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한국 조선업 구세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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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발주된 LNG선 한국이 사실상 싹쓸이… 증권사, 내년 전망 긍정적

1년 뒤 한국 조선업이 다시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될까.

11월 들어 주요 증권사들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사에 대해 일제히 ‘BUY’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냈다. 조선업이 수주량 감소, 선가 하락으로 여전히 구조조정 중인 데다 글로벌 수요가 좋지 않아 자동차산업 등 주력 제조업들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례적이다. 바꿔 말하면 증권사들이 내년 전망을 그만큼 자신있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이 지난해 1월 경남 창원시 마산항 4부두에서 중량물 전용 선박에 실려 루마니아로 향하고 있다. 감정가가 190억원인 이 크레인은 국내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헐값에 루마니아 조선소에 팔렸다. / 연합뉴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이 지난해 1월 경남 창원시 마산항 4부두에서 중량물 전용 선박에 실려 루마니아로 향하고 있다. 감정가가 190억원인 이 크레인은 국내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헐값에 루마니아 조선소에 팔렸다. / 연합뉴스

올해 들어 국내 조선업은 회복기조가 뚜렷했다. 320억 달러 수주 목표였는데 75%인 240억 달러를 달성했다. 2018년 매출목표치(250억 달러)는 거의 달성했다. 연말에 추가 수주가 이뤄지면 내년 매출액 증가는 확실하다. 올 들어서는 시장점유율 1위도 탈환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 조선소의 시장점유율은 올 1분기 36%에서 3분기 54%까지 확대됐다. 반면 중국 조선소는 1분기 30%에서 3분기 15%까지 추락했다. 특히 중국에 있는 조선소의 75%는 올해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소식은 한창 때의 수주량에는 여전히 못미친다지만 가격경쟁력 우려에 위축돼 있던 국내 조선업계에 ‘긍정적 신호’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올해 수주가 성장한 국가는 한·중·일 중 한국이 유일하다.

3개 조선소 혹독한 구조조정 거쳐

한국 조선업을 깊은 수렁에서 건져준 보물은 액화천연가스(LNG)였다. 한국은 올해 발주된 LNG선을 사실상 싹쓸이했다. 10월 기준 LNG선 글로벌 발주량은 43척인데 이 중 현대중공업 16척, 대우조선해양 12척, 삼성중공업 11척 등 국내 ‘빅3’가 88%인 38척을 수주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런던에서 바이어를 만났더니 LNG 관련 선박은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더라”며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기술력, 품질, 재무구조, 인건비 등 모든 면에서 중국 조선소에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 조선업은 그동안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뎌냈다. 20만명이던 고용은 10만명으로 반토막 났다. 상위 3개 조선소의 직접고용도 5만명에서 3만6000명으로 28%가 축소됐다. 상위 3개 조선소의 평균 연봉은 7530만원에서 6180만원으로 19.9%가 삭감됐다. 2015년과 비교해 인건비 관련 고정비용은 41%나 감소했다.

국내 조선업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2020년 1월 1일로 예정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IMO에 따르면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기존 대비 85%나 대폭 낮춰야 한다. 10월 IMO 회의에서는 이 같은 황산화물 배출 규제조치를 연기 없이 그대로 시행하기로 확인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IMO의 기준을 맞추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황함유량 0.5% 이하의 저황유를 사용하거나 탈황장치(스크러버)를 달거나 LNG를 연료로 사용해야 한다. 저황유나 탈황장치 설치도 대안이지만 결국은 LNG 연료 추진선으로 갈 것으로 증권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해상보험업계에 따르면 저황유를 사용할 때 엔진 손상이 많아 운용을 할수록 선주와 용선주(배를 빌려쓰는 사람)가 많은 비용부담을 지게 된다. 선박 연료의 황 성분이 감소할수록 점도가 하락해 윤활성이 낮아져 엔진 내부를 마모시키고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또 내부에서 새나가는 연료도 많아지게 된다. 특히 저황유를 쓰는 중국 선박의 보험금 청구는 한국 선박의 2배, 일본 선박의 3~6배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황장치는 새 배를 건조할 때 증가하는 비용이 LNG 연료 추진선에 비해 적어 1~2년이면 손쉽게 건조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전세계 어느 항구든 자유롭게 입출항을 할 수 있다. 또 연료공간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 데다 기존선에서 개조하기도 쉽다. 지난 9월 기준 신주 수주잔고에서 탈황장치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25%)이 LNG 연료 추진선(11%)보다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LNG 연료 추진선으로 대세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는 견해가 많다. LNG 연료 추진선의 가장 큰 단점은 LNG 연료를 공급받을 항구가 아직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LNG를 연료로 쓰는 선박은 항만에 설치된 대형 LNG 벙커에서 LNG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메이저 항만 외에는 설치된 곳이 많지 않다. LNG 연료 추진선을 건조하더라도 투입할 수 있는 노선이 한정돼 선주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항만들이 IM02020을 맞춰 LNG 벙커 개설에 나서면서 머지않아 이 같은 단점은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2025년부터 이뤄지는 CO2에 대해 30% 절감조치가 추가로 이뤄진다. 탈황장치를 단 배는 추가 비용이 들지만 LNG 연료 추진선은 계속 이용하면 된다는 얘기다. 향후 중고선박이 될 경우 선가가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수 있다. 중고선 매입 선주가 별도의 수리비용을 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LNG선의 용선료도 올라가고 있다. LNG선은 기존 배보다 최대 25%의 비용이 더 들어 건조비 회수까지 7년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LNG선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면서 용선료가 상승, 최근에는 회수기간이 4년까지 줄어들었다. 나아가 노르웨이, 벨기에, 독일 등은 탈황장치를 단 선박의 운항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럽 최대 항구이자 세계 최대 저유황유 벙커링 항구인 로테르담 항구에서는 저황유와 벙커C유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LNG 연료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주유소의 판매실적은 선주들이 선택하는 연료수요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분명한 지표”라고 말했다.

선박이 LNG를 연료로 쓰게 될 경우 LNG 수요가 급등한다는 것도 호재다. LNG운반선이 많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LPG는 기존 난방, 발전, 화학용 외 선박연료라는 수요가 더해진다. 매년 해운업은 3억톤의 연료유를 쓰고 있는데 이를 모두 LNG로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전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LNG 규모와 맞먹는다. LNG 시장이 2배로 커진다는 의미다. LNG는 북미, 호주, 중동과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 유럽과 동북아시아로 옮기는 물량은 LNG운반선이 담당해야 한다.

한국 조선소 제살깎아먹기 피해야

중소조선사에도 기회가 있다. LNG를 운송하는 피더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요 항만으로 옮긴 LNG를 소규모 항만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소형 LNG운반선이 투입돼야 한다. 소형 LNG운반선 시장이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떨어지거나 LNG 수요 급증 혹은 정치적 영향으로 LNG 가격이 상승할 경우 LNG 연료 사용이 지체될 수 있다. 또 LNG 연료 추진선으로 바뀌더라도 물동량 자체가 크게 증가하지 않아 절정기였던 2012~2013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또 과거에 그랬듯 한국 조선소끼리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일 경우 수익성이 생각보다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방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사람이 없지만 속도와 시장경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가 문제”라며 “LNG선 기술은 국내 ‘빅3’가 독보적인 만큼 기회를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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