 중국 정부는 사람들의 이동을 더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미셸 푸코가 말했던 ‘생체권력’ 정책도 더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코는 인간의 신체를 권력이나 자본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길들이고 규칙화하는 것을 ‘생체권력(bio-pouvoir)’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그 신체를 확인(identify)해야 한다.

다만 박 교수는 중국의 이 같은 시스템을 ‘감시’ 키워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감시만으로 설명하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중국의 사회관리 체제의 일부가 감시”라며 “중국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이고 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인구는 좀 많나.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를 파악하고 장악할 것인가? 중국만의 특수성과 복합성도 같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유럽 블루투스로 코로나 추적

유럽도 코로나19와 관련해 확진자를 추적하는 앱을 사용한다. 다만 앱의 작동 방식이 중국이나 한국과는 다르다. 중국과 한국은 GPS를 사용해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반면 유럽과 미국, 싱가포르 등에서는 블루투스를 통해 사용자 간 ‘근접성’을 추적하는 앱을 내놓고 있다.

이 앱은 휴대전화가 보유한 코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휴대전화의 코드가 있고, 블루투스가 있다. 블루투스는 코드를 연결해주는 실 혹은 신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블루투스를 켜고 일정 거리 이내로 들어가면 각각의 휴대전화는 블루투스를 통해 서로 코드를 교환한다. 이렇게 교환된 코드는 암호화된 다음 서버에 저장된다. 누군가 확진을 받았다고 치자. 확진자가 추적 앱에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입력하면, 확진자의 코드가 저장된 다른 휴대전화들에 메시지가 전송된다. 당신이 과거에 접촉했던 사람 중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다. 이때 사용자의 신상은 물론이고 동선도 공개되지 않는다. 구글과 애플이 손잡고 개발하고 있는 앱도 이와 같은 방식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어모씨(32)는 “한국과 같은 방식의 추적은 하지 않고 있으며 도입한다고 하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부감이 클 것 같다”며 “아무리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공중보건 목적이라고 해도 정부기관이 항상 개인을 추적하고 있다는 자체가 소름 끼친다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독일 튀빙겐대에 다니는 리한다 라카슈미디스(25)는 e메일을 통해 “한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상당히 잘 처리해왔다고 본다”면서도 “현재 독일은 한국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익명권을 지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은 사생활 침해와 국가의 감시 위험이 적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앱 설치부터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시스템을 업데이트할 때 추적 앱이 자동으로 깔리도록, 운영체제에서 보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후에 삭제는 가능하다.

“대낮에 모텔에 왜 갔을까. 좀 이상하다”, “이 시국에 성형외과에 가고 싶냐?”, “60대가 뭘 저렇게 돌아다니냐. 지하철 무임승차 없애야 한다.”

코로나19 초기, 확진자 동선 공개에 달린 댓글들이다. 확진자의 성별과 나이, 동선까지 공개되자 확진자 신상에 대한 추측은 물론이고 비아냥이 쏟아졌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진이 지난 2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 비난을 받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코로나19가 안정기에 들어선 만큼 개인정보나 감시 등에 대한 평가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기에 국민이 CCTV·신용카드·통신내역 등까지 동의했지만, 이는 사실상 어마어마한 감시시스템”이라며 “개인정보에 대한 강력한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도 “확진자의 성별·나이·동선을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며 “중요한 것은 시간과 장소다. 확진자별로 따로 동선을 공개할 필요 없이 확진자들이 다녀간 장소와 시간만 나열해서 공개하면 됐다. 구체적인 원칙이 없다면 감시체계에 익숙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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