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5개월 만에 시장의 5% 점유… 일반담배의 절반 과세 논란
김수정씨(33)는 최근 식당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옆 좌석에 있는 한 남성이 궐련(종이로 말아놓은 담배)형 전자담배인 아이코스를 꺼내서 피웠다. 김씨가 “식당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항의하자 이 남성은 “담배냄새가 나지 않으니 피해를 주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비단 김씨 사례뿐이 아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무실, 화장실 등 공공장소에서 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냄새가 나지 않고, 유해성도 적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흡연가들은 “익숙하지 않은 냄새라서 그렇지 분명히 냄새가 나며,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유해하지 않을 리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제품의 출시는 종종 법적 공백을 불러왔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과세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담배니까 기존 담배와 같은 세율을 매겨야 한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흡연하는 방법과 유해도가 다르니 같은 세율을 매겨서는 안 된다는 쪽이 맞선다. 결론은 사실상 11월 이후로 밀렸다. 논의가 연기되는 동안 궐련형 전자담배의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에 따른 조세공백은 더 커지고 있다. 궐련형 담배는 출시 5개월 만에 담배시장의 5%를 점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궐련형 전자담배 과세를 둔 논쟁이 되레 노이즈 마케팅이 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필립모리스사의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필립모리스, BAT코리아 제공

BAT의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아래). / 필립모리스, BAT코리아 제공
‘다국적 담배회사들 로비 아니냐’ 의혹
궐련형 전자담배가 출시된 것은 지난 6월이다. 미국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IQOS)’를 출시했다. 기존 담배는 담배에 불을 붙여 태워서 연기를 내뿜으며 피운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와 같은 형태의 고체담배를 전용기기에 넣어 쪄서 피운다. 그러니까 고기를 구워 먹을 것이냐 쪄 먹을 것이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쪄서 피우다 보니 일반담배와 맛은 유사한데, 가래가 안 생기고 숨도 잘 차지 않는다.
아이코스가 서서히 인기를 끌자 두 달 뒤인 지난 8월 영국 BAT도 ‘글로(GLO)’를 출시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이즈음부터 애연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선물용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10만원가량 되는 전용기기는 애연가 접대용으로 특히 인기였다.
문제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과세기준이 애매했다는 것이다. 기존 담배와 똑같은 형태의 궐련담배를 전자기기에 끼워 찌는 방식은 처음이었다. 행정안전부는 고심 끝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전자담배로 분류했다. 기존 담배와 형태가 같긴 하지만 열을 가하기 위해 전자장치를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부는 지난 5월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담배가 아닌 전자담배로 분류하도록 관련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궐련형 전자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은 파이프담배와 전자담배의 기준이 적용되면서 1348원(부가가치세 제외)으로 낮아졌다. 일반담배(2914원·부가가치세 제외)의 절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곧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저과세는 특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는 방식만 다를 뿐 기존 담배와 거의 다를 바 없는데 세금을 깎아줄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낮은 세금에 따른 수익 대부분이 로열티나 배당금 명목으로 다국적 담배제조업체와 업체의 본국으로 유출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 일반담배 1갑(20개비)을 팔면 제조원가와 제조사 마진을 합쳐 1176원이 남지만 궐련형 전자담배는 2560원이나 남는다. 해외로 이전된 수익만큼 한국 정부의 세수입은 줄어든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시장점유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500억원 내외의 세금이 줄어든다. 만약 점유율이 8.8%에 이르면 연간 5000억원이 감소한다. 일본의 경우 궐련형 전자담배의 시장점유율은 이미 18%까지 올랐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김광림 자유한국당,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을 일반담배와 같은 수준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지난 6월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아이코스는 1350원의 세금이 추가로 인상될 것으로 추정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8월 23일, 조경태 기재위원장(자유한국당)이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처리를 보류했다. 일부 언론은 때맞춰 ‘서민증세’라며 분위기를 몰고갔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추가과세를 하면 현재 4300원인 궐련형 담배의 가격이 60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흐름이 이처럼 바뀐 뒷배경에는 필립모리스 등 다국적 담배회사들의 로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관망했던 KT&G도 11월에는 출시하기로
궐련형 전자담배 과세가 논란이 되는 것은 나라마다 세율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일본을 비롯, 그리스,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은 일반담배 대비 80% 내외의 세금을 매기고 있다. 반면 스위스, 독일, 영국은 일반담배 대비 40% 내외의 세금을 매기고 있다. 통상 궐련형 전자담배의 판매비율이 높은 국가는 세율이 높고, 낮은 국가는 세율이 낮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서 논란이 크다”며 “다만 어느 나라든 조세수입에 부담을 주는 수준이 되면 세율인상을 검토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궐련형 담배 과세 처리가 한 달 이상 보류되자 기재부는 중재안을 냈다. 개별소비세를 일반담배의 80% 수준으로 올리자는 안이었다. 일반담배의 81.6%를 과세하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했다. 이렇게 되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는 현행 126원에서 461원으로 335원이 올라간다. 개소세 인상을 계기로 담배소비세와 이에 연동된 지방교육세, 건강증진부담금이 오르면 세금이 최대 1500원가량 오를 수 있다.
필립모리스 측은 “아이코스가 유해성이 적은 만큼 세금도 일반담배보다 적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세금을 올리면 판매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며 수천억 원대의 양산공장 투자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저타르 담배라고 세율이 낮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다른 나라에서 판매되는 궐련형 담배를 보면 판매가격은 세금과 관계없이 일반담배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된다”며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공장 투자의 경우도 국내에서 궐련형 고체담배(히츠)를 생산하면 관세 40%가 상쇄되기 때문에 시장성이 있는 한 이를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논란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출시를 보류해 왔던 KT&G도 11월에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하기로 했다. 국회 논의만 지켜보다가는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다국적기업의 놀이터로 변질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KT&G까지 참여하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