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진’으로 얼룩진 호텔 부가세 환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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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계열사인 케이티스와 글로벌텍스프리 등 가맹계약 ‘꼼수 영업’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다가왔다. 올림픽 특수를 노리는 관광업계에도 모처럼 활기가 돈다. 정부 차원에서도 올림픽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1년 동안 외국인 관광객의 호텔 숙박요금에 붙은 부가가치세를 돌려주는 정책도 마련됐다. 이른바 ‘호텔 부가세 환급제’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부가세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돌려주기 때문에 관광객 입장에서는 숙박요금 10%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요금 부담을 덜어주고 호텔은 가격경쟁력을 챙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나라 곳간을 비우는 부담을 안고 시행하는 제도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호텔업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부가세 환급 호텔이 되려면 정부로부터 ‘특례적용 호텔’로 지정 받아야 하는데 조건이 까다롭다. 먼저 부가세 환급 호텔로 지정되면 숙박요금 인상에 제한을 받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객실 평균요금을 5% 이상 높인 호텔은 부가세 환급 호텔 대상에서 제외된다. 객실요금을 자유롭게 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숙박요금 인상이 제한되는 데다 요금관리 실패에 대한 위험 때문에 특례호텔 신청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울 명동 거리. / 촬영 이상훈 기자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울 명동 거리. / 촬영 이상훈 기자

환급제, 조건 까다로워 호텔선 시큰둥

외국인 관광객이 어렵게 부가세 환급 호텔을 찾아 이용하더라도 환급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현행 제도는 익스피디아와 부킹닷컴 같은 온라인 호텔 예약업체(OTAㆍOnline Travel Agency)를 통해 요금을 결제한 관광객은 부가세 환급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가량이 호텔 예약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관광객이 부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진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일본 관광객의 45.4%, 유럽ㆍ미국 관광객의 44.2%, 중국 관광객의 38.9%가 호텔 예약업체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가세 환급제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인 ‘당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이렇듯 저조한 호텔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부가세 환급 적용 기준을 완화했다. 당초 숙박요금은 1년 전보다 5% 넘게 올리지 않도록 못박았지만, 개정을 통해 인상폭을 10%로 높였다. 당초 2박 이상의 경우에만 부가세 환급 대상으로 했지만 올해는 1박만 묵어도 환급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부가세 환급제에 참여할 수 있는 호텔은 전국 1000여곳에 달하지만 부가세 환급 호텔 지정을 신청한 곳은 16곳(12일 기준)에 불과하다. 한국호텔업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해도) 호텔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며 “(부가세 환급) 적용 기준을 더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 호텔은 한 곳도 참여하지 않는다. 부가세 환급제를 하지 않아도 단체관광객으로 예약이 가득찬 데다 모처럼 잡은 호재를 객실요금 인상 제한에 잡혀 날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평창의 ㄷ호텔 관계자는 “2월에는 이미 방이 다 차서 예약이 안 된다”며 “부가세 환급도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가세 환급제의 효용성 논란은 지난 2014년 호텔 부가세 환급제 첫 시행 시기에도 불거졌었다. 시행 초기 75개 호텔이 부가세 환급 호텔로 지정됐지만, 관광객 유치효과에 대한 의문이 일면서 취소 신청이 이어졌다. 호텔의 신청 철회 끝에 마지막 분기에는 30개 호텔만 남았고 시행 1년 만에 호텔 부가세 환급제는 끝이 났다. 당시 정부는 1년 동안 호텔 부가세 환급금으로 세수 5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환급금은 18억7000만원에 그쳤다. 호텔 부가세 환급 정책을 통해 3000억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했던 정부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관광객 유치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호텔업계는 부가세 환급제를 외면하고 있지만 환급 대행사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동안 닫혀 있던 호텔 부가세 환급시장이 다시 열린 만큼 호텔을 상대로 부가세 환급사업을 하도록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고 있다. KT 계열사인 케이티스(KTis)와 환급서비스 시장점유율 1위 회사인 글로벌텍스프리가 대표적인 환급 대행사업자들이다. 환급 대행사들의 매출은 가맹계약을 맺은 호텔 수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다. 가맹 호텔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숙박료를 지불하면 요금에 붙는 부가세 가운데 70%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30%를 환급 대행사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지난 2014년 첫 호텔 부가세 환급사업은 케이티스와 글로벌텍스프리 두 회사가 독점했지만 올해는 10개가 넘는 환급 대행사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호텔을 둘러싼 가맹영업 경쟁도 치열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특수를 겨냥한 관광 활성화 정책이 나오고 있다. / 촬영 이석우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특수를 겨냥한 관광 활성화 정책이 나오고 있다. / 촬영 이석우 기자

환급 대행사들만 치열한 가맹 경쟁

가맹 경쟁이 불 붙은 상황에서 정작 호텔의 부가세 환급제 참여가 시원찮자, 마음이 급해진 환급 대행사들은 무리한 ‘백마진’(Back margin) 영업을 벌이고 있다. 환급 대행사들이 가져갈 수수료 가운데 일부를 떼서 호텔 측에 다시 돌려주는 일종의 꼼수 영업이다. 정식 계약서와 별도의 계약서를 따로 작성한 뒤 매출에 따라 고정적으로 환급금 일부를 ‘영업ㆍ마케팅 지원비’ 이름으로 호텔에 건네는 방식이다. 케이티스 영업 담당자는 “(고객이) 원하면 다른 회사에서 제안한 (백마진) 수준에 맞춰줄 수 있다”며 “표준 계약서에는 없지만 부속 합의서에 명시하고 세금을 계산해서 (호텔 측이) 현금으로 받는다”고 말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 규모에 따라 사업자들이 주는 백마진이 달라진다. 보통 호텔 객실 200개에서 300개 이상 되는 곳이면 수수료의 30% 정도를 돌려준다는 게 환급 사업자들이 제시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백마진은 보통 서류상으로 남지 않는 돈이기 때문에 돈을 받는 쪽에서 비자금으로 만들거나 유용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쟁이 심한 의약품ㆍ유통업계나 택배업계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여겨져 왔지만 최근에는 백마진 제공 행위는 불법으로 판단, 법적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환급 대행사들이 백마진으로 가맹계약을 맺은 호텔에 영업ㆍ마케팅 지원비로 다시 떼어주는 돈은 엄밀히 말해 세수로 잡혔어야 할 세금이다. 세금 지원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떼다가 백마진 영업을 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올 한 해 호텔 부가세 환급시장 규모를 50억원 규모로 보고 있다. 당장 큰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워도 가맹계약을 맺어 놓으면 꾸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보고 있다. 일단은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지만 관광객 유치 활성화 명목으로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는 카드다. 환급 대행사들이 무리수를 던져가며 가맹영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정부는 평창올림픽에 맞춰 호텔 부가세 환급제 촉진 시행을 서두른다는 계획이지만 제도 활성화에 더해 시장 투명화라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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