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판 주식 개인이 사들여… 10년 넘게 이어져 온 패턴 파괴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1번 확진자가 발생한 날 코스피지수는 2262.64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2월 18일, 대구 신천지 신도였던 31번 환자가 확진된 날에도 2200대(2208.08)를 유지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하락이 시작됐다. 2000 아래로 떨어진 것은 불과 열흘 만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심상치 않았고 실물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경제위기가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1500 아래로 급락하는 데 채 20일이 걸리지 않았다. 3월 19일 코스피지수는 1457.64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7월 17일 이후 10년 8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까지는 전염병이 확산해 실물경제에 위기가 오면 주가가 하락하게 된다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난 4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외환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반전은 거의 한 달 만에 1900대를 회복했다는 점이다. 4월 17일 코스피지수는 1914.53으로 마감했다. ‘개미’들의 힘이 컸다. 지난 1월 21일부터 4월 17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 20조9523억원을 순매수하며 20조2497억원을 매도한 외국인의 물량을 받아냈다. 특히 개인들은 코로나19로 주가지수가 하락하기 시작한 3월부터 매수를 본격화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들 자금이 1450대이던 지수를 1900까지 끌어올렸다”며 “이게 가능할지 몰랐고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가 자기 책임 하에 본인 자금으로 장기투자하는 것은 고맙고 환영한다.” 지난 3월 31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에 힘입어 증시가 반등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흐름이 국내 가계 자산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면 금융위원장이 개인투자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것 또한 흥미로운 장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등 우량주 중심 투자
한국 증시는 외국인들이 팔면 주가가 내리고 외국인들이 사면 주가가 오르는 패턴을 보여왔다. 황 위원은 “1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형적 패턴”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달랐다. 외국인이 줄곧 팔았지만 주가가 계속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2007년 8월 기록을 넘어섰다. 외국인들은 2월 3조2250억원을 팔아치운 데 이어 3월 13조450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의 총금액이 500조원 아래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2016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처음 ‘개미’들의 매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우려가 컸다. 변동성이 큰 장에서 무리해서 투자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개미들은 굴하지 않았다. 증시가 폭락장을 이어가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장주에 매수세가 몰렸다.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개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받아내는 듯해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외국인의 매물을 힘겹게 받아내는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마치 1894년에 일어난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연 개미들이 외국인 물량을 ‘힘겹게’ 받아냈다고 볼 수 있을까. 2020년 개미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등 우량주 중심으로 펀더멘털 투자를 했다. 소위 테마주로 불리는 인기 업종 위주로 사들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모습과도 달랐다. 2001년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량주를 저가 매수해서 장기 투자하면 성과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스마트 머니’라는 칭송부터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이 어려워진 2030세대가 ‘위기’를 ‘기회’로 보고 주식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 3040세대가 자녀들에게 우량주를 사주고 장기투자 교육을 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양지원씨(38·가명)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젊은 시절 테마주 중심으로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고 자식들에게 ‘주식 투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다”며 “고금리 시대를 산 그분들과 다르게 우리 세대는 저금리 상황에서 자산을 불리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씨도 이번에 자녀에게 삼성전자 주식을 사줬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보답’해주는 주식이라 생각한다.
과연 ‘동학개미운동’이 가계 자산 구조 변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까. 박스권에 갇혀 있다며 ‘박스피’라는 오명을 쓴 한국 주식시장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자금 유입이 계속될까 하는 질문과도 맞닿는다.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부동산에서 증시로 ‘머니무브’가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의 공약을 내세운 미래통합당이 참패하고 여당이 압승하면서 정책 변화의 기대감마저 사라진 것이다.
장기투자로 전환하는 계기 될까
그렇다면 이제는 성과가 필요하다. 황 위원은 “저가매수 기회를 활용해서 장기간 운용했더니 은행 예·적금 수익률보다 높더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이런 자금들은 주식시장에 계속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대로 단타매매하듯이 끝나면 다시 이 자금은 이탈할 수 있다. 4월 들어 개미들은 우량주를 팔고 테마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10일 마스크·진단기기·백신·세정 및 방역 관련 69개 종목 테마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물경제 타격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주식시장 하락 위험이 남아 있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대출 등을 통한 무리한 투자는 절대 삼가야 하는 이유다.
한편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은 ‘금융교육’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주식을 처음 사게 된 일부 ‘신규 개미’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면 삼성증권으로 가야 한다고 오해를 할 정도로 한국의 금융이해력은 낮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9점)보다 낮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가 중에도 주식에 투자한다는 의미가 기업에 투자하는 의미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 주식시장에서 자본시장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황 위원은 “주식 투자는 기업에 대한 투자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과 주식에 대해 투자하는 것은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시장은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부동산 투자는 개인 차원의 자산 증식에서 끝나는 게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우호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임아영 경제부 기자 laykn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