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

박수근과 장욱진 화풍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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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주변에 삽니다. 주말이면 홍제천 천변을 걷곤 합니다. 허리와 어깨를 펴고 꼿꼿하게 걷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홍제천을 따라 달리는 서부간선도로 고가의 기둥 때문입니다. 고가도로를 떠받친 채 도열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숨 막힌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둥마다 세계적 명화가 크게 확대되어 걸려 있습니다. 저절로 그림에 눈이 갑니다.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모르게 가재걸음을 걷거나 뒷걸음질치기가 일쑤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두 화가인 박수근·장욱진 화백과 대표작품을 소재로 한 ‘현대 한국 인물(화가)’ 기념우표 67만2000장을 7월 25일 발행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두 화가인 박수근·장욱진 화백과 대표작품을 소재로 한 ‘현대 한국 인물(화가)’ 기념우표 67만2000장을 7월 25일 발행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에게 그림 보는 재미를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제가 ‘천변화랑’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천변화랑’에는 한국 근대미술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계투’와 ‘부부’(이중섭), ‘해당화’(이인성), ‘매화와 항아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환기), ‘아악의 리듬’과 ‘말’(김기창), ‘길 위의 자화상’과 ‘가로수’(장욱진), ‘나무와 두 여인’(박수근)…. 길거리의 그림이지만 그림 자체를 느낌대로 즐깁니다. 때론 작가의 의중도 따져봅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생각을 낳습니다. 그게 재산이 됐는지 모릅니다. 가끔 가족산책을 할 때면 제 딸들에게 “이중섭과 김환기 화풍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느냐”며 허세도 부렸습니다. 이게 홍제천을 걸으면서 얻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입니다.

또 다른 행복을 느낍니다. 마치 잘 알고 있는 내용이 출제된 시험지를 마주한 기분 말입니다. 박수근 화백과 장욱진 화백이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하는 ‘현대 한국 인물 시리즈 우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번 우표는 두 화가의 생전 모습과 ‘빨래터’(박수근), ‘까치’(장욱진) 등 대표작의 일부분을 함께 디자인해 국민들이 우표를 통해 두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수근 화백은 ‘서양화로 표현하는 민족의 서정시인’, ‘선한 이웃을 그린 한국의 밀레’ 등으로 불립니다. 그의 작품은 서민의 일상을 토속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회색과 황토색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습니다. 고단한 삶의 표현일 뿐이죠. 오히려 고단함을 이겨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생명력의 상징은 여성입니다. ‘빨래터’, ‘맷돌질 하는 여인’, ‘나물캐는 여인’, ‘아이업은 소녀’, ‘나무와 두 여인’, ‘노상의 사람들’, ‘노상’, ‘앉아있는 아낙과 항아리’, ‘나무와 사람들’, ‘시장의 여인’ 등 그의 대표작에는 여성만이 등장합니다.

그의 화풍은 독특합니다. 특히 그림기법이 그렇습니다. 마치 삼베 천 바닥에 굵은 선을 새긴 듯합니다. 한국적 색감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서양화가에게선 볼 수 없는 기법입니다. 그에게도 스승이 있습니다. 농촌 여성의 일상과 농촌풍경이 그것입니다. 투박하지만 순박한 색감을 찾아내는 천재적 감각은 조력자쯤 되겠죠.

장욱진 화백은 ‘동심의 서양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상적인 소재를 마치 낙서하듯 그렸기 때문입니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 하나같이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해 보입니다. 처음 볼지라도 마치 눈에 익은 듯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센스가 있으면 그의 작품 제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필체가 너무 간결하고 단순한 탓입니다. ‘월목(月木)’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나무 목자 모양의 나무 위에 반달이 떠 있는 모습입니다. ‘가로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위에 네 그루의 파란 나무를 그리고 사람, 개, 소, 집 등을 빈 자리에 채워넣었습니다. 장욱진 화백의 순수한 이상적 내면세계가 보이는 듯합니다. 그림을 보면 그림 그린 사람이 보인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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