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프로그램 개발한 ‘카이스트 공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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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부터였나.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카이스트 공익’과 관련한 글들이 여러 편 올라왔다. 호기심에 글에 나온 사회복무요원의 브런치 페이지를 들어갔다. ‘카이스트 공익’은 올해 초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의 한 지방노동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반병현씨(25)였다.

반병현씨의 브런치 페이지 | 화면 캡쳐

반병현씨의 브런치 페이지 | 화면 캡쳐

반씨가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쓴 건 11월 1일이다. ‘업무 자동화 스크립트 짜주다가 국정원에 적발당한 썰’이 첫 글이다. 여기서 국정원은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다. 노동청에 배치된 반씨는 2개의 엑셀파일을 하나로 합치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가 파일 내용을 보니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파일이었다. 반씨는 파일을 알아서 합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자 담당 공무원 및 노동청 직원들이 업무효율이 높아졌다며 반씨를 칭찬했다. 그런데 갑자기 반씨의 작업 PC의 인터넷이 끊겼다. 노동청에서 인가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노동청 직원에게 전달했다는 이유에서다. 반씨는 ‘국정원’ 관계자와 통화를 한 끝에 겨우 차단을 해제받았다. 이후에도 반씨의 프로그래밍 본능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3900건의 우편물 수신자·발신자 목록 등을 한 번에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작업으로 한다면 못해도 수백 시간은 족히 걸릴 일이었다. 반씨의 경험담이 실린 브런치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세종시 노동부에서 반씨에게 사무자동화에 도움을 달라고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코딩 천재’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 반씨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봤다. ‘카이스트 공대생’과는 별 관련 없어 보이는 활동이 여럿 보였다. 2년 전 반씨는 법대를 다니는 친구와 ‘법대로 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두 파트 중 한 파트가 반씨의 글이다. 현재는 농업기업으로 보이는 ‘상상텃밭’의 임원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반씨와 연락이 닿았다. 석사과정까지 나왔으면 전문연구요원으로 지낼 수도 있는데 굳이 사회복무요원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전문연구요원은 대학원 생활의 연장이다. 더는 공부를 하기 싫어 단순업무를 하는 사회복무요원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씨의 성격상 업무를 '단순'하게만 수행할 것 같진 않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이리 열심히 했냐고 묻자 반씨는 “그냥 내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실력이 녹슬고 무뎌질까 겁이 났다. 평생 이렇게 살아왔기에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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