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금고지기’ 누가 차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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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104년 만에 복수금고 운영 결정… 우리은행 vs 시중은행 경쟁

연 32조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지기’를 차지하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단수금고제를 고수해 온 서울시가 104년 만에 복수금고 운영을 결정하면서 현 금고지기인 우리은행을 비롯해 신한·KB국민·KEB하나·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서로에 대한 불만과 비방 등 잡음도 새어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조만간 금고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시금고를 운영할 은행(단수 또는 복수)을 선정할 계획이다. 시는 앞서 지난 3월 25~30일 시금고 운영 희망기관을 대상으로 입찰 제안서를 받았다. 현재 시금고를 운영 중인 우리은행과 KB국민·신한·KEB하나·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5년 3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에서 열린 서울시금고 100주년 기념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 2015년 3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로비에서 열린 서울시금고 100주년 기념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복수금고로 전환한 시는 일반·특별회계를 관리하는 제1금고(30조원 규모)와 성평등기금 등 특정목적기금을 관리하는 제2금고(2조원 규모)로 운영 주체를 구분했다. 1금고는 수시로 입출이 가능한 통장의 역할을, 2금고는 돈을 묵혀두는 정기예금 성격이 짙다. 1·2금고에 한 은행이 동시에 지원할 수 있어 1금고에 선정된 은행이 2금고를 맡을 가능성도 있다.

평가항목과 배점은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30점) ▲시에 대한 대출 및 예금 금리(18점) ▲시민의 이용 편의성(18점) ▲금고 업무관리능력(25점)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9점) 등 총 5개 분야, 18개 항목을 평가한다. 시는 오는 5월 평가 결과를 토대로 최고 득점을 차지한 곳을 내년 1월부터 4년간 서울시 예산과 기금을 관리할 시금고로 선정하게 된다.

서울시 금고지기가 얻는 유·무형의 이익은 다양하다. 시금고 운영으로 직접적인 수익도 얻지만, 그보다는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라는 상징성과 시와 연계된 기관과의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얻는 부가적인 이익도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울시의 예산, 기금, 출납교부금, 지방세 등 각종 기금을 예치하고 출납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서울시금고라는 위상과 함께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 산하기관 등의 고객 유입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 등을 강화하면서 은행들이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기관영업을 선호하는 경향도 한몫 하고 있다.

연 32조 규모에 유무형 이익도 다양

시중은행 중에서는 지난 1세기 넘게 시금고를 독점 운영해온 우리은행이 선두에 서 있다는 평이다. 1915년부터 서울시가 당시 조선 경성은행(현 우리은행)에 자금관리를 맡기면서 서울시 금고지기는 무려 100여년 넘게 우리은행이 맡아 왔다. 우리은행은 그간의 경험과 탄탄한 전산시스템 등 이미 갖춰진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1600여명의 금고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시 이택스(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시스템) 시스템을 구축해 시·구 세입금에 대한 일괄 정산업무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또 연간 1억건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OCR(광학문자인식) 센터와 금고업무 시스템 전담부서를 별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금고지기’ 누가 차지할까

KB국민은행도 유치전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말 취임 이후 시금고 유치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허인 행장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아 시금고 복수체제 전환에 대해 환영을 표한 뒤, 국민은행이 시금고 유치전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전달한 바 있다. 허 행장은 서울시가 시금고 복수 운영을 확정하기 전인 올 초 기관영업부로 확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관계자들에게 ‘서울시금고가 복수 입찰이 가능해지면 무조건 유치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학연논란·출연금 규모 등 부작용도

지난해 국민연금 주거래 은행을 우리은행에 빼앗긴 신한은행은 2010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에 나선다. 인천시 1금고 등 20개 지자체 금고를 운영한 경험을 내세워 시금고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기관영업부문을 기관영업그룹으로 확대 신설하고 주철수 부행장보를 그룹장으로 전면 배치하는 등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대전시 등 15개의 지자체 금고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하나은행은 외부 해킹을 완벽하게 차단할 전산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며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최근엔 서울시 금고지정심의위원회 구성을 두고 서울시금고 지정의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심의위원장과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논란이 됐다. 우리은행 측은 “서울시금고 운영조례에 따라 행정1부시장이 당연직으로 심의위원장을 맡아 왔는데, 단지 (시금고 선정) 시기가 겹친 것일 뿐”이라며 “경쟁 은행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말도 안되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출연금 규모를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출연금 관련 배점이 기존의 5점에서 4점으로 낮아졌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과거 출연금 규모 이상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4년 금고은행 체결 당시 1400억원가량의 출연금을 냈다. 따라서 이번엔 최소 1500억원 이상의 약정금을 써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당시 신한은행은 600억원 수준, 국민은행은 시스템 개발비 포함, 2800억원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출연금 규모를 늘리게 되면, 결국 이에 대한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특화된 전산시스템인 ‘이택스’를 통해 서울시는 물론 25개 구 내부 전산망이 깔려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은행이 선정돼도 복잡한 서울시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역량과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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