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일회용 퇴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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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쓰레기 단속 팔 걷어붙인 정부… ‘친환경’ 대책 공감하지만 고민 깊어

영국 런던의 35개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올 3월부터 일회용 컵에 판매되는 라테 한 잔당 5펜스(75원)의 추가비용을 물린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등 다회용 컵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2년 도입됐다 사라진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내년부터 다시 부활한다. 2020년까지 모든 음료수 페트병도 무색으로 바뀐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친환경’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유통업계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매번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흐지부지됐던 정부의 일회용 쓰레기 대책이 이번에는 실효성을 거둘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스타벅스와 자원순환연대가 ‘다회용 컵 사용 동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스타벅스와 자원순환연대가 ‘다회용 컵 사용 동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영국 스타벅스의 ‘라테 부담금’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제도가 도입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음료를 일회용 컵에 구입하면 50~100원을 추가 부담하고 컵을 반납하면 다시 돌려주는 방식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됐지만 2008년 폐지됐다. 기대와 달리 저조했던 컵 회수율와 소비자 부담이 근거가 됐다. 사라졌던 컵 보증금 제도가 10년 만에 부활하게 된 것은 일회용 컵이 심각한 쓰레기 문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국내 일회용 컵 소비량은 2009년 191억개에서 2015년엔 257억개로 급증하며 보증금 재도입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 4월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의 페트병,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로 일명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정부는 한 달여 만에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고, 재활용률은 34%에서 7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우선 제조·생산단계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간다. 색소가 들어간 페트병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생수와 음료수 페트병을 2020년까지 무색으로 바꾸고, 플라스틱 용기에 많이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은 사용을 금지한다. 대형마트와 대형슈퍼마켓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고 종이상자나 재사용 종량제봉투만 허용된다. 제과점이나 재래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된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내년부터 부활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는 사용한 컵을 반환하는 경우 보증금을 환불해주는 제도가 다시 도입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올해 안에 법령을 개정하고 공공 회수체계 정비를 추진한다. 실내 일회용 컵 사용 단속도 강화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책을 통해 2022년까지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 사용량을 35% 줄인다는 계획이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지난 5월 10일 제37차 국정현안 점검조정회의에서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려 지속가능한 자원순환형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가 분기별로 실행상황을 점검하는 등 의무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말했다.

재활용 폐기물 문제가 이슈화하며 관련 대책을 마련해온 유통업계는 예상보다 강력한 정부의 ‘친환경’ 드라이브에 고민이 깊어졌다.

가장 숙제가 많은 곳은 식음료업계다. 초록색, 갈색 등 유색 페트병을 사용하는 주류·음료업계는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제품 패키지를 바꿔야 할 상황에 놓였다.

롯데칠성음료는 우선 자사 제품 중 ‘마운틴듀’와 ‘트로피카나스파클링’ 등 일부 유색 페트병을 올해 안에 무색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선제대응에 나섰다. 두 제품은 모두 ‘재활용 불능’인 3등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표제품인 ‘칠성사이다’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1950년 출시 이후 줄곧 초록색 페트병을 사용하며 초록색이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롯데칠성음료 측은 “무색 페트병으로 변경 시 제품의 변화 여부 등 식품 안전성을 점검한 후 패키지 변경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출시 이후 50년 가까이 ‘초록 페트병’을 사용해온 서울장수막걸리도 브랜드 정체성 유지와 환경보호 동참 사이에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무색 패키지로 바꿨을 경우 발효식품인 막걸리가 자외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오랜 시간 유지해 온 패키지를 변경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대부분 갈색 페트병을 사용하는 맥주 생산업체들은 투명 페트병으로 바꾸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소 유입으로 인한 제품 변질과 막대한 추가비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 따르면 2016년에 생산된 맥주 페트병은 1만1200톤에 이른다. 일부 특수처리된 홉(맥주 원료)의 경우 투명한 용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갈색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맥주의 경우 품질 유지를 위해 제한적으로 유색 페트병을 사용하되, 분담금 차등화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다른 재질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모든 음료수 페트병도 무색으로 바뀐다

업계에서는 유색 페트병에 대한 부담금을 높이게 되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다회용 컵 할인정책 시행을 앞두고 가맹점의 비용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2015년 기준 연간 61억개의 일회용 컵을 사용한 커피전문점은 4년 이내 35% 감축을 해야 한다.

환경부는 20개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 업체와 자발적 협약을 통해 다회용 컵 사용 시 10%의 가격 할인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커피값 할인은 업체별로 최소 100원에서 최대 300원으로 예상된다.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 등이 300원을 할인하면 나머지 업체들이 100~200원 할인을 적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커피전문점 점주는 이에 대해 “정부와 프랜차이즈 본사는 비용부담에 뒷짐을 진 채 가맹점주들에게만 ‘친환경 할인’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찌감치 비닐봉투 사용 금지를 시행해온 대형마트 업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다수 관련업계에서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실무자들과 긴밀한 협의 없이 발표된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현장에서 얼마만큼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대두된다.

관계자들은 정부의 재활용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관련업계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회용품 사용이 자원낭비와 환경파괴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지만 정작 이용자들의 소비생활에서의 변화는 더디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추가비용 부담과 소비자 불편이 제기되지만 실질적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제재와 선제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 2016년 프랑스는 2020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재활용 폐기물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유럽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업체의 자율에 맡기고 있던 상황”이라며 “당장은 힘들겠지만 업계와 소비자 모두 정부 대책에 최대한 발맞춤하는 것이 향후 쓰레기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더 큰 비용의 손실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노정연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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