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헬스케어(의료 및 건강관리)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컨설팅기업 액센추어(Accenture)는 2026년 미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약 150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높은 성과를 나타낼 분야로 로봇 수술, 가상 간호사, 투약 관리, 이미지 진단, 사이버 보안 등을 꼽았다.

아터리스의 인공지능 기반 의료영상 분석시스템. /경향DB
아터리스(Arterys)는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의료영상 분석시스템 ‘4D 플로’를 선보였는데, 이를 이용하면 환자의 MRI 이미지를 10분 이내에 분석해 심장 혈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심장이 처리할 수 있는 피의 양을 계산해서 알려준다. 의사는 이를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아터리스의 시스템은 2017년 1월 미 FDA에서 승인을 받았다.
신약 개발에도 인공지능이 쓰이기 시작했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데, 이 과정에 인공지능을 이용해 효율을 높인다. 리커전(Recursion Pharmaceuticals)은 2025년까지 인공지능을 통해 100가지 치료법을 발견하는 걸 목표로 하는 공격적인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 10월 리커전은 기술력을 인정 받아 10개의 투자사들로부터 총 60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센스리(Sense.ly)가 선보인 가상 간호사 솔루션 몰리(Molly)는 의사의 시간을 20% 절약시켜 주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몰리는 환자의 실시간 건강 데이터를 활용하여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며, 다음 병원 방문 때까지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헬스케어 분야에서 인공지능 도입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하고 성과를 내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딥러닝(deep learning)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학습을 함으로써 인공지능을 정교화하는데, 헬스케어 분야에는 빅데이터가 풍부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제도상으로 헬스케어 빅데이터, 즉 의료정보의 활용에 상당한 제약이 존재한다. 아예 데이터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으며 가능한 경우라도 수많은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맞추고 따라야 한다. 이는 민감한 의료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의료기관들이 클라우드·사물인터넷·인공지능 등의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실 국내에서 의료정보가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 의문이며, 또한 의료기관들이 최신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그러한 의문들에 답해야 할 때가 됐다. 보호할 의료정보는 정말 제대로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건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보호해야 하는 의료정보는 보호되지 않을 것이며, 헬스케어 테크놀로지는 발전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메커니즘에 빠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런 흐름을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류한석 소장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