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1분기 가계소득 자료… ‘소득주도 성장의 역설’ 논란
‘소득주도 성장의 역설’. 통계청이 5월 24일 공개한 올해 1분기 가계소득 통계자료를 두고, 여러 매체들은 이처럼 비판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명목기준)은 128만67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줄었다.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었다. 정부는 그간 일자리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으로 저소득층의 곳간을 채우려 했지만,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가계소득 동향의 충격적 결과는 곧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급히 회의를 열고 현상의 원인과 향후 대책을 검토했다. 청와대는 결론적으로 현 정책의 지속 추진을 결정했다. 다만 향후에도 정책의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의 곳간을 채우려 한 정책을 추진했는데 왜 저소득층의 소득은 줄어들었을까. 사실 지난 1분기 가계동향 통계는 정부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발표가 될 수 있었다. 최저임금을 인상했기에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이렇게 되면 양극화도 해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부의 예상과 달랐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쪼그라들었고, 양극화는 더욱 커졌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근로소득의 감소였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일부 기대했음에도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13.3% 감소했다. 지난 4분기까지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20.7% 올라 소득주도 성장의 정착을 기대했는데, 불과 한 분기 만에 -34%포인트라는 이례적인 낙차를 기록한 것이다.
정부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진땀을 뺐다. 우선 꺼내놓은 설명은 고령화 현상이었다. 올해 1분기에는 1분위 가구 중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의 비중이 이례적으로 늘었는데(6.5%포인트 상승), 정부는 이들 가구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인 근로소득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도 언급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하며 도소매·숙박·음식점 분야에서 고용이 부진한 점이 저소득층 소득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다.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분야에선 최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자영자)도 감소했다. 정부는 자영자의 감소가 1분위 가구의 사업소득을 26%나 급감시켰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다” 해석 분분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여론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 고령화와 사드 여파로만 해석하기엔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통상 가계소득 추이는 전 분기의 추세가 그 다음 분기까지 이어지며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오르내린다. 올해처럼 급격한 하락은 이례적이다. 세부 통계를 봐도 의아한 점이 있다. 2016년 1분기에도 70세 이상 가구주의 비중이 전년 동기보다 4.3%포인트 오르며 고령화가 심화됐는데, 당시 근로소득의 감소폭은 7.4%로 올해 감소폭의 절반에 불과했다. 또 사드 여파는 지난해부터 쭉 이어져오던 문제였으며, 중국인 관광객 추이는 올해 초부터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드 보복이 1분기 가계소득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급격한 결과를 불러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계소득 하락에 대한 정부 설명이 한계를 보이자 그간 재계 등에서 주장하던 ‘최저임금 부작용’론이 힘을 받았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등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 결과적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피해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일부 학계 인사들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고용과 소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경제학자들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며 “점진적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에 어떤 영향이 오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 논란에 회의까지 벌인 청와대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5월 29일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는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원인을 판단해보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1분위 가계소득의 감소가 고령화인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지를 두고 2시간30분간 난상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의 부작용 여부 등을 두고 강하게 충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총리의 경우 “최저임금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장 실장은 반대의 입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용통계를 가지고 여러 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일부 식음료분야 등을 제외하고 제조업분야 등에서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깊이 있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회의 하루 전 각 부처에 참석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별도의 분석을 내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시점이었다. 또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조차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자료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 다른 부처가 더 의미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장관마다의 학문적·정치적 입장에 따라 기존 통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결론적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을 그대로 유지하되, 일부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보완책은 고령자·무직자 등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복지대책으로, 최저임금 인상폭의 재검토 등 속도 조절로 불릴 만한 것들은 아니다. 아직까지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만큼, 기존의 정책을 일단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다만 최저임금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정부의 면밀한 확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최근 일각에선 관련성이 약한 문제까지도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돌리고 있는데, 이 같은 혼란을 감안하면 정부가 현상을 제대로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고, 참모들끼리의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yong14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