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가짜 착한 기업’이었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라면값 담합·계열사 부당지원 이어 회장 부부, 회삿돈 50억원대 빼돌려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눈앞에 둔 삼양식품이 오너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회삿돈 약 5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이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전 회장의 아내 김정수 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한때 식품업계에서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불렸던 삼양식품은 2012년 라면가격 담합과 2014년과 2015년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 부당지원, 2016년 지주사 보고 누락과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이어 전 회장 부부의 횡령사건이 터지면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최근 들어 삼양식품을 비롯한 이른바 ‘착한 기업’들의 일탈행위가 속속 드러나면서 ‘착한 기업은 없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서울시청 정문 앞에 삼양라면을 쌓아올린 ‘삼양산성’./아고라 제공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서울시청 정문 앞에 삼양라면을 쌓아올린 ‘삼양산성’./아고라 제공

구매운동 원조 삼양식품

광우병 논란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온라인에서는 ‘삼양라면 사주기 운동’이 뜨겁게 번졌다. 삼양라면 구매운동의 시발점은 2008년 6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삼양식품의 비판기사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삼양식품 라면에서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보도했는데, 일부 네티즌이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지 않은 데 대한 보복성 기사’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삼양 구매운동을 펼친 것이다. 안티 조·중·동 운동과 맞물린 삼양라면 구매운동으로 당시 삼양식품 주가는 2주 동안 6차례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광고와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사회공헌’을 중시했던 창업주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행적을 재조명하며 적극적인 구매운동에 힘을 실어줬다.

삼양식품은 졸지에 ‘착한 기업’이라는 명칭을 얻긴 했지만 그간 삼양식품의 행보는 착한 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양식품을 비롯해 농심과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사의 라면값 담합행위를 적발했다. 당시 삼양식품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120억6000만원이었지만 삼양식품은 담합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을 면제해주는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 삼양식품은 공정위에 라면값 담합 정황이 담긴 증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법원이 라면값 담합에 대해 증거능력 부족을 이유로 농심 등 다른 회사에 부과된 과징금 취소 판결을 내리면서 라면값 담합사건은 처벌 없이 끝났다.

2014년에도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지원을 이유로 삼양식품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6억2400만원을 부과했다. 삼양식품은 이마트에 라면류를 공급할 때 삼양내츄럴스(옛 내츄럴삼양)를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과정에 끼워 넣으면서 부당지원한 혐의를 받았다. 2015년 공정위는 삼양식품에게 또다시 시정명령과 과징금 3억원을 부과했다. 대관령 삼양목장을 운영하는 계열사 에코그린캠퍼스에 인력과 차량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부당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삼양식품은 지주사 규정을 위반하는 등 잦은 구설에 올랐다. 2017년에는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 모임인 공정거래실천모임에서 선정한 공정거래 관련 법을 가장 많이 어긴 기업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18년 기업 지배구조 평가에서도 삼양식품은 최하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지배구조 위험으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기업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오덕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D등급 기업은 기업가치 훼손이 지금도 상당하지만 앞으로도 현저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라며 “해당 기업들은 시급하고 즉각적인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갖가지 논란 속에서도 삼양식품은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입소문을 통해 히트하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5%를 밑돌던 영업이익률은 2017년 9%로 올랐고 2018년 상반기 삼양식품의 매출액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2% 증가했다. 하지만 전인장 회장이 지난 1월 25일 9년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회삿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되면서 회사는 다시 오너리스크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전 회장에게 징역을 선고한 재판부는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을) 개인 소유 주택수리비용, 승용차 리스비용, 카드대금 등 사적으로 사용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끼쳤다”고 밝혔다.

곪아터진 착한 기업의 이면

전직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해 착한 중소기업으로 꼽혔던 헬스케어 전문기업 바디프랜드도 직장 내 갑질 논란과 임금체불로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해 4월 바디프랜드는 체중이 많은 나가는 직원에게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하고 6월에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건강증진 프로그램 참여를 강요한 사실이 내부 고발을 통해 드러났다. 8월에는 직원들의 휴대전화·PC 검사를 허용하는 보안서약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표이사가 직원들에게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입건됐다. 1월 27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바디프랜드 특별근로감독 결과 법 위반사항’ 자료에 따르면 바디프랜드는 2016~2018년 임직원 15명에게 연장근로수당 2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고 퇴직금에서 연차수당을 제외해 총 156명의 퇴직금 4000여만원을 미지급했다. 2015년에는 연차휴가수당을 부족하게 지급했고 2016년에도 직원 77명에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바디프랜드 측은 입장문을 통해 “미지급금이 발생한 것에 대해 겸허히 실수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했다.

착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오뚜기그룹도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7년 경제개혁연구소가 공시대상 기업집단 이외 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오뚜기라면 전체 매출의 99.7%는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오뚜기 역시 여느 기업과 다를 것 없는 여러 문제가 이면에 상존하는 것이다.

2015년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닐슨이 발표한 ‘기업 사회공헌활동에 관한 글로벌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 10명 중 6명은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는 ‘착한 기업의 제품’이라면 더 비싼 값을 주고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착한 기업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박명희 소비자와함께 대표는 “총수나 설립자의 선한 의도가 실제 회사경영에 영향을 미치고 이어져 나가야 착한 기업이라 할 수 있다”며 “착한 기업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가짜 착한 기업’인지 여부를 소비자가 잘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