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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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도 피할 수 없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응급처방전’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외환위기로 전례없이 실업자가 양산되던 시점이었다. 종합대책 중 하나로 ‘공공근로사업의 확대’가 담겨 있었다. 공공근로는 정부가 추진하는 단기 일자리의 대표 사례다. 이전까지는 실업자를 위한 ‘특별취로사업’으로 불렸다. 당시 정부는 “생산적 업무수요가 있는 공공분야에서 월 50만원씩 8개월 동안 12만8000명을 고용한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정부 주도 ‘단기 일자리’의 시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용·산업위기지역 자치단체장 간담회를 하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용·산업위기지역 자치단체장 간담회를 하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여야, 국감서 ‘가짜 일자리’ 논란

김대중 정부는 공공근로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이듬해 공공근로사업 예산규모(2조2988억원)는 전년도(9252억원)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대표 사업으로 숲가꾸기, 데이터베이스(DB) 작업, 하천 청소 등이 있었다. 정부는 단기 일자리로 고졸 인턴제와 초·중·고 보조교사도 채용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 기간, 여야는 단기 일자리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고용상황이 악화되자 정부가 단기 일자리 창출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단기 일자리 창출을 분식회계에 빗대 ‘일자리 분식’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단기 일자리를 늘려 고용지표를 일시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의미였다.

기획재정부가 10월 24일 발표한 단기 일자리 4만9000개를 보면 20년 전과 단기 일자리의 종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DB 정리작업(철도시설 관련 중요기록물 DB 구축 등), 자료 입력(중소기업 대출기록 전산화·법원 사건기록 정리 등)처럼 단순업무가 많다. 산이나 전통시장 화재 감시원(1500개)도 단기로 뽑는다.

각종 실태조사·현장조사(경마용 말·차량 실태조사 등)나 정부 사업의 홍보 일자리(일자리 안정자금 홍보 확대 등)도 다수 포함됐다. 빈 강의실을 점검하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처럼 급하게 끼워넣은 흔적이 역력한 단기 일자리도 있다. 체험형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단기 일자리(5300개)도 있다.

정부는 단기 일자리 4만9000개 창출계획을 발표하면서 단기 일자리를 ‘맞춤형 일자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38만명 규모의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고용여건이 악화되자 청년 인턴제,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했던 정부 지원 청년 인턴제는 14만명을 지원했다. 청년 인턴제 지원내역을 보면 학습보조교사, 공공기관 청년 인턴, 지방자치단체 청년 인턴 등이었다. 희망근로 프로젝트에는 1조7000억원이 투입돼 6개월간 25만명에게 단기 일자리가 제공됐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 해외 인턴(7300명), 청년 인턴(3만2000명) 등 주로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보다 앞선 노무현 정부도 2003년 9월 ‘청년실업대책’에서 단기·중장기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단기 일자리도 공공부문 임시 일자리, 국내외 인턴, 해외 봉사 등이었다. 특징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방과후 교사, 특수교육보조, 간병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단기 일자리가 늘었다.

단기 일자리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쉬운 수단이다. 정부가 단기 일자리를 만들면 2~3개월 동안 일부 사회 취약계층의 소득이 보장된다. 일시적으로 고용지표상 취업자는 늘고 실업자는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단기 일자리는 일종의 응급처방전인 셈이다.

실효성 없이 급조된 단기 일자리가 문제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1년 펴낸 역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예산, 정책, 실적 조사 분석’ 보고서를 보면에 김대중 정부는 5년간 공공근로사업에 실업대책 중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5조8653억원을 투입했다. 단기 일자리 창출이 일자리 지표 개선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실업률은 1998년 6.8%에서 2002년 3.6%로 떨어졌다. 실업자 수도 같은 기간 126만6000명에서 83만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단기 일자리 때문만이라고 볼 순 없지만, 임금노동자 중 임시직·일용직 노동자 비중은 1998년 2월 44.5%에서 2003년 2월 49%까지 치솟았다.

단기 일자리 공방은 입장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2년 10월,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내고 “정부는 청년 친화적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한다고 하면서 유망 중소기업 인턴 5만개, 글로벌·문화 일자리 2.4만개, 지역사회·교육 서비스 일자리 2.6만개 등 나쁜 일자리에만 집중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정부가 단기 일자리가 ‘가짜 일자리’라는 비판에 대응한 방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단기 일자리 논란이 일자 “당장 시급하게 일자리가 필요한 국민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진정성을 이해해달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정작 정부의 진정성은 조급함으로 나타났고, 결국 과거를 답습한 단기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특히 짧은 시간에 단기 일자리를 쥐어짜내야 했던 정부 부처 산하기관 관계자들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기재부는 지난 9월 14일 정부 부처 공공기관 360곳에 ‘BH(청와대) 요청’으로 단기 일자리 현황 파악을 요구한다. 사흘 뒤에는 단기 일자리 확대 간담회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다고 덧붙였다. 이후 기재부는 9월 18일과 27일, 28일, 그리고 10월 2일 공공기관에 재차 공문을 보내 단기 일자리 확충안을 낼 것을 촉구했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첫 지시를 받고 2~3일 안에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했다”며 “2~3개월 채용하면 뭘 가르칠 수도 없어, 단순노동만 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단기 일자리를 만들려고 했다면 내부에서 의견을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토부 산하 공기업 관계자는 “단기 일자리가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데 급히 내라고 하면 지금까지 냈던 단순 청소, 서류 정리 업무만 내야지 별 수 없다”며 “더 이상 기관이 원치 않는 단기 일자리 창출을 연례행사처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원진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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