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이마트 트레이더스·홈플러스 스페셜 등 창고형 마트 성장세
‘터치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기저귀, 음료수 등 공산품뿐 아니라 신선식품, 낱개 상품까지 주문만 하면 문 앞까지 배달된다. 빠르면 주문 당일, 늦어도 다음날이면 받을 수 있다. 값도 비교적 싸고 결제도 간편하다. 이제 소비자들은 번거롭게 마트나 상점을 가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쉬는 날, 가족들을 데리고 주차장 앞에서 긴 줄을 서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대형마트로 직접 찾아가 장을 봐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묻는다. “왜 우리가 쇼핑을 위해 마트에 가야 하는가?”

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바로 그 자리에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한 롯데마트 칠성점의 그로서란트(grocery+restaurant) 매장. / 롯데마트 제공
최근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상점의 전략은 고객의 발길을 최대한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소비자들이 이곳을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차별화된 것들로 매장을 채운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상품만 고르는 온라인과는 다른, 마트만의 ‘독특함’을 고객에게 선사해야 한다.
마트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공간 만들어
대형마트의 매장 규모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비자에게 다양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상품만’ 진열된 구매공간을 뛰어넘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 주요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쇼핑몰의 급격한 성장에 밀려 매출 및 영업이익이 줄면서 수년간 신규점포의 출점을 자제해 왔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경우, 2008~2012년 한 해 평균 22개 점포가 늘었지만 2013~2018년에는 3사 모두 합쳐 26곳이 새로 출점했다. 지난 5년간 늘어난 점포 수가 과거 1년에 새로 생긴 숫자와 맞먹는 셈이다. 지난해엔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매출이 부진한 점포 2곳, 1곳, 2곳을 각각 폐점했다.
하지만 ‘창고형 초대형 마트’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다르다. 코스트코는 국내 대형마트 가운데 유일하게 폐점 없이 2곳(대구혁신도시점, 세종점)의 문을 새로 열었다. 이마트의 창고형 마트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지난해 매출이 25.5%(본사 추정치) 오르는 등 2015년 이후 매년 25%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간 수도권, 지방에서만 개점한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여세를 몰아 지난 2월 25일 처음으로 ‘인 서울’ 계획을 밝혔다. 서울 노원구 기존 이마트 월계점 주차부지에 트레이더스 월계점을 만들 예정이다. 새로 생길 트레이더스 월계점과 이마트 월계점을 합한 연면적은 9만9967㎡(약 3만240평)에 달한다. 이는 과거 이마트와 트레이더스를 하나로 묶어 ‘이마트 타운’으로 조성한 일산 킨텍스점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킨텍스점은 개점한 지 1년 만에 253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홈플러스 스페셜’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론칭했다. 일종의 ‘HDR(Hybrid Discount Store)’ 모델로, 가격을 대폭 낮추고 대용량 판매라인을 갖춘 창고형 스토어다. 매장 면적 자체가 넓어진 것은 아니지만, 취급 품목을 ‘선택과 집중’해 잘 팔리는 상품군 위주로 대량 배치하고 통로 면적을 22%가량 늘려 고객들이 편안하게 쇼핑하도록 배려했다.
홈플러스 스페셜은 지난해 6월 대구 1호점을 리모델링해 오픈한 이후 지난해 12월 16번째 점포인 시흥점까지 출점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리모델링 이후 전년 대비 평균 매출이 40% 이상, 객단가는 약 30% 늘었다. 롯데마트도 2017년 서울 영등포구에 총면적 1만3775㎡(약 4167평) 규모의 점포를 새로 냈다. 롯데마트가 서울에 3000평이 넘는 점포를 연 것은 2005년 구로점 이후로 12년 만이었다.
축구장 몇 개는 들어설 정도로 거대한 매장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지난해 이마트가 30개월여 만에 신규출점한 의왕점은 3000평 규모의 절반가량이 ‘마트에서 볼 수 없던 공간’으로 채워졌다. 지하 1층엔 200평의 공간에 서적 등을 비치해 지역주민의 모임 장소를 조성했다. 각종 전자제품, 장난감 등을 갖춘 키덜트 타깃의 편집숍 일렉트로마트, 특이한 콘셉트의 상품들을 갖춘 ‘삐에로 쇼핑’ 등의 카테고리 킬러숍들도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롯데마트 등이 2017년 도입하기 시작한 ‘그로서란트(grocery+restaurant)’ 매장도 있다. 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그로서란트 매장은 외식 비용을 줄이면서도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HDR형 마트로 리모델링한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 홈플러스는 일부 매장을 오프라인 쇼핑 고객의 편의를 위해 품목 수를 줄이고 고객 동선을 넓힌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으로 재개장했다. / 홈플러스 제공
주민 사랑방 조성 등 지역 밀착형 선봬
‘신기한 것들’은 한 번쯤 사람의 이목을 끌기엔 좋지만, 고객들이 매장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홈플러스는 ‘커뮤니티’를 위해 향후 매장 바깥에 지역밀착형 커뮤니티몰 ‘코너스(Corners)’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양한 쇼핑, 편의시설 외에도 지역주민이 모여 플리마켓이나 풋살을 즐기는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슬리퍼를 신고 드나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라며 “주말에만 시간을 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각 지역 시민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마트의 본령인 ‘쇼핑’에도 힘을 싣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마트가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쇼핑하기 ‘불편’하다고 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마트 쇼핑의 장점은 분류된 물건을 한눈에 보고,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고, 혹시 내가 잊었을지 모를 다른 필요한 물건들을 쉽게 집어들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런 오프라인 쇼핑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내고 있다. 롯데마트가 지난해 12월 문을 연 금천점은 ‘4세대 미래형 쇼핑공간’을 선언하며 종이 가격표 대신 QR코드를 스캔해 장바구니 없이 쇼핑이 가능하게 했다. 연동된 앱 정보로 자세한 상품정보, 상품평 등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에 친숙하지 않은 고령 소비자들을 위해 ‘배송카드’를 가져가면 쌀이나 생수 등 무거운 상품을 대신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마련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신선식품’에 방점을 두며 구입한 식재료의 품질이 마음에 안들 경우 7일 이내에 현장에서 바로 환불을 요청할 수 있는 ‘신선식품 A/S’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교환 및 반품이 최소 하루 정도 걸리는 온라인 쇼핑몰에선 불가능한 오프라인만의 확실한 강점이다.
‘옛 강자’들은 오프라인 매장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강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연 대형마트에서 한층 더 몸을 불린 초대형 창고형 마트는 타개책이 될 수 있을까.
<김지원 산업부 기자 deepdeep@kyu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