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조류독감 발생… 호주 산불·사막 메뚜기떼 습격도 식탁 위협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다. 인류는 조만간 닥쳐올 가능성이 높은 식량위기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도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아시아권에서 여전히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까지 다시 발생했다. 또 동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고 있는 사막 메뚜기떼의 습격도 인류의 식탁을 위협할 중대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1월까지 이어진 호주의 산불 여파가 호주 농업은 물론 세계적으로 곡물 및 식재료 공급에 타격을 입혔다.

2013년 네덜란드의 배양육 개발 업체 ‘모사 미트’가 발표한 세계 최초의 배양육 햄버거 패티/모사 미트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기후변화 및 환경위기에 밀접하게 연관된 농·축산업과 식품산업의 대안으로 다양한 ‘미래 식량(퓨처푸드)’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적극적인 일부 소비층의 선택에만 의존했던 미래 식량을 가격과 함께 입맛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첨단기술 개발의 최전선으로 꼽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식량 기술 개발 분야에 가장 활발하고 도전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곳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공유주방 ‘키친타운’은 2014년 문을 연 이래 6년간 400여 개의 식품 관련 스타트업이 맛과 흥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이목을 끄는 실험적인 식품·식단·식재료를 개발해온 곳으로 유명하다. 앞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에다 시장의 흐름을 이끄는 색다른 식품들을 창안해내는 능력이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맥주 찌꺼기로 에너지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사례는 맥주 원료 찌꺼기로 에너지바를 만든 스타트업 ‘리그레인드’가 대표적이다. 맥주를 만들 때 들어가는 보리와 밀 같은 곡물은 효모가 발효시키는 데 필요한 당분만 뽑은 뒤 대부분 버려진다. 맥주 1ℓ를 만들면서 버려지는 곡물은 720g 정도. 미국에서 한 해 맥주 227억ℓ를 생산하는 동안 1630톤 규모의 곡물이 그냥 버려진 셈이다. 이 기업은 농가의 퇴비 원료로 쓰이던 곡물 찌꺼기를 공짜에 가깝게 가져와 이를 재활용해 에너지바나 프레즐을 만들었다. 제품에 ‘허니 아몬드 IPA’, ‘초콜릿 커피 스타우트’ 같은 맥주 이름을 붙이는 감각적인 마케팅도 펼쳤다. 맥주 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에너지바에 가깝지만 색다른 원료와 친환경적인 생산, 값싼 원료 덕에 주목받고 있다.
미생물에 공기를 투여해 단백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푸드 스타트업 ‘키버디’는 특정 박테리아가 이산화탄소를 원료 삼아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과거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일종의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동물성 단백질과 유사한 아미노산 구성을 보이는 단백질 ‘에어 프로틴’이 만들어졌다. 아직 본격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단백질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고기 음식과 맛이 비슷한 시제품을 내놓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기르면서 들어가는 막대한 양의 물과 곡물 그리고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대신 이산화탄소로 단백질을 얻는 이 식품기술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획기적인 가능성을 보인 셈이다.
실리콘밸리 키친타운이 신기술 접목으로 식품 산업과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는 데 앞서나가는 모습은 세계 각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2019 코리아 푸드테크 컨퍼런스’에 참석한 키친타운의 러스티 슈왈츠 대표는 “공유주방 모델을 통해 푸드 스타트업들에 필요한 규모로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시장에서도 쉽게 진입해 실패위험은 감소시키는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며 “도전적인 창업이 장려되면서 지역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험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식품산업의 새로운 시도는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얼마나 시장에서 살아남을지는 불투명하지만 ‘친환경’과 ‘재생원료’, ‘생산비 절감’ 같은 키워드가 한데 맞물린 덕에 판매와 생산 양면에서 적지 않은 장점을 보유한 점은 인정받는다. 포도를 전혀 쓰지 않고도 유명 빈티지 와인 맛에 가까운 와인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나,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대체육 대신 세포를 배양해 보통의 고기에 더욱 가까운 맛을 내는 배양육 기술 등은 시장과 정책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언제든 단숨에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생물 단백질로 ‘미래 식량’ 개발
식품 전문가의 시각에선 이러한 대안 미래 식량의 보편화가 ‘임박한 미래’에 가깝다. 하상도 중앙대 교수(식품공학)는 “미래 식량이 빠르게 식탁 위에 자리 잡을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미 대량생산이 가능한 식물성 원료의 대체육은 가격과 맛 모두 빠르게 개선됐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후변화와 환경위기가 빠르게 진행되는 추세라면 동물성 단백질을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물론 미래 식량도 기술 발전 정도에 따라 시차는 날 것이기 때문에 배양육 기술은 좀 더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테고, 음식을 3D 프린팅으로 찍어내 간편하게 먹는 변화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 가축을 기르는 축산환경이 바이러스 문제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으므로 식탁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신기술을 접목한 푸드 스타트업의 사례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안정성이 확보된 대체 식재료의 유통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곤충 기반 단백질을 중심으로 대체 단백질 식재료 시장을 넓히고 있는 업체인 퓨처푸드랩 관계자는 “밀웜이나 귀뚜라미를 원료로 만든 파우더 가루나 에너지바는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며 “곤충 단백질에 대해 아직 거부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 맛을 보면 고소한 견과류 비슷한 맛이 나고 고유한 풍미가 있기 때문에 재구매하는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초기 대체 식량이 결국은 맛 때문에 시장에서 좌절한 경험은 미래 식량 개발에도 교훈이 됐다. 최근의 개발 추세는 무엇보다 기존의 식재료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맛을 구현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콩고기’로 대표되는 식물성 고기를 소·돼지·닭고기의 맛에 가깝게 만드는가 하면 생선과 갑각류 맛을 내는 대체·배양육 개발도 궤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젖소의 DNA를 바탕으로 개발하거나 감자·옥수수 같은 식재료로 만든 대체 유제품도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개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추세는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과 유제품 등을 유통하고 있는 지구인컴퍼니 민금채 대표는 “곡물은 세계적으로 소비가 줄어들면서 생산량의 60%가 재고가 될 정도로 재고 비중이 높은 품목”이라며 “반면 식물성 고기 같은 대체육류의 시장 규모는 연간 7.2%씩 성장하고 있는 데서 보듯 미래 식량이 환경은 물론 시장 전체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