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보복 수위 높아질 우려… 3% 경제성장 전망 어려울 듯
올해 상반기 낙관적이었던 경제 전망이 하반기 들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당장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현실화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한 차례 겪었던 중국의 경제보복 수위가 한층 더 높아질 우려가 커졌다. 지난 3일 북한의 제6차 핵실험으로 북핵 리스크도 다시 불거졌다. 아직까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요인이 상당하다. 그나마 경제를 떠받쳐주던 수출업황도 IT업종에만 국한되어 있고 내수는 여전히 소비부진으로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 한 해 3%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있지만 점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그 다음날부터 한국 주식시장은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다가 6일 만인 7일 반등했다. 과거 ‘북핵 리스크’는 단기 악재에 불과했는데 점점 중장기 악재가 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썰렁한 서울의 한 재래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소비를 보여준다. /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 북핵 강경대응 기조 강해
문제는 북핵에 대한 주변국 미국과 일본의 강경대응 기조가 워낙 강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과도 사드 배치 문제로 껄끄러운 상황이 됐기 때문에 북핵 리스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짙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한금융투자 곽현수 연구원은 “북핵과 같은 외생변수가 발생하면 기대수익률을 낮출 수밖에 없어 중장기적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차익 실현 심리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방부가 지난 7일 사드 잔여발사대 4기를 임시배치 완료하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 수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사드 보복은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대차의 지난달 해외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0.8% 감소했다. 해외 판매 감소 이유는 사드 사태로 중국 판매가 줄어든 영향이 가장 컸다. 사드 보복 여파로 인해 판매가 급격히 감소하자 현대차 중국 4개 공장이 일시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접적인 사드 보복은 아니지만 사드 여파로 판매가 줄자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현지 협력업체들이 납품을 거부해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이다.
롯데마트는 중국 현지에서 현재까지 87개 영업점이 영업을 중단했다. 올해 3월부터 영업정지로 인한 피해액은 5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사드 배치로 인해 면세점 업계의 ‘큰 손’이었던 중국 관광객들 발길도 끊겨 면세점도 울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보복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3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드와 북핵 리스크를 경기 하방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7월 이후 큰 상황변화가 있었다”며 “북한과 관련한 리스크가 한층 높아지고, 사드 배치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하반기 경제성장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올 상반기 경제성장을 이끈 수출부문은 IT·반도체 업종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IT·반도체산업 이외에는 개선세가 뚜렷하지 않다.
한화투자증권의 권희진 연구원은 7일 보고서에서 현재 국내 경기를 “기본(펀더멘털) 개선이라기보다는 반도체 경기의 호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경기 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수출의 경우 반도체와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사이의 온도 차가 크다는 것이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5%, 2분기에 54% 증가했으나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은 1분기 10%, 2분기 12% 증가에 그쳤다. 권 연구원은 계절 변동성이 큰 선박 수출까지 제외하면 수출증가율은 1분기 12%, 2분기에는 7%로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도체 수출과 달리 다른 산업의 수출증가율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인으로 붐비던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지난 3월 ‘사드 보복’ 이후로 한산해졌다. / 연합뉴스
수출은 IT업종에만 집중, 내수부진
권 연구원은 특히 우리 경제에서 점점 IT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IT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분기 이후로 크게 높아져 최근 9%를 넘어섰다. 이는 2000년 이후 평균인 7.5%를 크게 넘어선 수준이다.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아지면 해당 산업이 흔들릴 경우 경제도 같이 불안해질 수 있다.
IT산업(전기 및 전자기기 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4.3으로 전체 산업 평균(9)에 비해 낮다는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고용유발계수는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가 10억원어치 더 팔릴 때 이를 생산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몇 명을 더 고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권 연구원은 “IT산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크지 않아 생산과 수출의 증가가 내수경기 진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며 “IT산업은 그 특성상 업황의 온기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내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도 하반기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6일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내수의 개선 추세는 여전히 견실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7월 소매판매액은 3.5%로 내구재를 중심으로 6월보다 1.1% 상승했지만 대부분 일시적 요인이었다. 예를 들어 10.5% 상승률을 보인 승용차 판매는 지난해 7월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가 돼 당시 소비가 부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기저효과라는 것이다.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민간소비와 관련이 높은 서비스성 생산은 여전히 부진하다. 7월 도소매업 생산지수는 1.4% 늘었지만 지난해 평균(3%)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영세자영업자들이 많은 업종인 음식·숙박업 생산은 7월에 마이너스 4.3%로 나타났다.
소비자들 심리도 악화됐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기준치(100)를 상회하는 109.9를 기록했지만 가계생활형편과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이 다소 많아지면서 7월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8월에는 7월에 비해 현재 생활형편(95→94), 생활형편 전망(104→102), 현재 경기 판단(96→93), 향후 경기 전망(109→104) 등 소비자심리지수를 구성하는 주요 항목이 모두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이 지난 9월, 당장 관리하기 어려운 북핵·사드 등 대외 변수에 어떻게 대응하고 내수시장을 키울지 문재인 정부 경제팀이 시험대에 올랐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