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대한민국 우표디자인 공모대전’ AI디자인 부문 대상작 ‘유유자적으로 가는 길’.
드디어 사람과 인공지능(AI)이 함께 만든 우표가 나온다.
우정사업본부는 1991년부터 우표디자인 공모전를 실시해 왔다. 38년째 맞는 올해 ‘2018 대한민국 우표디자인 공모대전’은 우표디자인의 다양화를 위해 ‘AI디자인’ 부문을 신설했다. 일명 ‘김홍도 프로젝트’다. 이 부문에서 이소원(경희대 재학)이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작품명은 ‘유유자적으로 가는 길’이다. 책으로 상징되는 딱딱한 일상에서 벗어나 배를 타고 유유히 자연을 돌아다니는 여유로움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응모자가 그린 그림을 우정사업본부가 제공한 김홍도 화풍을 학습한 이미지 변환 소프트웨어(AI)에 적용한다. 김홍도의 화풍을 이식하는 작업이다. 필요한 부분을 미세조정하면 김홍도가 그린 것과 유사한 작품이 탄생하는 셈이다. 즉 데이터에 기반해 재조합된 ‘이소원과 김홍도의 합작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유유자적으로 가는 길’은 작품성도 뛰어날뿐만 아니라 실제 경치를 닮게 그린 김홍도 산수화풍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향후 기념우표로도 발행될 예정이다. 발행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김홍도 프로젝트’는 창의적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사람이 소통하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우정사업본부가 제공한 변화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감소하지 않는다. 보통사람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유명작가가 그린 작품 못지않은 창작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AI를 이용한 다양한 예술의 창작 시도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 성과도 놀라울 뿐이다. 인공지능이 스포츠 기사를 작성했다느니,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사람이 쓴 소설과 구분하기 어려웠다느니, 유명 작곡가에 버금가는 피아노곡 작곡능력을 보여줬다느니 하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 AI가 창작의 주체가 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술분야도 마찬가지다. 창작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학습은 인공지능의 전문분야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보여줬던 딥러닝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전통적 머신러닝은 축적된 대량의 정보 즉 빅데이터를 분석, 규칙을 찾아낸다. 딥러닝은 그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그 규칙을 찾아내기란 힘들다. 하지만 AI기술자들은 예술도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인 특수한 알고리즘을 찾아냈다. 바로 고도화된 심층신경망이다.
미국 뉴저지주 러트거스대학의 ‘아트·인공지능 연구소’는 심층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화가처럼 그릴 수 있는 알고리즘, CAN을 제작했다. 이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CAN에 입력된 다른 작품의 스타일을 차용하거나 모방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김홍도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AI는 김홍도란 유명 화가의 화풍을 스스로 학습한다. 그리고 설정된 상황을 제시하고 김홍도의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정말 김홍도 화풍의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다. ‘김홍도 프로젝트’처럼 사람이 그린 그림을 김홍도 화풍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창작하는 것이다. 우선 기초적인 스케치를 이해한다. 그리고 이것을 AI프로그램에 따라 재해석한다. 재해석한 결과물이 AI의 창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적용되는 컴퓨팅이 바로 ‘순환신경망’이다. 수학이나 논리학이 아닌, 네트워크로 구성된 신경망 구조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림정보만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문장을 읽고 해당하는 화면을 그려내는 시스템 AttnGAN을 선보였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가 요구한 문장에 따라 스스로 사고한 후 그림을 그려내는 보다 발전된 기술이다. 이 기술을 원용한다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데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AI가 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