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주부’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 가사노동자 1000명 직접고용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 지수를 80점이라고 가정하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이들에게 정부 특례로 50점짜리 보호조치가 생겼다. 보호 지수가 0점에서 50점으로 올랐으니 박수를 쳐야 할까, 아니면 80점이라는 기본 지수를 깎았으니 비판해야 할까.
지난달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규제 샌드박스(신기술 출시에 따라 한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한 제도)’로 한 플랫폼 업체에게 가사노동자 1000명의 직접고용을 허가해주면서 이 같은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방안 생겼다” 긍정론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질 당시 가사노동은 사적 영역에만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6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플랫폼 업체는 가사노동자들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휴게·휴일보장, 퇴직금, 고용·산재보험 등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2015년 전후로 기존 가사노동자의 일자리를 소개·알선해주던 직업소개소를 플랫폼 업체가 대체했다. 가사노동자는 플랫폼 업체 소속 직원이 아니면서도, 고객들이 주는 평점(별점)이 낮으면 플랫폼 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이들의 신분이 더 불안해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는 14만2000명으로, 50대 이상이 91.2%다. 이들은 주 평균 31.3시간을 일하며 월평균 102만원을 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객과 가사도우미를 연결하는 어플리케이션(앱) ‘대리주부’를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이 가사노동자 1000명을 직접고용하게 해달라며 정부 허가를 요청했다. 현 상태로 직접고용할 경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위반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년 7000억~1조1000억원 규모로 성장하는 가사도우미 시장을 내다본 사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내 집을 맡기는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객들의 요구와 ‘가사도우미의 신분이 안정돼야 업무성과가 높아진다’는 사업자의 요구가 맞닿았다.
홈스토리생활은 2017년 고용노동부가 발의한 뒤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일명 가사법)’을 준용해 특례 신청을 했고, 정부는 이를 들어줬다. 이에 따라 해당 업체에 직접 고용된 1000명의 가사도우미는 퇴직금, 고용·산재보험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사법엔 근로기준법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 담겼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 4시간 근무 시, 사업주는 휴게시간 30분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남의 집에서 쉬는 게 불가능하다는 가사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해 휴게시간 부여 방식을 사업주와 노동자가 협의해 정하도록 했다. 사실상 30분의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은 사전에 소정근로시간(사용자와 노동자가 정한 근로시간)에 비례해 주휴·연차수당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호출(콜)에 따라 노동시간이 정해진다는 점을 고려해 일을 마친 후 업무시간에 따라 사후에 주휴·연차수당을 주도록 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첨예하게 갈렸다. 우선 근로기준법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한 발짝 진전한 것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제는 남의 집에서 청소하다가 다쳐도 보상을 받을 수 있고, 퇴직금 등도 받을 수 있다. 아무 보호조치가 없던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 처우가 나아진 건 사실이다.
가사법 제정을 위해 힘써온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완벽하게 만족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던 가사노동자 보호 방안이 생긴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우선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시행한 뒤, 추가 보호조치를 어떻게 확대해나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일부만 적용” 비판
플랫폼 업계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근로자성’을 두고 플랫폼 업체와 노동계가 벌여온 긴 싸움의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플랫폼 업체는 ‘개인이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하며, 개인의 장비(차량·도구)로 영업을 한다’는 점을 근거로 직접고용을 피한다. 반면 노동계는 고객 평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감을 받지 못하며, 수수료도 플랫폼 업체가 정한다는 점을 들어 ‘직접고용’을 주장한다.
플랫폼 업체 등이 모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느냐 혹은 제외하느냐의 관점만 유지할 경우, 양측 입장 차가 심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다”며 “플랫폼 업계의 다양한 고용형태에 따른 다양한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우려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접고용되더라도, 최저 보호 기준인 근로기준법이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권리 보호가 정부 특례나 특별법으로 이뤄질 경우, 근로기준법은 느슨해지고 결국 장기적으로 이들의 처우 역시 크게 악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 플랫폼 사업자가 근로기준법을 일부만 적용하는 방식을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대리주부의 직접고용 1000명은 어디까지나 사측의 이익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중시한다. 지난 11월 서울북부지방노동청이 ‘요기요’의 배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것이 그 예다. 당시 서울북부지방노동청은 요기요가 배달노동자에게 시급을 주고, 출·퇴근 상황을 보고하게 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최정우 민주노총 전략조직실장은 “노동권 보호의 마지노선인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틀을 지키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보호 방안을 모색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산업부 기자 huiya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